2000년 8월 12일 오전 11시 28분, 러시아 북방함대의 자랑이던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바렌츠해 수심 108미터 지점에 가라앉았다. 어뢰 발사 훈련 중 발생한 폭발로 118명의 승조원이 철제 관 속에 갇혔고, 그중 23명은 함미 9번 구획에서 살아남아 구조를 기다렸다.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대위가 남긴 메모는 "13시 15분.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휴가지 소치를 떠나지 않았고, 러시아 해군은 외국의 구조 제안을 5일간 거부했다. 8월 21일, 노르웨이 잠수부들이 마침내 해치를 열었을 때 그곳엔 차가운 침묵만이 남아있었다.
쿠르스크 잠수함 침몰.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쿠르스크 참사는 단순한 기술적 실패가 아니었다. 소련 붕괴 이후 10년, 러시아는 여전히 구시대의 폐쇄성과 체면에 집착했다. 군사기밀 보호를 이유로 영국과 노르웨이의 즉각적인 구조 지원을 거부한 결정은 치명적이었다. 생존자들이 산소가 부족한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동안, 크렘린은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는 거짓 발표를 반복했다. 언론은 검열당했고, 유가족들은 진실을 요구하다 진정제를 강제 투여당했다. 이 비극은 인간의 생명보다 국가의 위신을 우선시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Kursk는 이 참사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한다. 마티아스 쇼에나에르츠가 연기한 미하일 아베린 대위를 중심으로, 영화는 잠수함 내부의 절박한 생존 투쟁과 지상의 정치적 책임 회피를 교차 편집한다.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아베린의 아내 타냐는 진실을 요구하며 권력에 맞서는 유가족들의 분노를 체현한다. 콜린 퍼스의 데이비드 러셀 제독은 러시아의 거부로 무력하게 대기하는 서방 구조대의 좌절을 보여준다. 빈터베르는 밀폐된 잠수함의 공포와 거대한 정치 권력의 냉혹함을 대비시키며, 개인의 희생이 어떻게 체제의 거짓말 속에 묻히는지를 추적한다.
Kursk (2018),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 ⓒ Production Company
역사적 쿠르스크와 영화적 쿠르스크는 모두 '닫힌 공간'의 비극을 다룬다. 잠수함이라는 물리적 밀실은 정보가 차단된 사회라는 거대한 밀실의 축소판이다. 23명의 생존자들이 어둠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듯, 러시아 국민들은 진실이 차단된 언론 통제 속에서 헤맸다. 영화는 이 이중적 고립을 시각화한다. 잠수함 내부의 숨막히는 클로즈업과 크렘린의 차가운 회의실을 오가며, 생명의 절박함과 권력의 무관심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쿠르스크호가 가라앉은 것은 단지 잠수함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과 인간성이 함께 침몰하는 순간이었다.
쿠르스크 참사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비극을 목격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시대에도, 권력은 여전히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팬데믹 초기의 정보 통제, 각종 참사에서의 책임 떠넘기기, 재난 현장에서의 구조 지연은 쿠르스크의 교훈이 잊혔음을 보여준다. 빈터베르의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비극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를 환기시킨다. 밀실에 갇힌 것은 23명의 수병만이 아니라, 진실을 알 권리를 빼앗긴 우리 모두가 아닐까.
쿠르스크호의 생존자들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구조를 기다렸고,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이들의 존엄한 최후는 체제의 비인간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Kursk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는다. 국가의 위신과 개인의 생명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진실을 은폐하는 권력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쿠르스크호가 가라앉은 바렌츠해는 여전히 차갑고 어둡다. 하지만 더 차갑고 어두운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우리의 침묵이 아닐까?

![[12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는 이 이중적 고립을 시각화한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kursk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