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는 이러한 조작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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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월 16일, 베트남 꽝응아이성의 작은 마을 미라이. 미 육군 제23보병사단 찰리 중대가 이곳에 들어섰을 때, 504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은 평범한 토요일 아침을 맞고 있었다. 윌리엄 칼리 중위가 이끄는 병사들은 4시간에 걸쳐 노인과 여성, 어린이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생존자 팜티쿠에는 당시 14살이었다. 그녀는 죽은 어머니의 시신 아래 숨어 목숨을 건졌다. 미군은 이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버렸고, 사건은 1년 반 동안 은폐됐다.
밀라이(미라이) 학살, 1968년 3월 16일. 베트남 꽝응아이성 밀라이 마을에서 미군 찰리 중대가 민간인 504명을 학살한 사건. ⓒ U.S. Army
마이라이 학살은 냉전 시대 미국의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신화를 산산조각 냈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자행된 이 참극은 '자유 수호'라는 명분이 얼마나 쉽게 야만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닉슨 행정부는 사건을 축소하려 했고, 국방부는 "전투 중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널드 헤이벌 상병의 사진과 시모어 허시 기자의 탐사보도가 공개되면서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전쟁의 대의는 무너졌고, 반전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2018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Pinkville은 마이라이 학살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여러 감독이 참여한 이 작품은 생존자들의 증언, 참전 군인들의 고백, 그리고 미공개 자료들을 엮어 사건의 전모를 재구성한다. 특히 헬기 조종사 휴 톰슨 준위가 학살을 막으려 했던 순간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는 자신의 헬기를 미군과 베트남 민간인 사이에 착륙시켜 "한 명이라도 더 죽이면 우리가 발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영화는 그의 도덕적 용기와 다른 병사들의 침묵을 대비시키며 개인의 선택이 갖는 무게를 묻는다.
마이라이 학살과 Pinkville이 교차하는 지점은 '은폐와 폭로'라는 구조다. 미 국방부는 사건을 "전투 중 불가피한 사고"로 축소했고, 군 내부의 조직적 은폐 시스템이 가동됐다. 다큐멘터리는 이 조작의 메커니즘을 추적하며, 공식 기록과 실제 증언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시모어 허시 기자가 1969년 이 사건을 폭로했을 때, 미국 사회는 자국 군대가 저지른 만행과 직면해야 했다. 영화는 진실이 은폐되는 과정과 그것이 밝혀지는 순간을 병치시키며, 권력이 어떻게 서사를 통제하려 하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무겁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 역시 민간인 학살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23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 해병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게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한국 사회가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공식 사과를 하지 않았고, 진상 규명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한국국방연구원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전 관련 한국군 기록물의 상당수가 여전히 비공개 상태다. 마이라이 학살의 교훈은 분명하다. 은폐된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며, 기억을 거부하는 사회는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휴 톰슨 준위가 보여준 도덕적 용기는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남긴다. 조직의 명령과 개인의 양심이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톰슨은 동료 군인들의 학살을 막기 위해 자국 군대에 총구를 겨눴고, 그 대가로 수십 년간 '배신자'라는 낙인을 견뎌야 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내부고발자들은 여전히 보복과 고립에 시달린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사회에서, 침묵은 공모가 된다. 반세기가 넘은 마이라이의 기억이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라면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