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6일 밤, 홍콩의 애드미럴티 지역은 수만 명의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학생들이 먼저 나섰고, 시민들이 뒤를 따랐다. 경찰의 최루탄이 터질 때마다 그들은 우산을 펼쳤다. 노란 우산의 물결이 센트럴을 뒤덮었다. 79일간 지속된 이 점거 시위는 '우산혁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의 민주적 개혁을 요구했던 그들은 베이징이 제시한 '가짜 보통선거'를 거부했다. 조슈아 웡, 베니 타이, 찬킨만 같은 이름들이 역사에 새겨졌다. 하지만 그해 12월 15일,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우산의 바다는 사라졌다.
홍콩 우산혁명.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우산혁명은 단순한 민주화 시위가 아니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쌓여온 불안과 좌절의 폭발이었다. '일국양제'의 약속은 점차 빛을 잃어갔고, 베이징의 영향력은 날로 커졌다. 특히 2014년 8월 3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은 홍콩인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행정장관 후보를 친중 성향의 선거위원회가 사전 심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진정한 보통선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미래가 결정되는 순간에 침묵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우산은 최루탄을 막는 도구이자,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었다.
2021년 키위 차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Revolution of Our Times는 우산혁명 이후 홍콩의 변화를 추적한다. 2019년 반송중법 반대 시위부터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까지, 격동의 시간을 기록했다. 감독은 시위 현장의 생생한 영상과 참가자들의 증언을 교차 편집하며 역사의 현장을 재구성한다. 익명의 시위대, 기자, 의료진, 변호사 등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특히 최전선에서 싸운 젊은이들의 절박함과 두려움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 제목 자체가 2019년 시위의 구호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저항의 기록이다.
Revolution of Our Times (2021), 키위 차우 감독. ⓒ Production Company
우산혁명과 Revolution of Our Times는 5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014년의 평화적 점거가 실패로 끝났을 때, 많은 이들이 좌절했다. 하지만 2019년 홍콩인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고, 이번에는 더 격렬했다. 영화는 이 변화의 궤적을 추적한다. 우산에서 방독면으로, 평화 시위에서 도시 게릴라전으로. 그러나 본질은 같았다. 자유와 자치를 지키려는 열망이었다. 키위 차우는 이 연속성을 포착하며, 우산혁명이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났는지 보여준다.
2026년 현재, 홍콩은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었다. 국가보안법 아래 많은 민주 인사들이 수감되거나 망명했다. Revolution of Our Times 상영도 홍콩에서는 불법이다. 우산혁명의 지도자들은 감옥에 있거나 해외에 있다. 하지만 역사는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전 세계 홍콩 디아스포라는 여전히 노란 우산을 들고 있다. 그들에게 2014년 가을밤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비록 거리의 함성은 사라졌지만, 저항의 정신은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망명지에서, 암호화된 메시지로, 그리고 해외에서만 상영되는 다큐멘터리로.
우산혁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역사를 단기적 성패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체코의 벨벳혁명도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21년이 걸렸다. 홍콩의 젊은이들이 펼친 우산이 언젠가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그들이 외쳤던 "우리 시대의 혁명"은 정말 끝난 것일까? 아니면 키위 차우가 필름에 담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역사는 때로 긴 호흡으로 써진다. 우리는 지금, 그 역사의 한 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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