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12월 29일, 사우스다코타의 운디드니 크릭에서 미 제7기병대가 라코타 수족 300여 명을 학살했다. 영하 20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빅 풋 추장이 이끄는 부족민들은 파인리지 보호구역으로 이동 중이었다. 백인 병사들은 무장해제를 명령했고, 한 젊은 전사의 총이 우발적으로 발사되자 기관총 사격이 시작됐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 대부분이 학살당했고, 시신들은 눈 덮인 벌판에 사흘간 방치됐다. 이는 북미 원주민과 미국 정부 간 무력 충돌의 마지막이자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인디언 학살 운디드니.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운디드니 학살은 단순한 우발적 충돌이 아니었다. 1889년 시작된 '유령춤' 종교운동이 백인들에게 위협으로 인식되면서 긴장이 고조됐고, 정부는 이를 진압하려 했다. 리틀 빅혼 전투에서 커스터 장군을 잃은 제7기병대는 복수심에 불탔다. 매니페스트 데스티니라는 명분 아래 서부 개척이 진행되면서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 보호구역에 갇혀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다. 운디드니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결과였다.
HBO가 2007년 제작한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는 디 브라운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다. 이브 시모노 감독은 1860년대부터 운디드니까지 30년간의 원주민 수난사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에이던 퀸이 연기한 헨리 도즈 상원의원과 아담 비치가 연기한 수족 의사 찰스 이스트먼을 중심으로, 동화정책과 저항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초상이 펼쳐진다. 특히 안나 파킨이 연기한 백인 교사 일레인과 원주민 아이들의 관계는 문화적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2007), 이브 시모노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는 운디드니로 향하는 30년의 여정을 통해 학살이 단일 사건이 아닌 긴 역사적 과정의 귀결임을 보여준다. 조약 파기, 토지 강탈, 강제 이주, 문화 말살 정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면서 원주민들의 저항 의지는 서서히 무너졌다. 영화 속 찰스 이스트먼은 백인 교육을 받고 의사가 된 '문명화된 인디언'이지만, 운디드니에서 동족의 시신을 수습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다. 개인의 선의와 노력이 거대한 구조적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영화는 차분히 증언한다.
운디드니 학살로부터 136년이 지난 지금도 원주민들은 미국 사회의 가장 소외된 집단으로 남아있다. 보호구역의 빈곤율은 전국 평균의 두 배를 넘고, 자살률과 알코올 중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6년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 반대 시위에서 보았듯, 원주민의 권리와 환경은 여전히 개발 논리에 밀려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역사적 부정의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운디드니의 비극은 문명과 야만, 진보와 전통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빚어낸 참사였다.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입체적으로 그리며 역사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선의를 가진 개인들조차 거대한 체제의 일부가 되어 폭력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현실, 동화와 저항 사이에서 찢겨지는 영혼들의 고통.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구조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운디드니의 눈 덮인 벌판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서 있는가?

![[1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bury_my_heart_at_wounded_knee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