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6월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웨토에서 만 명이 넘는 흑인 학생들이 아프리칸스어 교육 의무화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176명이 사망한 이 사건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잔혹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이 비극의 한복판에서 피부색을 넘어선 우정이 싹텄다. 백인 자유주의 언론인 도널드 우즈와 흑인 의식화 운동가 스티브 비코의 만남이었다. 두 사람은 1973년 이스트런던의 한 사무실에서 처음 대면했다. 우즈는 비코를 '흑인 인종주의자'로 오해했지만, 네 시간에 걸친 대화 끝에 그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
스티브 비코와 남아공 흑인의식운동, 1970년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흑인의식운동을 이끌다 1977년 경찰 구금 중 사망한 스티브 비코. ⓒ AP통신
아파르트헤이트는 단순한 인종 분리 정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350만 백인이 2,500만 흑인을 지배하는 구조적 폭력 시스템이었다. 흑인들은 반투스탄이라는 불모지로 강제 이주당했고, 백인 거주 지역에서는 통행증 없이 이동할 수 없었다. 비코는 이러한 체제에 맞서 '흑인 의식 운동'을 주창했다. 그는 흑인들이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즈는 자신이 발행하는 '데일리 디스패치'를 통해 비코의 사상을 백인 사회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는 백인 특권층에게는 배신으로 여겨졌다.
리처드 애튼버러 감독의 Cry Freedom은 바로 이 두 사람의 우정과 투쟁을 그린다. 케빈 클라인이 연기한 우즈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지만 점차 비코의 인간성과 사상에 매료된다. 덴젤 워싱턴은 카리스마 넘치는 비코를 열정적으로 구현했다. 영화는 비코가 1977년 9월 경찰 구금 중 사망한 후, 우즈 가족이 남아공을 탈출하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낸다. 특히 비코의 장례식 장면은 수만 명의 흑인들이 '은코시 시켈렐 아프리카'를 부르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으로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애튼버러는 할리우드식 스펙터클보다는 역사적 진실에 충실하려 했다.

![[2월 2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그러나 우즈와 비코의 우정은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api/image?url=https%3A%2F%2Fcdn.asia24.co.kr%2Fimages%2Ftmdb%2F3f973d20f574915129e7bcf47fdbf81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