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5월 26일, 윈스턴 처칠은 영국 전시내각 회의실에서 생애 가장 무거운 결단을 내려야 했다. 됭케르크에 고립된 33만 명의 연합군이 독일군에 포위된 상황, 외무장관 핼리팩스는 무솔리니를 중재자로 내세워 히틀러와 평화협상을 시도하자고 주장했다. 처칠은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 벙커에서 지도를 내려다보며 고뇌했다. 영국해협 건너편에서는 독일 기갑사단이 파죽지세로 진격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이미 항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 밤, 처칠은 일기에 적었다. "우리가 무릎 꿇는다면, 영국은 영원히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윈스턴 처칠의 전시 리더십, 1940년 5월. 덩케르크 위기 속에서 나치 독일에 맞서 항전을 결의한 처칠의 역사적 연설. ⓒ Imperial War Museum
처칠의 결단은 단순한 군사적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20세기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짓는 문명사적 분기점이었다. 당시 영국 정치권은 극도로 분열돼 있었다.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이 실패로 끝난 직후였고, 처칠은 총리가 된 지 겨우 16일째였다. 의회에서는 평화파와 항전파가 격돌했고, 국왕 조지 6세마저 협상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칠은 역사를 꿰뚫어보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치즘과의 타협은 곧 자유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싸워야만 희망이 태어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조 라이트 감독의 Darkest Hour는 바로 이 운명적인 순간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다. 게리 올드만은 처칠이라는 거대한 인물을 단순한 위인전의 주인공이 아닌, 공포와 의심에 시달리는 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1940년 5월 9일부터 6월 4일까지의 26일간에 집중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처칠이 지하철을 타고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비록 역사적 사실은 아니지만, 이 허구의 순간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보여준다. 권력자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의지를 대변할 때 진정한 리더십이 탄생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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