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7월 11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빌라 크루제이루 빈민가에서 군경의 대규모 진압 작전이 시작되었다. '평화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작전은 마약 조직 소탕을 명분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21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하는 참사로 끝났다. 헬리콥터에서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어린아이들이 학교 바닥에 엎드려 있던 장면은 브라질 사회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파벨라라 불리는 이 빈민가들은 19세기 말 노예 해방 이후 갈 곳 없던 흑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곳으로, 정부의 방치와 차별 속에서 폭력의 온상이 되어갔다.
브라질 빈민가 폭력. 관련 역사 사진. ⓒ Public Domain
브라질의 빈민가 폭력은 단순한 치안 문제가 아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진 극심한 빈부격차와 인종차별, 토지 소유의 불평등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다. 1980년대 코카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빈민가는 마약 조직의 지배 아래 놓였고, 정부는 이를 군사적으로만 해결하려 했다. 경찰의 무차별 진압은 오히려 주민들을 마약 조직의 품으로 밀어 넣었고,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빈민가 청소년들에게 총을 든 마약상은 때로 유일한 롤모델이었고, 생존은 곧 폭력을 의미했다.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의 City of God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리우데자네이루의 실제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카메라를 꿈꾸는 소년 호케치의 눈으로 본 빈민가는 폭력이 일상이 된 공간이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리틀 제가 냉혹한 마약왕 리틀 제로 변해가는 과정, 복수가 복수를 낳는 갱단 전쟁,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함께 펼쳐진다. 실제 빈민가 출신 배우들이 연기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적 사실성과 영화적 미학을 동시에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City of God (2002),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 ⓒ Production Company
영화 속 시다지 데 데우스와 실제 브라질 빈민가의 폭력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둘 다 국가의 방치 속에서 자체적인 질서를 만들어냈고, 그 질서는 총구에서 나왔다. 영화에서 경찰은 마약상들과 거래하거나 무고한 주민을 죽이는 또 다른 폭력 집단일 뿐이다. 이는 1998년 빌라 크루제이루 작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빈민가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폭력의 굴레에 갇혀 있었고, 그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2026년 현재, 브라질 빈민가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 불황과 팬데믹의 여파로 더욱 악화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세계 곳곳의 도시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파리의 방리유, 로스앤젤레스의 게토, 서울의 쪽방촌까지, 도시 변두리의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폭력과 차별의 그늘에서 살아간다. City of God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이 구조적 폭력의 순환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영화의 주인공 호케치는 카메라로 빈민가를 탈출했다. 그의 사진은 세상에 빈민가의 참상을 알렸지만, 동시에 그곳에 남은 사람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예술은 현실을 고발할 수 있지만, 현실을 바꾸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브라질 빈민가의 폭력은 단순히 치안의 부재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진 불평등과 배제의 역사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보이지 않는 빈민가가 있지 않은가?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듣고 있는가?

![[3월 4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이는 1998년 빌라 크루제이루 작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https://pltpjrfdfxxbnivrtoew.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films/city_of_god_backdrop.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