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주 노갈레스와 소노라주 노갈레스는 같은 계곡의 생활권에 국경이 그어지며 그 양쪽에서 자라난 두 도시입니다. 주민들의 혈통도 먹는 음식도 듣던 노래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국경 북쪽 주민의 소득은 남쪽의 몇 배에 이릅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첫 장을 바로 이 철조망에서 시작합니다. 지리도 문화도 인종도 설명하지 못하는 격차 앞에서, 두 저자가 지목한 범인은 제도였습니다.
두 저자의 구분은 단순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넓은 계층이 정치에 참여하고 재산권이 보장되며 새로운 도전자가 낡은 강자를 밀어내는 '창조적 파괴'가 허용되는 사회를 두 사람은 포용적 제도라 부릅니다. 반대로 권력과 부가 소수 엘리트의 손에 고이도록 설계된 사회는 착취적 제도입니다. 남쪽 노갈레스가 가난한 것은 남쪽 사람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주민들이 만든 부를 엘리트가 걷어 가는 구조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저자는 사이먼 존슨과 함께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상은 바로 이 통찰에 주어졌습니다.
책의 논지를 여기까지 붙잡아 두고 지난 6월 18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내놓은 발표를 겹쳐 읽어 봅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화장품·농수산식품·생활유아용품·패션의류, 이른바 4대 유망 소비재의 수출이 95.8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4퍼센트 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특히 화장품은 40.9억 달러로 28.6퍼센트 뛰었습니다. 유럽에서 39.6퍼센트, 중남미에서 66.1퍼센트라는 가파른 성장세도 눈에 띕니다.
이 숫자를 마주하는 흔한 방식이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좋은 물건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이겼다는 이야기, 요컨대 '시장의 승리'라는 서사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을 읽은 뒤라면 그 서사에서 한 겹이 빠져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시장에서 이겼다는 말은 결과의 묘사이지 원인의 설명이 아닙니다. 무엇이 그 많은 중소기업을 링 위에 올려놓았는가를 물어야 비로소 원인에 닿습니다.
노갈레스 사례에서 얻을 결론은 명료합니다. 부는 개인의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재능이 부로 바뀌도록 허용하는 제도가 두꺼워서 쌓입니다. 이름 없는 화장품 제조사가 유럽 매대에 오르려면 브랜드를 지켜 줄 지식재산권, 위조품을 걸러 줄 통관과 인증, 큰 유통업체에 휘둘리지 않도록 받쳐 주는 계약 질서가 먼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이것들은 시장이 아니라 제도의 영역입니다. 중남미에서 66퍼센트가 뛰었다는 통계 밑에는 보이지 않는 제도의 두께가 깔려 있는 셈입니다.
여기서 두 저자의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이 특히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포용적 제도의 핵심은 어제의 강자가 오늘의 신인에게 자리를 내주는 순환을 막지 않는 일입니다. 화장품 시장이 그 좋은 예입니다. 대형 브랜드가 앞서 있던 자리에 작은 브랜드들이 기획력 하나로 밀고 들어와 해외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고 성과가 실력으로 판가름 나는 판이 어느 정도 열려 있었기에 이런 갈아엎음이 가능했습니다. 반대로 그 판이 소수의 손에 잠겨 있었다면, 오늘의 성장률은 애초에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수출 정책이 겨냥해야 할 층위도 분명해집니다. 정책의 성패는 몇 개 품목의 수출액을 얼마나 밀어 올렸느냐가 아니라, 어떤 제도를 두껍게 했느냐로 갈립니다. 포용적 제도의 언어로 옮기면, 새로 진입하는 작은 기업이 큰 기업과 같은 출발선에 서도록 문턱을 낮추는 일, 좋은 제품이 자본이 아니라 실력으로 판로를 얻도록 시장을 여는 일입니다.
여기에 이 책의 경고가 함께 따라옵니다. 착취적 제도는 노골적인 독재에서만 자라지 않습니다. 지원이 늘 하던 곳으로만 흐르고 성과가 검증된 몇몇 강자에게 예산이 쏠리며 새 도전자보다 기존 수혜자가 문을 지키는 순간, 지원 정책은 조용히 착취적 제도의 얼굴을 합니다. 창조적 파괴가 막힌 자리에서는 어제의 승자가 내일의 병목이 됩니다. 4대 소비재의 성장률이 자칫 몇몇 대형 브랜드의 성적표로 수렴한다면, 숫자는 늘어도 제도는 얇아지는 역설이 생깁니다.
포용적 제도의 반대말이 무지원인 것도 아닙니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이 착취적이라 부른 것은 개입의 양이 아니라 개입의 방향이었습니다. 소수에게 부를 몰아주는 개입은 착취적이고 다수에게 기회를 여는 개입은 포용적입니다. 그러니 수출 정책의 질문은 '얼마나 지원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진입을 열어 주는가'로 다시 세워집니다. 중남미의 66퍼센트가 스무 개 대기업의 몫인지, 이백 개 신생 기업의 몫인지에 따라 같은 숫자가 전혀 다른 제도를 증언합니다.
수출 통계는 국경의 북쪽에서 찍힌 사진과 같습니다. 사진 속 번영은 진짜지만 그 사진이 왜 남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찍혔는지는 프레임 밖의 제도가 결정했습니다. 지난 5개월의 성장률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보증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소수의 성벽을 높이는 데 쓰이느냐, 다수의 문을 여는 데 쓰이느냐에 따라 우리는 북쪽 노갈레스로 향할 수도 있고 남쪽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남는 문장은 하나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것은 자원도 기후도 아닌, 사람이 만든 규칙이었다는 것. 6월의 수출 숫자를 다시 봅니다. 이 숫자가 어떤 규칙 위에 서 있는지, 그 규칙이 몇 사람의 것인지 물을 때 철조망 이편과 저편의 거리는 비로소 우리 문제가 됩니다. 번영은 만들어 두는 일이 아니라, 열어 두는 일이었습니다.
번영과 빈곤을 가르는 것은 지리도 문화도 인종도 아니라 '포용적 제도냐 착취적 제도냐'라는 저자들의 구분을, 중소벤처기업부가 6월 18일 발표한 K-뷰티·K-푸드·패션 수출 실적에 대입한 점.
수출 호조를 '시장의 승리'로 읽는 통념을 뒤집어, 정책이 겨냥할 것은 수출액 자체가 아니라 신생 기업의 진입을 여는 제도의 두께임을 논증한 점.
지원이 소수 강자에게 쏠릴 때 좋은 의도의 정책도 착취적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점.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도입부와 본문 논지
- 알라딘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북프라이스 · ISBN 9788952766984
- nobelprize.org · 2024 경제학상 공식 발표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4대 유망 소비재 수출 동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