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체문화 연구
'인체공학(Ergonomics)'은 물체나 환경을 인간의 몸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 공학의 한 분야다. 경추 부담을 최소화하는 높이의 베개, 손목 부담을 줄이는 각도로 설계된 키보드와 마우스, 척추부담을 줄이는 형태의 의자 등 소위 '인체공학적 설계가 반영되었다는 제품을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체공학적 설계가 적용된 제품들은, 처음에는 다소 낯선 외형에 생소함을 느낄지라도, 시간을 두고 사용해 보면 그동안 써 왔던 도구들의 관습적인 형태가 사실은 몸에 부담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문·사회과학에서는 '신체문화 연구(Physical Cultural Studies)'1) 라는 이름이 붙은 분야에서 인체공학과 비슷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이 나름의 기술적 제약 조건 속에서 베개나 키보드, 의자를 만들어 사용했으나 시간이 흐른 후 인체공학적 고려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처럼, 관념이나 제도 역시 특정한 역사적 조건이나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경과하고 인간의 삶을 둘러싼 조건들이 변화함에 따라 비판과 극복을 요한다.
신체문화 연구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신체의 활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관절의 가동범위랄지 하는, 인간 신체의 물리적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문제시하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해도 되는지, 아니면 하면 안 되는지를 결정하는 규범이나 관습이다.
2. 마스크 착용과 수행성의 작동
코로나 바이러스(이하 Covid-19) 대응을 위한 마스크 착용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태 초기에는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문화 차이가 매우 격렬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서구 국가들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아시아계 외국인이 인종차별 피해를 입었다.3)
신체의 수행성(performativity)에 주목하는 연구자라면 마스크 착용 문제를 둘러싼 정황을 마스크 (미)착용이라는 행위가 관념과 정체성을 구성한 사례, 즉 수행성이 작동한 사례라 파악할 것이다. 신체문화 연구와 수행성 이론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3. 젊은, 여성, 정치인의 퍼포먼스
2021년 6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등에 스티커 타투를 하고 국회 본청 앞에 선 일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는 타투 면허 발급요건과 타투업자의 위생관리 의무, 정부의 관리·감독 등을 규정한 '타투업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타투이스트들의 타투 합법화 시위를 지지하는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였다.
류 의원의 퍼포먼스는 신체문화 내지 수행성 연구자에게는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사례다. 류 의원의 타투 퍼포먼스에는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는 세 코드가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성윤
독일 할레- 비텐베르크 대학교 박사과정
신체문화 연구는 단순히 학술적 관심을 넘어서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코로나19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동서양 간의 문화적 갈등은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안전'이라는 가치 충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이 과정에서 마스크라는 물질적 대상이 어떻게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의 표지로 작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류호정 의원의 타투 퍼포먼스 역시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는 복합적 정체성이 어떻게 사회적 반응을 야기하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신체문화 연구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 즉 누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고 없는지를 결정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실제적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정체성이 행위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수행성 이론은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며, 소수자의 정체성 유지 전략을 분석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마스크 착용과 같은 일상적 행위조차 문화적 정체성과 정치적 신념이 얽힌 복합적 현상임을 보여주며, 글로벌 시대 문화 갈등을 이해하는 분석틀을 제시한다.
전통적 정치 공간에서 소수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식의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정치 참여의 다양성 확장 가능성을 탐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