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표1. 취향을 설계하는 일상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설정한 알람이 울린다. 반쯤 감긴 눈으로 알람을 끄고 비밀번호를 누른 후 카톡부터 여러 SNS의 상황을 훑어본다. 별 의미없이 흘러간 밤사이 일들을 확인하면 어느새 잠은 달아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엘리베이터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유튜브를 켠다. 취향대로 고른 플레이 리스트가 뜬다. 얼마 전까지 무료로 사용하다가 프리미엄으로 바꿨다. 영상 중간중간 나타나는 광고가 보기 싫었고, 이용하던 음악 스트리밍 앱보다 사용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자 그냥 하나로 통일하자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설정한 알람이 울린다. 반쯤 감긴 눈으로 알람을 끄고 비밀번호를 누른 후 카톡부터 여러 SNS의 상황을 훑어본다. 별 의미없이 흘러간 밤사이 일들을 확인하면 어느새 잠은 달아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유튜브를 켠다. 취향대로 고른 플레이 리스트가 뜬다. 얼마 전까지 무료로 사용하다가 프리미엄으로 바꿨다. 영상 중간중간 나타나는 광고가 보기 싫었고, 이용하던 음악 스트리밍 앱보다 사용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자 그냥 하나로 통일하자는 생각으로 결제했다. 그랬더니 아주 편한 구석이 많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은 콘텐츠들이나를 반긴다. 어쩜 나의 취향을 그렇게도 잘 아는지.
일을 하는 도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여러 알람이 울린다. 귀찮아서 몇몇앱들은 알람을 껐지만 메일이며, 카톡이며, 한 시간에 몇 번은 울리는 것 같다.그리고 짬을 내어 미리 골라둔 사진을 올리거나 메모해둔 글들을 업로드한다.몇 십분 간격으로 들어가 반응을 확인하고 댓글에 답변도 한다. 그렇게 한동안떨어지는 폭포처럼 흘러가는 타임라인에 눈을 맡긴 채 손가락이 바빠진다. 다시일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필요할 때는 아예 폰을 뒤집어 두고 잠시 토라진친구를 대하듯 의식적으로 멀리한다.
퇴근 후, 나는 아침과 달리 떨어지는 해를 보면서 또 하루를 잃은 나의상실감을 달래는 음악을 듣는다. 조용한 곡이다. 그리고 다시 앱을 열어 특정요일마다 연재되는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편마다 짧게 구성돼 있어서 30여분 되는 퇴근길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어느 때는 너무 짧게 느껴져 통째로 후다닥 다 읽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적당히 만족하고 있다. 후에 연재가 완료되고 책으로 묶여 발간되면 구매해서 긴 호흡으로다시 읽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만나면 좋은 친구 MBC는 이제는 옛말이고 힙한모습으로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녀석과 자주 마주한다.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정규 방송 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시간이면언제든지 볼 수 있게 준비된 채널은 드라마, 영화 그리고 다큐 등 장르를 넘어구하기 힘들었던 콘텐츠도 아주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가끔 불법 경로를이용하며 가졌던 죄의식마저 사라지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또한 추천받은것들은 하나같이 재밌고 알차다.
다행히 와이프와 공유하는 콘텐츠도 서로가 닮아있어 가끔은 '아, 내가 처복은 타고났구나' 하며 뜬금없이 부부의 사랑을 재확인하기도 한다.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들을보면서도 어서 커서 핑크퐁 말넷플릭스: 만나면 좋은 친구들고 넷플릭스를 같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서재에 모아둔 책에 끄적여 둔 짧은 서평도 좋지만, SNS에 적은글과 공유한 음악 그리고 북마크에 담긴 좋은 기사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생각이 든다. “아빠가 모아둔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자랐고 그것으로부터 많은영감을 받았습니다."라고 인터뷰하는 성공한 뮤지션이 내 아들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예전부터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근묵자흑이란 옛말도 있다.또는 상대방을 알고 싶다면 친구를 보라고도 했다. 나의 취향은 하루 종일내 곁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내 주변을 장악하며 나의 눈과 귀와 영혼을 사로잡는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렇게 내가 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은 콘텐츠를나름대로 엄숙하게 결정하는 것으로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음악,좋은 글, 좋은 영상, 이러한 것들을 소비하는 곳을 이제는 플랫폼이라고 부른다.나는 이런 플랫폼에 휩싸여 있다. 대화를 한 기억은 없지만 누구보다 나를 잘아는 친구를 둔 것 같기도 하고, 전지전능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나를 감시하는것 같기도 해서 괜히 머쓱할 때도 있다.
이처럼 나는 내가 소비하는 모든 콘텐츠가 수많은 데이터를 잡아먹으며 성장하는 거대한 플랫폼으로부터 제공받고 있으며, 그 안에서 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면서 나는 내가 된다.
중학교 때 나는 춤을 췄다. 저녁 먹고 손꼽아 기다린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을 비디오로 동시 녹화한 후 학교로 들고 가 친구들과 같이 보면서 장기자랑이나 청소년 축제를 준비했다. 그동안은 시험의 부담도, 나를 움켜쥐는 어른들의 손아귀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춤은 삶의 낙이었고,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TV에 비추던 댄스가수들의 무대를 하나둘 흉내 내며 가졌던 즐거움의 종점은 각종 경연대회에서 상을 타는 것이었다.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와 교접하는 방식이었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구나 하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경연장은 경쟁이 아닌 커뮤니티가 됐고, 새로운 기술과 특별한 안무에 서로가 환호했다. 또한, 그것은 구석진 어느 굴다리에서 약속한 듯 만날 수 있는 정회원의 자격이 부과되는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기도 했다. 이런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 교장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서 한 달에 한 번 있었던 특별수업에 추가했다. 정식 동아리가 된 것이었다. 우리는 학교 강당 구석에서 몸을 놀려가며 그 속에서 행복했고, 나는 우리 학교 댄스왕이 되길 꿈꾸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정된 정보와 지원 그리고 좁은 커뮤니티를 통해서 나를 표현할 길 밖에 없었던 옛날과 지금은 다르다.
최근 어느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장래희망 중 유튜버가 상위 순위에 올라와 있다. 운동장 구석에 열린 개구멍마냥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며 어른들이 허락하지 않은 행위가 과도해지고 그것이 중독과 일탈로 이어지면서, 유튜브는 14세 이하 이용자는 라이브 방송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유튜브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반증하는 내용이다. 우리를 사로잡던 그 꿈의 모습은 닮았을지는 몰라도, 정보를 접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더 빠르고 더 쉽고 더 간단하게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자 조마조마하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장면을 놓칠까 봐 기다리던 시절은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 하나면 원하는 뮤지션들을 검색해 공연 무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엄지척'도해보고 댓글로 호응도 남길 수 있다. 실시간으로 라이브 채팅과 방송을 통해 나의 취향을 교류하고 공유할 수도 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고 했던 시절, TV 속 세상은 또 다른 차원일 뿐이었다. 그러나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의 콘텐츠는 나라고 왜 못할까, 맘만 먹으면 저것보다 더 나은 영상도 만들 수 있겠다고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됐다. 커버 춤으로 영상을 남겨 전 세계에 팬을 만들 수도 있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방 화면에 찍히는 점수가 아니라 '좋아요'와 '시청수'를 세어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세이 '호~오!' 하면 '호오’하고 돌아오는 관객들의 피드백 대신,
라는 외침이 자막과 함께 화면을 채울 수 있게 됐다.
정신 차려 보니, 스마트폰을 쥐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기획자이자 뮤지션이었던 나도 이런 흐름에 자연스럽게 발맞추며 나아갔다. 음악을 한다는 의미는 더 이상 곡을 쓰고 녹음을 하고 앨범을 찍어 TV에 나와서 공연을 하는 패턴이 아니었다. 이제는 녹음을 하고 뮤비를 만들어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플랫폼에 노래를 선공개한다.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그 자체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 나의 공간으로의 초대장과 비슷한 것이 됐다. 3초 안에 클릭을 끌어내는 intro (인트로) 영상에 고민하고, 해쉬태그와 키워드를 선정해 수많은 플랫폼에서 효과적으로 타인들과 접촉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렇게 취향과 작품을 공유하며 때때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계정은 조용히 팔로우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 둘 모인 팔로워는 광고 노출이나 공연 등을 통한 부가가치의 원천이 된다.
3. 나는 이렇게 새로운 광장을 만났다
편의성과 만족감을 제공하는 맞춤형 콘텐츠 추천이 동시에 사용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메커니즘임을 드러낸다. 개인의 자율성과 프라이버시 간의 긴장관계를 자각하게 만든다.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플랫폼 기반 콘텐츠 소비로 보내는 현대인의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기술이 삶의 구조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규정된 방송시간의 전통 미디어에서 온디맨드 스트리밍으로의 전환이 가져오는 자유로움과 그로 인한 새로운 의존성을 조명한다. 개인화된 세계 속에서의 고립 가능성을 시사한다.
편의성과 만족감을 제공하는 맞춤형 콘텐츠 추천이 동시에 사용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메커니즘임을 드러낸다. 개인의 자율성과 프라이버시 간의 긴장관계를 자각하게 만든다.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플랫폼 기반 콘텐츠 소비로 보내는 현대인의 일상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기술이 삶의 구조를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규정된 방송시간의 전통 미디어에서 온디맨드 스트리밍으로의 전환이 가져오는 자유로움과 그로 인한 새로운 의존성을 조명한다. 개인화된 세계 속에서의 고립 가능성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