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공동체에서 학문공동체로의 탈바꿈... '문망'한 인문학도가 꿈꾸는 전환기의 대학
교회에서 울려 퍼지던 오르간 소리와 도서관의 닫힌 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지요. 그러자 문이 잠겨 못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불쾌한 일인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이 잠겨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은 어쩌면 더욱 고약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1. '문송'을 넘어 '문망'한 인문학도의 눈으로
본인은 2012학번 세대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2012년도에 영문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이후 다른 전공으로 전과를 하거나 복수전공 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단일 전공으로 2015년에 학부를 졸업했다. 학부 졸업과 동시에 동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과정을 시작한 본인에게 쏟아진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되었다. 대학 내에서 인문학을 연구하는 교수님들과 선배들은 응원을 보냈고,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을 내비쳤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에둘러 신중한 선택을 재차 권유했다. 후자의 사람들에게 본인은 학부 조기졸업과 수석졸업에서 오는 이점을 활용하지 못한 채, '인구론'과 '문송'의 길을 구태여 선택한 자로 보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06년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 121명이 문과대학설립 60주년을 맞아 선포하고 진단한 '인문학의 위기'는 2010년대에 진입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심지어 2015년에 이르면 '인문계 졸업생의90%가 논다'는 뜻의 '인구론'과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문송(합니다)'라는 자조적 신조어가 일종의 '밈'2)으로 유행했고, 언론도 이 용어들을 중심으로 인문학 경시현상을 심도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본인이 학부를 졸업한 시기가 딱 이 시점이기 때문에 본인에게 쏟아지는 걱정은 당시 취업시장에서 외면당한 인문학, 그중에서도 그나마 취업이 용이한 상경계열이 아닌 문·사·철 중 한 전공을 선택한 데에서 비롯되는 염려에 가까웠다. 그리고 본인을 향한 염려는 2017년 동일 전공으로 박사 진학을 결정하면서 더욱 직설적인 방식으로 전해졌다. '도대체 왜? 내지 '나중에 무엇을 먹고살 생각으로?', ‘국내 박사가 경쟁력이 있나?’라는 노골적인 질문이 연쇄적으로 쏟아졌고, 그 질문에 숨은 날카로운 화살촉은 이후 본인의 향후 진로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본인에게 쏟아진 주변 반응은 본인만의 특정 상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2010년대 이후 더욱 어려워진 취업난의 상황 속에서 하루빨리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않는 대학원생을 정면에서 겨냥한 걱정 내지 걱정을 표방한 공격에 가까웠다. 이처럼 대학원생을 지식을 탐구하고 추구하는 연구자 혹은 학문후속세대로 보기보다는 대학에 '붙잡힌 자'로 바라보는 자조적 관점이 2015년 이후 인기를 끈 다수의 웹툰과 에세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3) 이런 맥락에서 본인을 향한 주변의 걱정과 염려, 안타까움은 당시 인문학 관련 대학원 제도 및 대학원생에 대한 사회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이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하겠다.
그렇다면 본인이 영문학 전공을 선택한 지 약 10년이 흐른 지금은 어떠할까? 분명 상황이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문과라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문송'은 '문과라 망했습니다'라는 '문명'으로 대체되었고 그 안에서 인문학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9년간 전국 4년제 대학에서 인문계열 학과 수는 통폐합을 거쳐 약 16% 가량 축소된 반면 공학계열의 학과 수는 같은 기간 약 8.5% 증가했다.4) 송구함을 넘어 망함 혹은 소멸의 길로 접어든 것처럼 보이는 인문학의 추락은 온라인에서 자조적으로 확산되는 밈처럼 정녕 4차산업혁명 시대의 필연적 과정이자 결과인 것인가?
이 글은 오늘날 트렌드로 등극한 융합이나 융복합이 아닌 순수인문학을 전공하는 한 박사과정 수료생이 지난 10년간 대학 안팎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문망'한 인문학도가 꿈꾸는 전환기의 대학에 대한 청사진을 소박하게나마 제시하는 글이다. 따라서 이 글은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대학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이나 해법, 혹은 자기계발을 스스로 강제하여 무한경쟁시대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MZ 세대를 분석하는 학문적 글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이자 인문학 전공의 학문 후속 세대로서 지닌 개인적 소망이 담긴 단상에 가깝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이하의 장은 '문망한 인문학도의 눈으로 바라본 대학의 위기, 그리고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실천 과제로서 학문공동체의 회복 필요성에 대해 논구해보고자 한다.
2. 도처에 깔린 위기의식과 커져가는 지원 격차
2000년대의 목전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경험한 대학은 그로부터 10년 후 '인문학과의 위기'를 절감하게 된다. 2010년을 기점으로 국내 대학다수의 인문학과는 난무하는 대학 재정 구조 개선 정책과 실무형 인재양성 교육 과정 개발 여파로 학생 정원 감소와 학과 통폐합의 문제에 직면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오늘날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도,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여 피할 수도 없는 ‘대학의 위기’가 엄습해왔다. 그런데 여기서 찬찬히 되짚어보아야 할 점은 지난 20년간 상시화된 '위기'는 정확히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이다. 진리 교육의 장으로서의 대학의 위기인가 아니면 실무 인재 배출의 장으로 기능하는 기업형 대학의 위기인가? 아니면 보다 협소하게,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제 체제에서 상품 가치가 온전히 인정되지 않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다루는 분과학문만의 위기인가?
2003년 5월 대학이 사회 변화와 미래의 산업 수요에 맞춰 연구를 진행하고 이에 적합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추진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 개정 이래, 국내 대학은 산학협력을 전담하는 산학협력단을 설치하여 교육혁신과 산학연혁신을 위한 다각화된 시도를 시행해왔다. 구체적으로 SW(소프트웨어)중심대학사업, PRIME(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 LINC(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 CK(대학특성화)사업, ACE+(자율역량강화)사업 등이 대표 지원사업이자 제도로서 대거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대학이 직면한 '위기' 혹은 대학 구성원이 체감하는 '위기 의식'은 해소되기보다는 더욱 심화되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전국대학노동조합이 진행한 한 설문 조사는 대학이 직면한 현 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인구 절감으로 인한 신입생 모집의 어려움과 다년간의 등록금동결로 인한 대학 재정 악화를 지적하지만,5) 앞선 산학연 연계 지원 사업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원 확보와 재정 안정화만이 모범적 해답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더욱이 산학연 혁신과 연계 강조는 일정 부분 인문학 도외시 현상을 심화시키고 정당화하는 역효과로 작용하기도 했다. 예컨대 감소하는 학령 인구, 시대 변화와 사회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산학연 지원 사업의 취지는 바람직하나, 그 틀 안에서 다수의 인문 계열 학과가 콘텐츠학부 융합학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등으로 일괄 축소·통폐합되거나 이공 계열에 흡수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는 점은 분명 심각한문제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인문학과가 없어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이제 더 이상 농담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 된 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대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은 크게 늘어난 한편, 인문 사회 분야와 과학 기술 분야 간의 지원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비대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최근 5년간 정부 지원 R&D는 평균 8.9% 예산 증가율을 보이며 2017년 대비 약40% 이상 증가했지만, 인문 사회 분야의 R&D 연평균 예산 증가율은 평균 1.3%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정부 지원 R&D 예산 내에서 인문 사회 분야의 R&D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1.6%에서 2021년 1.2%로 하락했다.6) 결과적으로 급증한 정부 지원금 대다수가 이공계 분야에 집중 투자된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강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인문사회와 과학 기술의 융복합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지난 2019년 134억 원이었던 융복합 연구 분야 연구비를 2021년 179억 원까지 증액했지만, 연구비 총액이 정체된 상태에서 이뤄지다 보니 결과적으로 다른 사업의 예산을 줄이는 역효과”가 발생했다고 적확하게 지적한 바 있다.7) 이 지적은 날로 고조되는 인문학 위기 의식과는 유리되고 상반된 지원 체제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본인이 대학에 입학한 이래 대학 내 인문학 경시 풍토는 매년 다른 방식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앞서 개괄적으로 살펴본 것처럼, 열악하고 차별적인 연구 지원의 폐해는 대학 내 전임교원뿐 아니라 불안전한 생계를 유지하는 비전임교원과 학문후속세대에게까지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연구재단은 ‘이공 분야 박사과정생 연구 장려금’ 지원제도를 통해 연 2,000만 원 수준으로 이공계열 박사과정생을 국가적으로 지원하지만, 인문 사회 분야 박사과정생이 신청할 수 있는 지원 제도는 전무하다. 물론 이러한 편향성을 개선하기 위해 2020년부터 연구재단에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박사학위 소지자’) 및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B유형(석사학위 소지자)’을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문사회 분야와 이공분야 간의 지원 편차는 막대한 편이다. 일례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A유형)는 매년 약 300명을 선발하여 연 4,000만 원 이내에서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지만 이공 분야의 학술 연구교수의 최소 인건비는 연 5,000만 원인 실정이기 때문이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B유형)의 경우, 연간 1,800명 내외를 선발하는 비교적 큰 지원제도이지만 과제당 지원 금액은 연 1,400만 원 수준이고 1년 단기 과제라는 점에서 연속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이에 더하여 인문사회 분야의 학생 인건비와 이공 분야의 학생 인건비도 각각 상한선과 하한선에서 차별적 기준을 보인다. 인문 사회의 경우, 학사 과정은 월 100만 원, 석사 과정은 월 180만 원, 박사 과정은 월 250만 원 이하로 인건비 지급이 가능하지만 이공 분야의 박사 과정 최소 지급액은 월 250만원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서 겨우 꿈꿀 수 있는 최대치가 다른 한쪽에서는 최저 하한 셈이다. 더욱이 인문 사회 과제에서 지급되는 인건비를 수혜받기란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연구재단이 발표한 '2017~2020년 4년제 대학 전임교원 중앙정부연구비 과제수 및 수혜율에 따르면 인문사회 분야의 과제 수혜율은 평균 13%를 겨우 웃돌기 때문이다. 반면 이공 분야 과제 수혜율은 43%를 크게 상회한다.8) 따라서 인문 계열 학생이 학생 인건비를 지원받는 과제에 참여하는 것은 상당히 운이 좋은 소수의 경우에 속하고, 과제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인건비를 상한선에 맞춰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들이 실제 수령하는 월평균 인건비는 30만원 이내로 알려져 있다9)
3. 인문학경시와 인문학 열풍 사이에서
이공계열과 비교했을 때, 매우 열악한 지원 체계 속에서 연구와 생계를 이어 나가야 하는 학문후속세대는 대학 내에서 함께 연구하고 교류하기보다는 우선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연구의 꽃은 플라톤의 <향연>처럼 수업과 세미나가 끝난 후 한데 모여 하나의 주제에 대해 찬찬히 토의하고 토론하는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생존의 길을 각자 찾아나서야 하는 자들에게 이런 여유는 쉬이 허락되지 않는다. 소액이더라도 일정 금액의 수익을 보장하는 조교, 시간강사, 대학 밖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며 잽싸게 흩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심슨가족>에서 등장인물 바트가 대학원생을 흉내 내며 '작년에 난 60만 원 벌었다'고 조롱한 장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빈곤한 대학원생의 삶을 비틀어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온라인에서 '인구론', '문송', '문망'이라는 자조적 신조어와 함께 매우 빈번히 활용되는 온라인 ‘짤’10)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 상황은 결국 학문의 약화와 후속세대와의 단절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예술 및 인문학을 제외한 모든 계열의 전공에서 박사학위자는 연 5,000만 원 이상의 인건비를 수령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던 반면, 인문학 박사 취업자의 약 37.3%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연봉 2,000만 원 이하에 허덕이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된 바 있다. 이어서 연봉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을 수령한다는 답변이 약 20%를 차지했다.11) 통계로 보자면 인문학 박사 취업자 중 절반 이상이 월 실수령액 224만 원 이하의 생계를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박사학위 취득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했을 때, 이 수치는 인문학도를 향한 자조적 신조어가 기실 인문학 경시와 외면의 현실을 일정 부분 반영한 슬픈 자화상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참으로 역설적인 점은 201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인문학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했다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대학 내에서 대학(원)생들이 인문학 전공을 외면하는 경향은 점점 짙어졌지만,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을 배우고자 하는 인문학열풍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즉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사회 초년생들이 인문학 전공만으로 시장 경쟁 체제 내에서 안정적인 직업군을 선점하는 것은 바람직하거나 효율적이지 않은 선택으로 보였지만, 대학 밖에서 일반 시민들의 인문학 학습은 평생 교육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장려되었다. 이때 각 지자체에서 설립한 평생학습관과 자유시민대학 제도가 중추적인 교육 기관으로 기능하며 2010년대 중반 이후 대폭 확대되었다. 이른바 인문학을 바라보는 대학 안팎의 동상이몽 현상이 전개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본인 역시 2019년에 시행된 시간강사법으로 인해 대학 내 인문학 전공강의 기회를 얻기는 어려웠지만, 오히려 대학 밖에서 더욱 다양한 강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대학 내 인문학 위기와 대학 밖 인문학 열풍은 어떻게 동시대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더욱이 인문학 전공의 학문후속세대인 '나'는 이 모순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어쩌면 이 모순적 상황이야말로 오늘날 대학이 직면한 위기를 상시화한 채 그 위기에 함몰되기보다는 그로부터 빠져나올 출구를 개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는 곧 대학 내 인문학과 대학 밖 인문학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대학 혹은 대학 교육의 위기에 관한 논의는 본질적으로 대학이란 무엇이며 대학이 추구하는 이념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으로 초점이 옮겨진다. 주지하듯이, 민주 교육에 대한 열망과 시도의 역사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Academeia) 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자본의 자기력이 강력하게 영향을 끼치는 오늘날의 대학에서 순수 학문의 숭고한 이상이나 성찰을 바탕으로 한 지적 욕구 충족,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장착한 견제는 충만히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보다 추요하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항 담론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실험하고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대학이 비판적 앎의 생산이 아닌 기계적 지식 답습과 사회 질서 공고화에 얽매일 때, 대학이 육성하는 인재는 사회적 연대와 결속을 꿈꾸는 공동체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경쟁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무하려는 순응자에 가깝다. 올해 Y대학교에서 최저임금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소 노동자의 시위 때문에 학습권을 침해받았다며 청소노동자들을 고소한 일부 대학생의 편협한 생각은 공동체보다는 오롯이 자신을 최우선으로 설정한 끝에 소위 '공정'이라는 왜곡된 믿음을 극단적으로 표출한 사례가 아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대학 밖에서 대학이 외면한 다른 부류의 인문학 바람이 강하게 분다면, 그 열풍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점점 옅어져 가는 공동체 의식과 성숙한 시민 의식의 필요성을 절감한 현대인의 시대적 요청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전적으로 복무하고 종속되기보다는 스스로를 자립하는 인간, 반성하는 인간, 성찰하는 인간으로 호명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분출된 바람은 아닐까? 물론 이 관점은 인문학을 소비적으로 활용하려는 관점을 배제한 채, 대학 밖 인문학 열풍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읽어낸 입장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오늘날 위기를 맞이한 것은 개별 분과 학문 틀에 갇혀있는 인문학 연구와 학문 후속 세대 재생산의 차원이지, 자립적 인간과 성숙한 공동체 구성을 염원하는 인문학 교육 그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2그리고 이 지점에 '문망한 인문학도가 꿈꾸는 전환기 대학의 탈바꿈이 자리한다. 이 탈바꿈은 개별 분과 학문을 깊이 연구하되 열린 캠퍼스에서 다른 전공과 소통하고 협업하며, 열린 광장에서 시민 사회의 요청에 응답하는 개방적 학문 공동체의 구성으로 실천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내 인문학과 대학 밖 인문학의 선순환이 필요하다.
4. 학위 공동체에서 학문공동체로의 탈바꿈
대학은 개인의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학위 공동체에서 대학 구성원 간 다양한 관점을 나눔으로써 상호 협력하고 상호 보완하는 학문 공동체로 변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초·중·고 12년의 학업 결실이 맺어지는 합격의 문이자 통과 의례로 여겨진다. 대학으로의 진학과 대학에서의 수학의 가치는 어느새 국내 및 국제대학 순위가 높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 미래 전망이 뛰어나서 높은 취업률과 고연봉을 보장하는 학과에 진입하는 것, 자유로운 지적 탐구보다는 정량화된 학점 관리에 매진하는 것, 경쟁 사회에서 요구하는 세분화된 자격증을 획득하고 스펙을 쌓는 것과 동일시된 것 같은 분위기마저 풍긴다.
학위 공동체에서 개개인의 목표가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우수한 인재로서 개인을 성장시키는 것이라면, 학문 공동체의 목표는 개인의 목표와 공동체의 목표를 모두 포괄해야 한다. 이때 개인의 목표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철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관점을 지닌 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연대하는 법을 익힘으로써 성숙한 지성인이자 시민, 책임감 있는 동료이자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대학 이런 학문 공동체를 위한 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이 꽉 닫힌 강의실과 연구실, 도서관 자리에서 각자도생하는 법을 습득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자기 개발을 끝없이 강제하는 단방향적 궤도에서 빠져나와 그 궤도가 과연 어디로 향하는지, 그 궤도의 대안은 없는지, 그 궤도로부터의 이탈은 어떻게 가능한지, 나아가 그 이탈의 의미는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그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학문 공동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때로는 그 과정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정치적으로 단일하지 않아 소란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그 탐구의 과정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이때, 이 탐구를 추동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문학의 기본정신인 비판 의식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를 '뉴리버럴아츠 인문학'13)이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이를 '자율적 학문공동체'14)라고 불렀다.
이러한 학문 모델을 어떻게 명칭할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모델을 구성하는가의 문제이다. 본인은 대학이 학문 공동체 구성의 물적 토대이자 윤활유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대학구성원들이 한데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년간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는 대학의 모습을 많이 변화시켰다. 이제 대학 구성원들은 비대면 수업에 익숙해졌고 비대면 수업의 장점과 효율성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사이 대학은 방역 수칙과 비용 절감의 문제로 대학 내의 상당한 공간을 폐쇄했다. 대학 캠퍼스는 외부인들의 출입을 불허했고, 강의실은 굳게 닫혔으며, 세미나실은 대여가 불가했다. 대학은 '나'와 다른 전공과 다른 시선을 갖고 세계를 바라보는 자와 몸을 부대끼고 감정을 나누며 말을 섞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이 제공하는 것은 비단 공간만이 아니다. 결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성의 경험, 하나로 수렴하지 않으려는 배려의 자세, 우선순위를 매기지 않으려는 평등과 연대, 책임의 원리, 이 모든 것이 대학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열린 광장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공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이것을 경험한 바 있다.
개별 분과 학문의 선후배 및 지도 교수와 제한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개방된 공간에서 교류해야 하며, 대학은 이 물리적 공간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의 출입을 막는 남성 중심적 대학 도서관 제도에 분노했다. 하지만 이내 열린 하늘을 보며 “그런데 문이 잠겨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은 어쩌면 더욱 고약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대학은 폐쇄된 공간에서 타자의 출입과 개입을 불허하는 막힌 학문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 존재의 출현과 개입을 환대하는 열린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사유의 유연성을 증진해야 한다. 평평하고 굴곡 없는 길, 그리하여 예측 가능한 만남과 소통보다는 굴곡지고 비탈진 길에서 펼쳐지는 긴장감 넘치는 모험과 색다른 경험, 예기치 못한 사건이 만들어내는 샛길이 보다 충만하지 않겠는가? 학위 공동체가 아닌 학문 공동체의 형성은 곧 이 사회를 구성하는 단단하지만 유연한 토대가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인문학이 참여할 길이 있다. 대학 내 인문학이 '문송'을 넘어 '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면, 그것은 분명 닫힌 공간과 닫힌 학문 내에서 추락일 것이다.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여전히 인문학적 문제의식과 비판 의식,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 내 인문학과 대학 밖의 인문학 구분은 모호할 뿐만 아니라 이제 불필요하다. 그러므로 두 입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상시화된 위기를 깨고 전환의 시대에서 대학이 공적 역할을 발휘할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선순환이다. 대학 내 인문학과 대학 밖 인문학 사이의 선순환을 상상하고 실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분명 다양하다. 대학이 분과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의 위기에 매몰되지 않고, 지금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통찰과 성찰, 비판 의식을 함양하는 데 기여한다면 인문학은 결코 ‘망할’ 수 없다. 따라서 ‘문망’한 인문학도가 대학에 바라고, 또한 머지않아 실천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대학이 제공하는 개방된 공간에서 학문 공동체가 형성되고, 그 공동체를 통해 사유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전공의 틀에 갇히지 않은 관계, 다른 관점과 대안을 침묵시키지 않는 자세, 나이와 신분에 따른 위계 질서가 아닌 수평적 동료 의식이 핵심이다. 이 학문 공동체는 교수, 학생, 학문후속세대, 조교와 강사, 직원 등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 이 포괄성과 개방성에 인문학이 나아갈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글을 마친다.
1) 버지니아 울프, 오진숙 역, <자기만의 방>, 솔, 2007, 49쪽.
2) 밈(meme)은 사회구성원이 온/오프라인에서 자발적으로 전파하는 일종의 놀이나 행동 등을 통칭한다. 본래 이 용어는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mimeme'와 인간유전자를 뜻하는 'gene'을 결합하여 만든 합성어이다. 도킨스는 문화적 확산과 전파, 복제 현상을 설명하고자 이 용어를 고안했다.
3) 네이버 웹툰에서 현재 연재 중인 <대학원 탈출일지>와 연재가 완료된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대학원생활부터 시간강사의 삶을 조망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등이 대표적이다.
4)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인문계 학과는 2012년 962개에서 2021년 807개로 감소했다. 공학계열은 2012년 1333개 학과에서 2021년 1,446개 학과로 확대되었다. <‘문송’넘어 '문망'... 인문학 박사 37%, 연봉 2,000만원도 못 번다>, <중앙일보>, 2022.3.4.
5) <대학 직원 96%, “현재 대학은 압도적 위기상황”>, <한국대학신문>, 2021.1.19.
6) <인문사회 R&D 예산 비율 지속 감소 “예산 규모 늘려야”> <e대학저널>, 2022.5.13.
7) 위의 글.
8) 위의 글.
9) <정부R&D 예산 중 인문학은 1%... “연구생 월 30만원도 못준다”>, <중앙일보>, 2022.3.24.
10) 온라인 상에서 공유되는 이미지 파일을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이다.
11) 백원영, 송창용, 손희전, 이은혜, 이지은, 김혜정, 윤종혁, <박사조사(2021) - 국내시규박사 학위취득자 실태조사>, 한국직업능력연구원, 2021, 100쪽.
12) 김재인, 김시천, 신현기, 김지은, <뉴리버럴아츠(A New Liberal Arts) 인문학의 정립 - 뉴노멀시대 한국인문학의 길>,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22, 48쪽.
13) 위의 글.
14) 정철민, <자율적 학문 공동체로서 대학의 이념 탐구>, <교육철학연구> 제36권 제2호, 2014, 191~206쪽.
김지은,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를 졸업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루스 이리가레 · 마이클 마더의 <식물의 사유>를 공역했고, 발 플럼우드의 <악어의 눈> 역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riri99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