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構造)로부터의 구조(救助)
휴머니즘이라는 괴담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1) 한결같은 태도는 대개 미덕으로 통용되므로, 정보라의 문장은 얼핏 긍정적인 의미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글 전체의 맥락을 고려해보면, 이는 포스트휴먼은 고사하고 그냥 휴먼도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인간이 포스트휴먼 시대에도 차별을 일삼게 되리라는 뜻이다. 인간은 시대를 불문하고, 낯선 타자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인간에게도 폭력적으로 군다. 이들은, 즉 우리는 어느 때나 영악하고 잔인하다. 포스트휴먼 담론이 거론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자리 잡은 현시대도 예외는 아니다.
줄곧 배제돼왔으나 주체성을 주장하기 시작한 타자들, 이들의 귀환이 포스트모더니티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2) 이러한 타자들을 반영하고자 다양한 담론들이 출현했으나, 이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위해 고안됐다기보다는 기존의 지배 논리 안으로 이들을 편입시키고자 급조됐다고 볼 수 있다. 타자들의 자리를 마련해주려는 움직임은 지정된 자리에 타자를 속박해두고 다시 동일성의 원리로 이들을 포함하고자 하는 눈속임에 가깝다. 소외돼온 타자들이 자신의 몫을 부여받는 일은 전에 없던 큰 성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지배 체제의 기준과 타협하는 방식이며, 타자들에게 온정을 베푼다는 식의 시혜적 태도를 긍정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간악함은 <안녕, 내 사랑>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서술자인 '나'는 자신이 처음 개발한 인공 반려자 ‘1호’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1호는 실제 모델명이 아니며, '나'가 자신의 첫 번째 기계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다. 내부 전원이 수명을 다한 상태이기에 작동조차 잘 되지 않는 1호를, '나'는 자신의 "첫사랑"이자 “‘인공’이 아닌 진짜 반려자”(128쪽) 라고 생각해 옷장 안에 앉혀두고 폐기하지 않는다. '나'가 1호와 나눈 사랑을 과시하고 자신에게 1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피력하는 대목은 어딘가 과도해 보인다. 이는 ‘개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인간의 영혼을 되살린다는 생각이 자기애라는 신경증에 가깝다’3)는 해러웨이의 말을 상기시킨다. 인간이 반려동물에게 그러듯, 인공 반려자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망하는 '나'는 1호가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나를 위한 존재”이며 “완전한 ‘내 것’”(127쪽)이라고 믿는다. 이는 인공 반려자와의 관계 또한 인간의 시선에서 일방적으로 정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계를 자기만의 관점에서 왜곡한 채, 기계에 온정을 쏟는 자신의 인간성에 도취해 있는 '나'는 대다수의 인간이 타자를 어떤 방식으로 취급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수거된 뒤에 본사의 재활용품 공장에서 1호의 시신이 '처리' 될 것을 생각하니 섬뜩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1호가 먼지 냄새나는 내 옷장 속에 영원히 누워 있는 모습과 비교해보면 차라리 정식으로 처리되는 쪽이 1호를 위해서도 나을 것 같았다. (...중략...) 제품 카탈로그 페이지를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1호와 거의 비슷하게 생긴 갈색 머리에 녹색 눈의 인공 반려자를 발견하고 나는 결심을 굳혔다.
이 회사는 배송이 빠른 편이다. 지금 주문하면 세스가 떠나기 전에 새로운 1호가 도착할 수 있다. 그러면 세스가 했듯이 동기화시키면 된다. 중간단계를 한 번 거치기는 했지만 1호의 기억은 전부 그대로 새로운 1호에게 저장될 것이다. 옷장 속에 앉아서 전원이 켜질지 안 켜질지 언제나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만드는 가슴 아픈 고물이 아니라, 나와 지냈던 시간을 모두 기억하는 새로운 1호와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안녕, 내 사랑>, 139쪽
1호에 저장된 기억을 새로운 기계에 옮기는 데 성공한 '나'는 노후한 1호에게 작별을 고하려 한다. 변변치 않은 공간에 영원히 머무는 것보다 “정식으로 처리되는 쪽이” 1호에게도 나은 처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본사에 1호의 수거를 의뢰하고 1호와 외양이 비슷한 인공 반려자를 주문한다. 1호의 기억을 1호와 닮은 기계에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함이다.
인간인 '나'는 1호가 자신이 폐기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하지 않는다. 그저 폐기되지 않은 채 “고물”로 남아있는 1호를 지켜보는 일이 '가슴 아프다'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다. 따라서 1호와의 추억을 동기화한 새로운 모델이 그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자 고통 없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런 '나'의 결정은 타자를 알아가고자 노력하기보다 타자란 응당 이래야 한다는 주관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인간을 상기시킨다. 더불어 타자를 대하는 자신의 온정적인 태도에 심취해 있는 '나'의 모습은 휴머니즘이라는 감상이 얼마나 일방적인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나'는 결말에 이르러 인공 반려자에게 살해당한다. 1호가 '나'에게 헤어짐을 고하는 장면은 인간이 기계에게 이별을 고하던 장면과 무서울 정도로 닮았다. “당신에게만은 대체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고 싶었”(141쪽)다고 '세스'의 입을 빌려 토로하는 1호는 '나'가 그랬듯이 '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기에 '나'가 자신을 폐기하려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1호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인식돼왔으나 오히려 인간과 동일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이별을 고했던 인간처럼, 1호는 마음은 아프지만 자신을 죽이려 한 인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을 택한다. 인간이 그랬듯, 타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자신의 안위와 편리를 우선시하는 결정을 내린다. 동일한 '처리' 절차임에도 인간이 그 대상으로 전락한 경우, 기계의 처사는 매정하며 전혀 인간답지 않은 행위로 여겨진다. 1호를 위시한 기계들의 행동은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임에도, 인간은 자기연민에 빠져 그 동일성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1호가 감상적인 인사를 건넬 때도 마찬가지다. “안녕, 내 사랑”(143쪽)은 '나'가 기계에게 해줄 때는 감동적인 작별의 말이지만, 기계가 인간에게 건넬 때는 인간성이 결여된 기계의 잔인한 언사가 된다. 이별을 고하는 주체만 인간에서 기계로 바뀌어 두 장면이 데칼코마니처럼 배치되자 이는 이질감을 창출한다. 주체의 변화가 없을 때는 노후한 기계를 처리하는 당연한 수순이자 객관적 절차로 보였기 때문이다. 같은 장면임에도 인간이 휴머니즘적으로 타자를 대할 때와 타자가 인간을 휴머니즘적으로 대할 때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 독자는 휴머니즘이란 인간중심주의에 타자를 포괄하는 기획에 불과하며, 이것이 인간에게 호의를 베풀 권력을 쥐어 주는 사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본주의, 그 단단한 지반
이 기사는 포스트모더니티 시대에도 인간이 타자를 지배 체제 안으로 편입시키며 차별을 지속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1) 한결같은 태도는 대개 미덕으로 통용되므로, 정보라의 문장은 얼핏 긍정적인 의미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글 전체의 맥락을 고려해보면, 이는 포스트휴먼은 고사하고 그냥 휴먼도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인간이 포스트휴먼 시대에도 차별을 일삼게 되리라는 뜻이다. 인간은 시대를 불문하고, 낯선 타자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같은 인간에게도 폭력적으로 군다. 이들은, 즉 우리는 어느 때나 영악하고 잔인하다. 포스트휴먼 담론이 거론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자리 잡은 현시대도 예외는 아니다.
줄곧 배제돼왔으나 주체성을 주장하기 시작한 타자들, 이들의 귀환이 포스트모더니티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2) 이러한 타자들을 반영하고자 다양한 담론들이 출현했으나, 이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위해 고안됐다기보다는 기존의 지배 논리 안으로 이들을 편입시키고자 급조됐다고 볼 수 있다. 타자들의 자리를 마련해주려는 움직임은 지정된 자리에 타자를 속박해두고 다시 동일성의 원리로 이들을 포함하고자 하는 눈속임에 가깝다. 소외돼온 타자들이 자신의 몫을 부여받는 일은 전에 없던 큰 성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지배 체제의 기준과 타협하는 방식이며, 타자들에게 온정을 베푼다는 식의 시혜적 태도를 긍정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간악함은 <안녕, 내 사랑>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서술자인 '나'는 자신이 처음 개발한 인공 반려자 ‘1호’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1호는 실제 모델명이 아니며, '나'가 자신의 첫 번째 기계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다. 내부 전원이 수명을 다한 상태이기에 작동조차 잘 되지 않는 1호를, '나'는 자신의 "첫사랑"이자 “‘인공’이 아닌 진짜 반려자”(128쪽) 라고 생각해 옷장 안에 앉혀두고 폐기하지 않는다. '나'가 1호와 나눈 사랑을 과시하고 자신에게 1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피력하는 대목은 어딘가 과도해 보인다. 이는 ‘개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인간의 영혼을 되살린다는 생각이 자기애라는 신경증에 가깝다’3)는 해러웨이의 말을 상기시킨다. 인간이 반려동물에게 그러듯, 인공 반려자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망하는 '나'는 1호가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나를 위한 존재”이며 “완전한 ‘내 것’”(127쪽)이라고 믿는다. 이는 인공 반려자와의 관계 또한 인간의 시선에서 일방적으로 정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계를 자기만의 관점에서 왜곡한 채, 기계에 온정을 쏟는 자신의 인간성에 도취해 있는 '나'는 대다수의 인간이 타자를 어떤 방식으로 취급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수거된 뒤에 본사의 재활용품 공장에서 1호의 시신이 '처리' 될 것을 생각하니 섬뜩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1호가 먼지 냄새나는 내 옷장 속에 영원히 누워 있는 모습과 비교해보면 차라리 정식으로 처리되는 쪽이 1호를 위해서도 나을 것 같았다. (...중략...) 제품 카탈로그 페이지를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1호와 거의 비슷하게 생긴 갈색 머리에 녹색 눈의 인공 반려자를 발견하고 나는 결심을 굳혔다.
이 회사는 배송이 빠른 편이다. 지금 주문하면 세스가 떠나기 전에 새로운 1호가 도착할 수 있다. 그러면 세스가 했듯이 동기화시키면 된다. 중간단계를 한 번 거치기는 했지만 1호의 기억은 전부 그대로 새로운 1호에게 저장될 것이다. 옷장 속에 앉아서 전원이 켜질지 안 켜질지 언제나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게 만드는 가슴 아픈 고물이 아니라, 나와 지냈던 시간을 모두 기억하는 새로운 1호와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안녕, 내 사랑>, 139쪽
1호에 저장된 기억을 새로운 기계에 옮기는 데 성공한 '나'는 노후한 1호에게 작별을 고하려 한다. 변변치 않은 공간에 영원히 머무는 것보다 “정식으로 처리되는 쪽이” 1호에게도 나은 처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본사에 1호의 수거를 의뢰하고 1호와 외양이 비슷한 인공 반려자를 주문한다. 1호의 기억을 1호와 닮은 기계에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함이다.
인간인 '나'는 1호가 자신이 폐기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하지 않는다. 그저 폐기되지 않은 채 “고물”로 남아있는 1호를 지켜보는 일이 '가슴 아프다'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한다. 따라서 1호와의 추억을 동기화한 새로운 모델이 그를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기자 고통 없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런 '나'의 결정은 타자를 알아가고자 노력하기보다 타자란 응당 이래야 한다는 주관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인간을 상기시킨다. 더불어 타자를 대하는 자신의 온정적인 태도에 심취해 있는 '나'의 모습은 휴머니즘이라는 감상이 얼마나 일방적인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나'는 결말에 이르러 인공 반려자에게 살해당한다. 1호가 '나'에게 헤어짐을 고하는 장면은 인간이 기계에게 이별을 고하던 장면과 무서울 정도로 닮았다. “당신에게만은 대체할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고 싶었”(141쪽)다고 '세스'의 입을 빌려 토로하는 1호는 '나'가 그랬듯이 '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겼기에 '나'가 자신을 폐기하려 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1호는 인간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인식돼왔으나 오히려 인간과 동일하게 사고하고 행동한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이별을 고했던 인간처럼, 1호는 마음은 아프지만 자신을 죽이려 한 인간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을 택한다. 인간이 그랬듯, 타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자신의 안위와 편리를 우선시하는 결정을 내린다. 동일한 '처리' 절차임에도 인간이 그 대상으로 전락한 경우, 기계의 처사는 매정하며 전혀 인간답지 않은 행위로 여겨진다. 1호를 위시한 기계들의 행동은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임에도, 인간은 자기연민에 빠져 그 동일성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1호가 감상적인 인사를 건넬 때도 마찬가지다. “안녕, 내 사랑”(143쪽)은 '나'가 기계에게 해줄 때는 감동적인 작별의 말이지만, 기계가 인간에게 건넬 때는 인간성이 결여된 기계의 잔인한 언사가 된다. 이별을 고하는 주체만 인간에서 기계로 바뀌어 두 장면이 데칼코마니처럼 배치되자 이는 이질감을 창출한다. 주체의 변화가 없을 때는 노후한 기계를 처리하는 당연한 수순이자 객관적 절차로 보였기 때문이다. 같은 장면임에도 인간이 휴머니즘적으로 타자를 대할 때와 타자가 인간을 휴머니즘적으로 대할 때 상반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 독자는 휴머니즘이란 인간중심주의에 타자를 포괄하는 기획에 불과하며, 이것이 인간에게 호의를 베풀 권력을 쥐어 주는 사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본주의, 그 단단한 지반
이 기사는 포스트모더니티 시대에도 인간이 타자를 지배 체제 안으로 편입시키며 차별을 지속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 기사는 SF 소설을 통해 인공 반려자와의 관계에서도 인간의 자기애와 일방적 통제가 드러나며, 이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상징한다고 지적한다.
이 기사는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이 낯선 타자와 같은 인간에게도 폭력적으로 군다는 점을 보여주며, 포스트휴먼 시대에도 차별이 지속될 것임을 경고한다.
포스트모던 담론이 확산된 현시대에도 인간의 차별적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타자 포용은 지배 체제로의 편입에 불과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SF소설을 통해 휴머니즘이 인간중심주의적 사상에 불과하며, 타자에 대한 온정이 실은 자기애적 도취라는 점을 문학적으로 증명합니다.
인공 반려자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타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며, 다가올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