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보는 자기증명에 대한 이야기

차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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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열풍일까 왜곡일까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2023년 개봉 영화 중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설날 연휴를 맞아 황정민, 현빈 주연의 <교섭>,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이 출연하는 <유령>이 개봉하면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풍이 점차 식겠거니 예상되었다. 그런데, 연휴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슬램덩크>는 설 연휴 동안 1위를 차지했던 <교섭>을 밀어내고 다시 흥행 1위를 되찾았다. 누적 관객수가 그 사이 190만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이 글이 읽히고 있는 시점에서는 200만 관객을 동원하고 남았을 테다.

만 관객 가지고 고작, 이라고 말할수 있겠지만 시점과 맥락, 작품의 성격을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우선, <슬램덩크>는 애니메이션, 그것도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지금까지 극장판 <귀멸의 칼날>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200만 관객을 동원했던 바가 있었지만, <슬램덩크>는 여러모로 성격이 다르다.

우선, <슬램덩크>는 원작이라고 할 수 있을 연재만화가 일본에서는 1990년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에 소개된 이미 잘 알려진 과거의 고전이다. <귀멸의 칼날>이 최근 완간된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애당초 영화, 애니메이션을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든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슬램덩크>는 이미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방영되고 상영되었던 적도 있다. 즉, 처음 영상화된 것도 아니란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이번엔 이렇게 화제가 되는 것일까?

작품 내부적으로 요인을 찾아보자면 우선,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 즉 원작자가 직접 극장판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금껏 있었던 에피소드이기도 하지만 원작자가 원화를 새롭게 구성하면서 종이 만화나 TV 방영분에 없었던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추가되었다. 두 번째 원인이라면, TV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실망감을 원작자의 영화판이 상쇄시켜주리라는 기대감이다. “더 퍼스트"라는 부제를 붙인 제목도 이와 연관된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손을 본 그래서 성우 선택까지 모두 원작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원본성이 이 "첫 번째"라는 수식어에서 보장된다.

하지만, 이 열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요인만으로는 부족하다.<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그리고 그당시 10대, 20대로서 문화향유 주체의 시절을 누렸던, 현재 30대, 40대들의 문화 자본 및 향유의 심리와 연관해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는 <더퍼스트 슬램덩크> 영화의 소비를 주도하는 세대가 3040이라는 통계적 결과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지만 왜 하필 그 세대들이 <슬램덩크>와 교류하며, 이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다.

. 90년대 그리고 지금의 3040
슬램덩크>의 영화화 소식, 특히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참여 소식이 알려지자 3040대가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로 이미 흥분은 시작되었다. 공식 트레일러가 공개되자 수백만 회에 이르는 조회수로 응답했다. 2023년 1월 4일 영화는 일본, 홍콩,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6개국에서 개봉되었다. 그중 가장 뜨거운 반응은 역시 일본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 바로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는 'No Japan' 운동이 매우 강력한 캠페인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노 재팬' 운동의 주축이 된 세력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쪽으로 분류되는 3040세대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이 세대들이 고스란히 슬램덩크에 대한 대단한 기대감을 보이며, 개봉일부터 개봉 후기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주로 더빙판은 아동 청소년을 위해 제작된다는 업계의 선입견과 달리, 자막으로 한 번 더빙으로 두 번째라는 관람 패턴을 위해, 성인을 위한 더빙판 상영관이 평일 퇴근 시간 이후로 대거 옮겨 갔다. 이런 반응들은 그 세대들이 주로 의견을 교환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잔잔히 그러나 점차 크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더빙판에 대한 애착은 일본 문화 수입 과정의 역사와 연관된다. 1992년 <소년챔프>라는 월간 만화 잡지를 통해 <슬램덩크>가 소개될 때만 하더라도, 일본 문화의 수입이 금지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일본식 이름과 지명을 그대로 쓰는 것은 심의 규정에 어긋났기에 한국식 이름으로 현지화할 수밖에 없었다.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강백호로, 루카와 카에데는 서태웅으로 모두 한국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노 재팬'과 '슬램덩크 열풍' 사이에는 커다란 모순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노 재팬에서 부정하는 일본과 열광하는 슬램덩크 사이에는 '일본'이라는 공통분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즉, 일본산 애니메이션이라서 슬램덩크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좋아했던 20년 전의 청춘 학원 스포츠물, 그 애니메이션이 슬램덩크이기 때문에 보는 것이다. 즉,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대한 열광에는 10대 그리고 20대 시절에 대한 강한 향수와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다.

년 <슬램덩크>는 일본 만화가 아니라 말 그대로 농구를 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학원 스포츠물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이 인기는 한편 당시 간간히 AFKN과 같은 제한된 채널로 경험하던 미국 NBA 농구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슬램덩크>가 NBA와 같은 미국 대중 스포츠 문화의 일본식 현지화였다면, 등장인물과 학교 이름을 모두 한국식으로 바꾼 <슬램덩크>는 NBA 농구 문화의 한국식 자생 버전처럼 느껴졌다. 공고 등의 산업계와 인문계 고등학교로 나뉘던 학제나 학교문화의 유사성도 일본 만화라는 이질감을 희석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당시 한국의 농구 역시 아직 프로농구가 자리 잡기 이전 대학 농구와 기업 이름을 달고 뛰는 실업 농구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이었기에, 고등학교 농구 챔피언을 뽑는 과정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슬램덩크>에 이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와 같은 미국의 대중 스포츠, 문화들은 당시 버블경제의 끝을 알리고 유례없는 침체기를 맞이하기 시작하던 일본의 문화 토양 속에서 새로운 양상으로 변용,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재즈 음악이 대도시의 세련됨과 하이테크 기술의 우울한 낭만을 담은 일본 버전의 재즈 음악 '시부야케이'로 진화했고,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등의 드라마가 아시아 문화 전체로 수출되던 시절이기도 하다. 마치 우리나라의 드라마, 영화들이 수입된 장르이자 매체인 드라마 영화를 한국식 상황에 적용해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과 같은 놀랄 만한 변칙성 혼합 장르를 만들어 내듯이 일본의 90년대 상황이 그랬던 것이다.
슬램덩크>는 그런 점에서 동양인에게는 신체적으로 불가능해 그저 관상용 스포츠이자 판타지에 불과한 프로농구의 세계를 경험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동양인 고교생 농구 이야기로 아시아 현지화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아시아 문화의 종주국으로서 일본의 만화는 SF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에서 독특한 상상력의 변주되고 확장된 개성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던 시기이기도 하다.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기념비적인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이나 기타노 다케시, 이마무라 쇼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같은 감독들이 일본 영화의 깊이와 내면성을 마음껏 뽐내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 1990년대는 앞서 말했듯이 일본의 버블경제에서 거품이터지고 꺼지기 시작한 결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던 하방 경사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코카콜라 광고로 대표되던 1980년대 버블경기의 아름다운 낭만성과 일본 특유의 낙관성은 1990년대 이후 폭력 혹은 무기력이라는 양극단 속에서 학원 폭력물 혹은 야쿠자 폭력물의 세계와 <카모메 식당>, <안경(MEGANE)> 등의 힐링 구원 영화라는 이분법적 스펙트럼으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낭만과 햇빛이 사라진 곳에 침체와 우울, 죽음과 폭력이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반대로 <슬램덩크>가 소개되었던 1992년 서울, 대한민국은 대단한 활황과 호황, 경제 성장의 낙관적 시대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마치고, 1987년 민주화 운동의 결실을 맺고 난 이후 1990년대는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적 자극에 청춘들이 온전히 온몸을 맡기고 활짝 마음을 열었던 시기였던 셈이다. 아직 일본 문화가 정식 개방되기 전이었으나 이미 일본의 대중문화는 아시아 최강국의 문화적 영향력으로 도심 곳곳 특히 예민한 10대 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지금의 30, 40대에게 있어 1990년대는 스스로를 X세대라 부르며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구호보다는 서태지냐 듀스냐로 자신의 기호와 정체성을 보여주었던 첫 세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취향이 곧 나이고, 소비가 곧 개성이던 시대, 그러므로 <슬램덩크>는 그런 세대의 어떤 상징적 기호품의 중요한 공통 소재중 하나인 셈이다.

여 년이 지난 후, 지금, <슬램덩크>를 보며 1990년대를 떠올리며 향수를 느끼고, 또 울컥하면서 감동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재, 정치적, 경제적으로 스스로 위기와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 3040 세대들 특히 남성들의 유대감이 있다. 1992년 연재 당시 <슬램덩크>가 좌충우돌 농구천재 강백호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2023년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누구나 인정하듯 키 작은 가드, 선천적 한계를 가진, 송태섭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있다. 송태섭이 신체적 한계뿐만 아니라 가족적 결핍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강백호가 가볍지만 진솔하고 유머러스하지만 천재적인 캐릭터로 등장해 전체적인 이야기 톤 자체를 일종의 민담형 영웅 서사로 끌고 간다면 송태섭은 등장부터 결핍을 가진 비극적 영웅 서사의 주인공에 가깝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송태섭이 잃은 사람은 둘, 아버지와 형인데, 막상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서는 누구도 상실감이나 고통을 표하지 않고 오히려 형, 첫째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만 슬픔과 상실감, 부재감과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첫째 아들, 형, 송준섭으로 완전히 대체되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형의 부재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형의 모습은 마치 1990년대 우리가 즐겼던, 어떤 정서의 원본성을 상징하는 듯싶다. 즉, 1990년대라는 돌아갈 수 없는 낭만적 시간성, 만약, 30~40대 관객들이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면, 이야기 자체의 대단한 설득력이 아니라 바로 이 되돌아갈 수 없는 낭만적 향수와 완벽한 시간에 대한 무력감, 바로 그 때문일 테다. 만날 수 없는 세상을 떠난 젊고 튼튼한 형처럼,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났기에 완벽히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으로 박제된 10대의 형, 1990년대는 그렇게 다시 되살릴 수 없는 과거 속에 있으니 말이다.

. 90년대라는 이야기의 보고

한국에서 386은 민주화를 일군 정치 담당 세대로서의 자부심으로 스스로를 각인했다. 그 이후 70년대, 80년대생 지금의 3040세대들은 대조적으로 문화 권력에 있어서 서태지를 알고, 그 세대의 엔터테이너들이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장으로 성장해, 한국의 대중문화를 세계적 주류로 견인한 문화 담당자로서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성장의 배경에 오이디푸스적 저항이 있다면 문화적 성장의 배경에는 개방성과 호기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세대들에게 일본은 극복해야 할 대단한 그림자라기보다 경제적 선택을 통해 부정할 수 있는, 그 대안이 충분한 선택지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노 재팬 운동'이 정신적 극일의 대단한 이데올로기적 싸움이 아니라 정서적이며 경제적인 저항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다나카’라는 코미디언 김경욱의 부캐 캐릭터도 사실 1990년대 언저리 B급 문화에서 출발한 캐릭터이다. 다나카는 지금, 현재의 일본의 이미지를 변주한 캐릭터가 아니라 1990년대 일본의 호황기에 가부키초 호스트라는 유흥업 종사자를 따라한다. 다나카는 1990년대에 데뷔해 전성기를 누린 X-재팬의 <엔드리스 레인(Endless Rain)>을 부르고, 그 당시 유행했던 머리 모양과 옷을 입고 뉴 미디어 채널들을 활보한다. 사실, 90년대 일본 문화를 향하는 이 흐름 속에는 우리의 90년대를 돌아보는 복고적인 레트로의 낭만성이 감지될 수밖에 없다.

과거 90년대의 활황에 대한 그리움과 복고적 복기라는 흐름은, 스토리텔링의 주류 시장이라고 할 수 있을 미국에서도 발견된다. 복고풍 이야기 레트로 서사로 인기를 끌었던 '70년대쇼'가 2023년 ‘90년대쇼’로 돌아온 것이다. 1995년을 배경으로 한 가족 시트콤은 농구공을 든 손녀와 여전히 스타워즈에 빠진 아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 불황과 경기 위축이 예상되고 체감되는 상황 속에서 1990년대는 그렇게 향수의 원본으로 채택되고 있는 중이다. 문화적 상징성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레트로 서사에 있어서 핵심이다.

. 시대와의 교호작용, 흥행

모든 흥행한 작품에는 그럴 만한 시대적 이유가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이다. 한국의 서사, 드라마에는 유난히 복수가 넘쳐난다. 복수의 전제는 사필귀정, 정의의 귀환이다. 현실에 없는 정의 구현을 이야기 속에서 해내고자 한다. 고전 민담 <장화홍련전>부터, 가족이 매일 저녁 함께 보는 일일 드라마, 주말드라마 심지어 전 세계로 송출되는 OTT 드라마와 영화에 이르기까지, 복수는 언제나 한국 서사의 인기 소재임이 분명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꿈꾸던 소년이 어려움과 단점을 극복해나가다 결국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매우 근대적인 프로젝트의 실현처럼 보인다. 노력하는 소년에게 결실이 주어지는, 함께 꿈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면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다는 순진한 자기실현의 소박한 욕망이 고스란히 재현된 서사인 셈이다.

이젠 그런 소박한 욕망이 현실과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법한 3040, 직장인, 현실적 경제인, 가장인 아버지, 아저씨 세대들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순진한 세계관을 손수 구매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방식의 소박한 자아실현이 비현실적이라는 역설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의 현실에 없는 것을 구매하는 것, 드림 팩토리가 바로 영화니 말이다.

강유정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려대학교에서 학사, 석사,박사과정 모두 마치고 문학박사가 되었다.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과 영화평론으로 등단해 신춘문예 3관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J>, <박은영 강유정의 무비부비>, EBS<시네마천국> 등에 오랫동안 출연했고 진행도 했다. 경향신문에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출연자로 간혹 얼굴을 내민다. 지은 책으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 <죽음은 예술이 된다>, <타인을 앓다>, <스무살 영화관>,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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