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닥치면 가장 먼저 위험해지는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에어컨 없는 단칸방의 노인, 끼니를 거르는 아이, 한낮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이죠. 보건복지부가 2026년 여름철 취약계층 보호대책을 내놓은 이유입니다. 핵심은 더위가 심할 때 이들을 먼저 찾아가 챙기겠다는 겁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새 경보입니다. 정부는 6월 1일부터 폭염특보의 최상위 단계로 '폭염중대경보'를 신설했습니다. 이 경보가 내려지면 혼자 사는 취약노인 약 57만 명에게 하루 두 번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가 안부를 확인하죠. 더위가 가장 위험한 사람에게 가장 자주 닿겠다는 설계입니다.
밥상도 챙깁니다. 경로당 6만9000곳의 식사 제공을 주 5일로 점차 늘리고 그에 맞춰 양곡비를 지원합니다. 학교 급식이 멈추는 여름방학에는 전국 5600여 마을돌봄기관을 중심으로 끼니를 거를 우려가 있는 아이들을 찾아 식사를 잇습니다. 폭염과 방학이라는, 돌봄의 빈틈이 벌어지는 두 시기를 메우려는 겁니다.
여름은 점점 더 길고 독해집니다. 기상청은 올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60%로 봤죠. 정부가 폭염 경보의 최상위 단계까지 새로 만든 것 자체가 위험의 크기를 말해 줍니다. 기후가 거칠어질수록 돌봄의 청구서도 함께 두꺼워지는 셈입니다.
더 케어 컬렉티브가 쓴 The Care Manifesto(돌봄 선언)는 이런 대책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돌봄을 너무 가볍게 여겨 왔다는 것. 돈 버는 일은 한가운데 두면서 누군가를 먹이고 씻기고 안부를 묻는 일은 늘 곁가지로 밀어 왔다는 거죠.
저자들은 그런 사회를 '돌봄에 무심한 사회'라고 부릅니다. 효율과 성장을 앞세우는 동안, 돌봄은 가족이나 여성, 저임금 노동자에게 조용히 떠넘겨졌습니다. 그러다 재난이 닥치면 그제야 그 빈자리가 드러나죠. 코로나가 그랬고 이제는 해마다 더 길고 뜨거워지는 여름이 그렇습니다.
책의 또 다른 진단은 '돌봄의 위기'입니다. 돌볼 사람은 줄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느는데 사회는 그 일을 여전히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남겨 둔다는 거죠. 그 틈을 시장에 맡기면, 돈 있는 사람만 더 나은 돌봄을 삽니다. 폭염 앞에서 누가 더 위험한지가 결국 계층을 따라 갈리는 이유입니다.
책의 문제의식을 따라가 보면 이번 대책이 달리 보입니다. 57만 명에게 매일 안부를 묻겠다는 약속은 분명 진전입니다. 동시에 질문도 생기죠. 왜 그 안부를 '폭염중대경보'라는 특별한 순간에만 매일 챙길까. 평소에 그들은 누구와 연결돼 있을까. 돌봄이 비상 대책으로만 작동하면, 경보가 풀리는 순간 그 연결도 함께 느슨해집니다.
돌봄 선언이 힘주어 말하는 건 돌봄을 '비상용'이 아니라 '평상시의 기반'으로 두자는 것입니다. 소방서나 상하수도처럼, 돌봄도 사회가 늘 깔아 두는 바탕이 돼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폭염이 오든 한파가 오든 그 위에서 사람을 받칠 수 있습니다. 경보가 울려야 켜지는 안전망은, 경보가 늦으면 함께 늦으니까요.
한국의 사정은 이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듭니다. 혼자 사는 노인이 빠르게 늘고 가족이 곁에서 돌보던 시절은 저물고 있습니다. 취약노인 57만 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평소의 관계망이 그만큼 얇아졌다는 신호이기도 하죠. 폭염은 그 얇아진 그물을 가장 먼저 찢습니다.
책의 또 다른 열쇳말은 '상호의존'입니다.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모두가 생애의 어느 길목에서 돌봄을 주고받는다는 거죠. 그렇게 보면 취약계층 보호는 약자를 위한 시혜가 아니라, 언젠가 나와 내 부모도 기대게 될 공동의 바닥을 까는 일입니다. 오늘의 57만 명은 내일의 우리이기도 하니까요.
한 가지 더. 매일 두 번 57만 명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은 누군가의 노동입니다. 생활지원사와 사회복지사, 마을돌봄 종사자들이 발로 뛰어 그 약속을 채우죠. 돌봄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돌보는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는 질문과 한 몸입니다. 책은 돌봄 노동의 값을 제대로 매기지 않는 한 돌봄 사회는 구호에 그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번 대책을 깎아내릴 일은 아닙니다. 폭염중대경보 신설도, 경로당 식사 확대도, 결식아동 발굴도 모두 필요한 걸음입니다. 다만 돌봄 선언의 시선으로 보면, 그 걸음이 여름 한 철로 끝나지 않고 사철 이어질 때 비로소 '체계'가 됩니다. 대책의 성패는 발표가 아니라, 9월이 와도 그 안부 전화가 계속 울리느냐에 달려 있죠.
폭염이 와서야 안부를 묻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늘 한 박자 늦습니다. 책이 건네는 제안은 단순합니다. 돌봄을 가장자리에서 한가운데로 옮겨 놓자는 것. 57만 명의 여름이 경보가 풀린 뒤에도 안녕하기를 바란다면, 그 자리를 옮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폭염중대경보 시 취약노인 57만 명을 하루 두 번 확인합니다. 위험이 계층을 따라 갈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돌봄 선언』은 경보가 울려야 켜지는 안전망의 한계를 짚습니다. 사철 이어질 때 비로소 체계가 됩니다.
매일 57만 명의 안부는 생활지원사·사회복지사의 노동입니다. 그 노동의 값을 매겨야 약속이 구호에 그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