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다 7월 둘째주] 바스티유 함락 236주년, 광장에서 울린 자유의 함성은 지금 우리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가
세계사 · 영화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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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함락은 근대 시민사회와 인권의 기초를 마련한 역사적 사건이다. 236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광장의 함성을 실질적인 제도 개혁으로 이어내고, 디지털 시대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다층적 정체성의 시민들이 연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과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은 군주제의 억압을 상징하던 바스티유 감옥을 포위해 마침내 함락시켰다. 수감자는 일곱 명에 불과했지만, 왕권의 자의적 구금과 공포를 철거하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돌처럼 무거웠던 성벽이 무너지자 “왕이 아니라 시민이 주권자”라는 선언이 대서양을 건너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단순히 프랑스 한 나라의 반란이 아니라, 근대 시민사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 자유 · 평등 · 박애 ― 세 단어가 이후 두 세기를 관통해 인권의 기초 언어가 됐다.
바스티유 함락이 촉발한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선언했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았다. 공포정치의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의 독재, 왕정복고까지 혁명의 이상은 거듭 배반당했고, 다시 광장에서 되살아나기를 반복했다. 톰 후퍼 감독의 레미제라블(2012)이 그려낸 1832년 6월 봉기는 바로 그 반복의 한 장면이다. 바리케이드 위에서 노래하던 청년들은 혁명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불평등에 맞섰다. 위고의 원작 소설이 포착한 것은 혁명의 성공이 아니라, 정의를 향한 투쟁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진실이었다.
역사적 사건과 영화적 재현이 교차하는 지점은 '광장'이라는 공간이다. 바스티유 앞 광장에서 시작된 시민의 함성은 레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로, 그리고 다시 현실의 거리로 이어진다. 영화 속 장 발장이 보여주는 것은 법과 정의의 괴리이며, 자베르가 상징하는 것은 체제의 완고함이다. 두 인물의 충돌은 236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법이 곧 정의인가, 아니면 정의를 위해 법을 넘어설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프랑스 혁명기에도, 빅토르 위고의 시대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답을 구하지 못한 채 반복된다.
한국 사회는 광장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라다. 1960년 4.19혁명부터 1987년 6월 항쟁, 2016년 촛불집회까지, 시민이 광장에서 일어설 때마다 민주주의는 한 걸음 전진했다. 그러나 광장의 함성이 실질적인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늘 더디고 고통스러웠다. 2024년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제도 신뢰 수준은 여전히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디지털 시대의 광장은 온라인으로 확장됐지만, 익명성 뒤에 숨은 혐오와 분열이 연대를 위협하고 있다. 바스티유를 무너뜨린 시민들이 꿈꿨던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가치는, 236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광장에서 울린 함성을, 당신은 어떤 행동으로 이어가고 있는가.
2026년 한국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험대 위에 놓여 있다. 국회 앞 시위와 온라인 청원이 동시에 폭증하는 현상은 광장 민주주의가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만든 정보 편향과 가짜뉴스는 시민들의 연대를 조각내고 있다. 바스티유를 무너뜨린 파리 시민들은 공통의 적을 향해 뭉쳤지만, 오늘 한국의 시민들은 서로 다른 현실 속에서 같은 문제를 다르게 인식한다. 디지털 광장이 진정한 민주주의 공간으로 작동하려면 정보 리터러시 교육과 투명한 플랫폼 규제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5년 조사를 보면 20대 청년층의 정치 참여 의향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거 투표율뿐 아니라 지역 자치 활동, 시민단체 참여율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촛불집회 이후 형성된 참여 민주주의 문화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프랑스 혁명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제도가 아니라 시민 의식이었듯,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도 법과 제도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과 실천에 달려 있다.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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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질서 변화 반영
'[역사를 보다 7월 둘째주] 바스티유 함락 236…' 이슈를 통해 국가 간 갈등과 협력 구도가 공급망과 통상 환경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줍니다
바스티유 감옥 함락, 1789. 파리 시민들이 군주제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며 프랑스 혁명이 본격화됐다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레미제라블 (2012), 톰 후퍼 감독. 1832년 6월 봉기 바리케이드 위에서 민중이 노래하는 장면 ⓒ Universal 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