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정지선은 왜 비어있지 않은가… 도로 위 작은 무질서, 시대를 비추다.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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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교차로에서 붉은불에도 건널목을 점령하는 차량이 일상이 됐다. 통계상 준수율은 소폭 개선됐지만, 혼잡 시간대 현장 풍경은 더욱 거칠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규범의 사회적 확산 효과’로 분석하며, 사회 지도층의 태도가 대중의 규범 의식에 미치는 파장을 주목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지금, 무너진 질서의 장면이 한국의 국제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2월 18일 점심 무렵,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도산대로 인근. 우회전하던 레미콘 차량이 정지선과 일시정지를 건너뛰고 횡단보도 가장자리까지 밀고 들어왔고, 결국 50대 보행자가 차량에 치여 숨졌다. 경찰은 운전자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도심 한복판, 가장 기본적인 ‘멈춤’이 사라진 자리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불과 넉 달 뒤인 6월 10일 오전 11시 6분, 강동구 상일동. 25t 덤프트럭이 우회전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70대 여성을 들이받아 숨지게 했다. 운전자는 “사각지대 때문에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치사 혐의로 입건하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정지선·일시정지 미이행→보행자 보호 실패’라는 동일한 패턴이 또다시 반복된 것이다.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가 도입된 지 해를 거듭하고 있지만, 서울 도심 교차로에서는 여전히 붉은불 직전 가속, 정지선 넘어 정차, 초록불에도 보행자가 몸을 비집어 건너는 장면이 이어진다. 제도는 생겼지만 ‘멈춤의 문화’는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방송 보도에서도 “우회전 사고가 전체 교통사고의 10%를 차지하고,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경고가 반복된다. 이 기사도 그 현장을 따라가 본다. 

서울 중심지, 신호등이 붉은불로 바뀐 직후에도 차량은 여전히 정지선을 넘어 건널목 중앙까지 들어온다. 일부는 노란불 시점에서 오히려 속도를 높여 멈추기조차 미루고, 초록불이 켜졌지만 보행자는 좁은 공간을 헤치듯 길을 건너야 한다. 강남·종로·마포 등 주요 교차로 10곳을 주·야간과 출퇴근 시간대에 나눠 관찰한 결과, 혼잡 시간대 정지선 준수율은 체감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반복됐다.

 

그러나 공식 통계는 다른 흐름을 보인다. 횡단보도 정지선 준수율은 2022년 81.43%에서 2024년 82.12%로 소폭 상승했다(국토교통부·한국교통안전공단, 2025.2.2). 이 수치는 전일·전시간대 평균값이어서, 러시아워 같은 특정 상황의 위반률은 반영하지 않는다. 과거 집중 단속 시기에는 준수율이 70%대 중반에서 80%대로 크게 올랐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을 통한 시민 신고 방식으로 대체되며 현장 체감의 질서는 오히려 약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방향지시등 점등률은 75.59%, 제한속도 준수율은 65.47%로 여전히 낮고 전년 대비 하락했다(국토교통부·한국교통안전공단, 2025.2.2). 이는 규범의 한 영역이 무너지면 다른 영역으로 쉽게 확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규범의 사회적 확산 효과’로 설명한다. 공적 영역에서 규칙이 느슨해지거나 지도층이 법과 원칙을 경시하는 행태가 반복되면,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규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모두 그렇게 하니까 나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최근 몇 년간 일부 정치·행정 지도층의 법치 경시, 책임 회피, 도덕성 결여, 비판 무시 행보가 반복적으로 보도되면서 이러한 인식이 사회 전반으로 스며들었다.

해외 사례는 참고할만 하다.브라질은 2011~2014년 정치 지도층의 규범 경시 발언과 단속 약화가 맞물리며 교통사고 사망자가 3년간 17% 증가했고(브라질 교통부, 2015), 필리핀은 마닐라에서 신호 준수율이 급감해 국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후 ‘그린라이트 캠페인’을 도입해 회복에 나섰다(필리핀 교통부, 2022).

한국의 상황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24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약 1,636만 명으로 전년 대비 48.4%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문화체육관광부, 2025.1.15). 대중교통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건널목을 차량이 점령한 장면은 외국인의 불만으로 이어지고, 일부는 이를 시민의식의 척도로 삼는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이런 장면이 누적되면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인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지선 위반은 단속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규범이 실종된 자리에는 법 집행만 남고, 사람들은 단속을 피하는 방법만 학습한다. ‘멈춤의 문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민 신고제와 현장 단속을 병행하고, 초·중등 및 운전면허 교육 과정에서 교통질서를 ‘타인의 안전을 지키는 덕목’으로 인식시키는 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