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포르마시옹

적자의 전당? 마이너스 통장에 기댄 예술의전당, 누적 적자 703억

김선경
기사 듣기

 

국내 최대의 예술공간이 30년 동안 단 세 차례를 제외하곤 줄곧 적자였다면 믿어지는가? 공연장 운영비와 인건비까지 ‘마이너스 통장’으로 메워온 예술의전당 이야기다

누적 적자만 703억 원에 달하는 이 ‘적자의 전당’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재정난은 더욱 가중되었고, 급기야 예술의전당은 운영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30억 원에서 80억 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30년 적자의 전당 – 흑자는 단 세 번뿐

예술의전당은 지난 30여 년간 거의 매년 적자를 냈다. 1990년대 개관 초기 연간 7~11억 원 수준이던 적자 폭은 2000년대 들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이후 최근까지 운영실적을 살펴보면 예술의전당이 흑자를 기록한 해는 2008년, 2010년, 2023년 단 3차례에 불과하다

나머지 해에는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해 ‘적자의 전당’이라는 오명까지 나오고 있다

공연 수입만으로는 구조적으로 수지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 클래식·오페라 같은 장르의 자체 기획공연을 늘릴수록 오히려 적자가 커지는 형편이다.특히 흑자를 냈던 몇 해도 예외적인 재정 지원에 힘입은 바가 컸다. 2008년과 2010년에는 기업 후원이나 특별 사업수입 등 일회성 요인으로 가까스로 흑자를 거두었고2023년의 경우 정부가 예술의전당이 부담해야 할 재산세·종합부동산세 약 125억 원을 국고로 지원해준 덕분에 83억 원가량의 ‘깜짝 흑자’를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특수 요인을 제외하면 예술의전당의 본원적인 손익 구조는 여전히 적자 상태라는 의미다. 실제로 코로나19 기간 공연 취소 등으로 손실이 누적된 데다 세금 부담까지 겹치면서 2023년 기준 누적 결손금 703억 원에 이르렀다

코로나 이후 한시적으로 개설했던 30억 원 한도의 마이너스 통장은 예술의전당이 극장 운영비와 인건비 등 기본 경비까지 빚을 내 충당해왔음을 보여주며 최근 적자 심화로 그 한도를 80억 원까지 늘리려 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요컨대 예술의전당은 구조적 적자에 코로나발 충격까지 더해져 재정흑자 전환에 번번이 실패해왔던 셈이다.

수익 모델의 변화 – 자체기획 vs 대관사업

예술의전당 재정구조를 살펴보면 수익 모델의 변화와 딜레마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본래 예술의전당은 이름에 걸맞게 자체 기획·제작 공연을 통해 수준 높은 예술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 설립 이념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자체기획 공연은 수익성 면에서 “적자상품”인 경우가 많았다.

클래식 음악회나 오페라·발레 공연의 특성상 제작비용은 막대하지만 관객층이 한정적이어서 티켓수입만으로 비용을 회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술의전당은 2000년대 이후 점차 수익성이 높은 대관 사업과 부대사업에 집중해왔다

실제 2011년 기준 예술의전당 총예산 710억 원 중 자체 기획 공연 등에 투입된 예술사업비는 33억 원(5%)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시설 운영과 대관 등 수익사업 위주로 예산이 쓰였다.2007년에 공연사업비 비중이 약 15%였던 것에 비하면 크게 축소된 수준이다

오페라하우스의 기획공연 비율도 2006년 64%에서 2010년 15%까지 급감하는 등 자체 공연은 뒷전이 되고 대관 위주 운영으로 기울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반면 같은 기간 대관수입은 2005년 39억 원에서 2011년 88억 원으로, 또 공연장 내 카페·식당 운영수입은 2007년 20억 원에서 2011년 53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예술의전당이 복덕방이냐”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상업적 대관사업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편 2010년대 후반 들어 문예 진흥 차원에서 자체 기획공연을 다시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의전당을 ‘수지차 보전기관’으로 지정하여 적자 발생분을 보조하려 했지만, 정작 정부 지원금은 줄어들고 말았다

그 결과 예술의전당은 오페라·무용·미술 등 적자사업이 된 분야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2019년 사이 예술의전당 내 예술사업 예산 비중이 9%에서 4.5%로 반토막 났고, 2020년에는 3%대까지 떨어졌다 결국 수익성 악화로 자체 예술사업을 줄이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한 국회의원은 이러한 실태를 지적하며 “예술의전당이 수익성에만 갇혀 자체 기획 공연 비중만 낮추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예술의전당이 공연장 본연의 예술적 공공성과 수익사업 사이에서 방황해온 단면을 잘 보여준다.

낮은 정부 지원과 민간 후원의 한계

예술의전당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큰 요인 중 하나는 낮은 정부 지원금 비중이다. 예술의전당은 특수법인 형태로 운영되면서 매년 정부로부터 일정 예산을 지원받지만, 그 규모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예술의전당의 연간 예산 중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20~25% 수준에 머무른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수치에 따르면 2016년 25.5%, 2017년 22.8%, 2018년 26.6%로 정부 보조율이 4분의 1 내외에 그쳤고, 해마다 전체 예산의 70~75% 이상을 자체 수입으로 충당해야 했다.

이는 다른 공공 공연시설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예컨대 서울시 산하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시 출연금 덕분에 보조율이 절반을 넘고, 영국 런던의 바비칸센터는 시정부가 운영비의 50% 이상을 지원한다.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도 예술위원회가 예산 절반 이상을 지원하여 자체 조달분은 34~42% 수준에 머문다. 예술의전당처럼 자체 수입으로 75% 이상을 메워야 하는 구조는 이례적인 셈이다.정부 보조 외에 민간 기부나 후원 기반도 취약하다. 예술의전당에도 후원회가 존재하고 회원제(싹틔우미·노블회원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이는 주로 소액 후원과 관람 할인 혜택 정도여서 재정에 큰 보탬이 되지는 못했다.

기업 협찬 역시 인기 장르인 대중음악이나 뮤지컬에 비해 클래식·전통예술 분야에는 적극적으로 붙지 않는 현실이다. 미국의 케네디센터의 경우 정부보조금이 20% 미만이지만 자체 적립한 기금으로 예산의 39%를 충당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예술의전당은 장기적으로 기부금 조성이나 펀드레이징 역량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 내부 관계자들은 “후원 부족 등이 재정난의 주요 원인”이라고 꼽고 있다. 결과적으로 예술의전당은 정부 지원은 부족하고 민간 재원 조달은 미흡한 이중고 속에서, 부족한 운영비를 대관사업 수입이나 차입금으로 메우는 불안정한 재정 구조에 놓여 있다.

세금·유지비·에너지 비용… 늘어나는 고정비 부담

예술의전당의 만성 적자에는 높은 고정비용 구조도 한몫하고 있다. 우선 법적 지위상 특수법인인 예술의전당은 다른 국공립 문화시설과 달리 각종 세금 부담을 지고 있는데, 이는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한다. 예술의전당이 소유한 부지·건물에 부과되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만 합쳐도 한 해 약 5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막대한 세금이 매년 고정 지출로 빠져나가다 보니, 정부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정에 큰 압박이 된다. 예술계에서는 “동일한 공공 문화시설인데, 운영 주체가 정부 부처가 아닌 특수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술의전당에 과중한 세 부담이 지워진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2023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의전당의 세금 납부분을 대신 지원해주었는데, 이는 그만큼 해당 연도 예술의전당 자체로는 세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게다가 노후화된 시설의 유지보수 비용도 적지 않다. 예술의전당은 1988년 일부 시설 개관 이후 30년 넘게 운용되면서 곳곳의 보수·리모델링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공연장 리모델링 공사와 주차장 증축 등에 막대한 자금이 들었고, 이를 위한 차입까지 겹치며 재정 부담이 커졌다. 실제 예술의전당 측은 “노후 시설 개선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다 보니 공연 기획에 투자할 재원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시설 투자와 유지관리비가 수익사업 확대의 이면에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고정비가 에너지 비용이다. 방대한 면적의 공연장, 전시장, 부대시설을 연중 운영하다 보니 전기료와 냉난방비로 나가는 금액이 상당하다. 실제 예술의전당이 5개 공연장을 돌리는 데 든 전기요금만 1년에 약 9억7700만 원(약 10억 원)에 달한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한 달 전기요금이 1억 원을 넘길 정도로 전력 사용량이 많다. 여기에 냉난방용 가스비, 수도광열비까지 합치면 에너지 관련 지출은 연간 수십억 원대를 형성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세금, 유지보수, 공공요금 등은 영업 실적과 무관하게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인데, 예술의전당의 수입 구조로는 이러한 고정비를 충당하기에 애로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관객이 끊기면서 기본 운영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앞서 언급한 대로 운영비와 인건비까지도 결국 빚을 내 연명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공공성과 시장논리 사이의 딜레마, 해법은?

예술의전당 적자 문제가 장기화된 근본 원인에는 공공성과 시장논리 사이에서의 딜레마가 자리한다. 예술의전당은 명목상 민간 기업이 아니므로 이윤을 좇는 기관이 아니다. 순수예술의 진흥과 국민 문화향유 증진이라는 공적 임무를 띠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 공연이나 전시도 과감히 기획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 정부나 감사기관의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예술의전당 경영진도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대중성 있는 공연 위주로 편성하거나 비용 절감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는 예술기관의 존재 목적과 상충되는 결과를 낳는다. 한 문화계 인사는 “아트센터가 눈에 보이는 수익을 내야 한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이라며, 예술의전당이 돈보다 예술적 가치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정부가 재정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구조에서는 “예술의전당이 대관장사하는 곳이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정작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궁극적으로 예술의전당의 적자 문제는 공공재원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2019년 부임했던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공공성을 뒷받침하는 재무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며 국고보조금 비율을 임기 내 5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렇듯 정부 지원을 대폭 확대해 순수예술 부문의 손실을 보전해주거나, 별도의 기금을 조성하여 안정적으로 운영비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동시에 민간의 기부 문화 활성화와 후원 독려도 숙제로 남아 있다. 해외 주요 공연장처럼 기업·개인 기부금을 모아 운영기금을 마련하거나, 공연장 내 부속 시설에 대한 네이밍 스폰서십(예컨대 ‘○○기업 콘서트홀’ 식의 명명권 부여)을 도입해 일시적으로라도 대규모 재원을 확보하는 전략도 고려할 만하다. 실제 예술의전당도 2010년대 IBK기업은행의 후원으로 ‘IBK챔버홀’을 운영한 사례가 있으며, 이런 민관협력 모델을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의전당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지속 가능한 재정 모델을 구축하는 일이다. 수익성과 공공성은 문화예술기관에서 늘 충돌하는 가치이지만, 그 균형을 찾지 못하면 기관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현재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 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술의전당이 더 이상 ‘적자의 전당’으로 불리지 않고, 대한민국 대표 예술기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부·국회·문화계가 함께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재정 구조를 개선함과 동시에 운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여 시민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예술의전당은 적자 늪에서 벗어나 진정한 문화예술의 전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공공 데이터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