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옛 아카데미극장 철거 현장에서 장비 진입을 막고 농성을 벌였다는 이유로 기소됐던 ‘아카데미의친구들’ 시민 24명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의 행동을 “공적 사안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비판”으로 보았고, 폭력이나 위력에 의한 현실적 업무방해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검찰의 항소로 2심에서 다시 다뤄질 예정이다.
아카데미극장은 무엇이었나. 1963년 문을 연 단관 영화관으로, 멀티플렉스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원주 시민의 극장 문화와 각종 행사·집회가 모이던 생활문화의 거점이었다. 극장은 2000년대 중반 상영을 멈췄고, 2023년 철거로 실체는 사라졌다. 단관극장이라는 유형 자체가 전국에서 드물어진 오늘, 아카데미극장은 지역문화사와 근현대 도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로 평가돼 왔다.
보존 근거도 적지 않았다. 이 극장은 2021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에서 문화재청장상을 받았고, 2023년에는 국회 현안 질의에서 등록문화재 지정 필요성이 공론화됐다. 시민과 전문가들의 운동 속에 원주시는 극장과 부지를 매입했고(약 32억 원), 문체부 ‘유휴공간 재생’ 사업에 선정되며 국·도비가 책정되기도 했다. 보존·재생을 전제로 공적 절차가 한 차례 굴러갔던 셈이다.
그러나 시는 이후 철거 방침으로 선회했고, 극장은 2023년 가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장에서는 “보존을 전제로 한 공적 투자와 약속이 뒤집혔다”는 반발이 컸고, 시민들은 최소한의 기록·부분 보존이라도 하자는 요구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압류선고, 고공 농성, 점거 논란 등 갈등이 격화하며 대규모 사법 처리가 뒤따랐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막으려 했을까. 시민들의 핵심 논리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1960~70년대 단관극장의 원형이 비교적 온전히 남은 드문 사례로서 유형 유산의 가치가 크다. 둘째, 주민의 추억과 생활사가 축적된 장소 기억이란 점에서 무형 유산의 층위도 깊다. 셋째, 이미 진행된 매입·재생 지정과 같은 공적 절차의 일관성은 행정 신뢰의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시민들은 등록문화재 지정을 촉구하며 문화재청과 국회를 상대로 캠페인을 벌였고, 전문가 집단도 보존 필요성을 반복해 제기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형사처벌로 보호하려는 법익(업무의 평온)과 시민의 표현·참여권 사이의 균형에 방점을 찍었다. 재판부는 “비폭력적 감시와 비판”이란 성격을 인정해, 건설사·철거업체 측의 피해가 위력에 의한 현실적 방해 수준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시민행동을 공권력·공공정책에 대한 감독으로 본 셈이다.
이번 무죄는 도시재생 현장에서 반복되는 보존 대 개발 갈등에 중요한 기준점을 남긴다. 첫째, 문화유산 보존을 둘러싼 시민행동이 비폭력적이고 공익적 목적을 띨 때 형사처벌의 문턱은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 둘째, 지자체가 보존·재생을 전제로 공적 예산을 투입한 뒤 정책을 바꾸려면 그만큼 더 촘촘한 공론과 절차적 정당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셋째, 건물은 사라져도 기록·아카이빙·부분 보존 등 기억의 보존이 정책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재조명됐다. 이러한 함의는 향후 항소심에서도 쟁점이 될 업무방해의 범위와 시민 감시권의 한계를 가르는 잣대가 될 것이다.
사건은 아직 진행형이다. 검찰은 사실오인과 법리오해를 이유로 항소했지만, 1심이 제시한 기준—시민의 감시와 비판—은 도시유산을 둘러싼 갈등에서 시민이 발휘할 수 있는 정당한 참여의 범위를 넓혔다. 아카데미극장이 던진 질문은 결국 하나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기억을 어떻게 도시의 미래와 연결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