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는 한 달 6만2천 원에 서울 시내 버스지하철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정기권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전국 대중교통 정액권K-패스 도입을 예고했지만 그 내용은 기후동행카드를 그대로 흉내낸 수준에 그쳐 논란이 일고 있다.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한 전국 통합 정기권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수도권 이용자에게만 유리하고 지역 간 교통격차를 오히려 키울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단계적 도입을 내세워 좋은 정책의 본래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부 발표안을 놓고 논란이 되는 세 가지 쟁점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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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차등 없는 전국패스 수도권만 혜택 정부 예산안에 담긴 K-패스 정액권은 월 5만5천6만2천 원을 내면 전국 버스지하철을 최대 20만 원까지 이용할 수 있는 구조다. 만 1934세 청년 저소득층 등은 5만5천 원 일반 성인은 6만2천 원을 내고 한 달 동안 전국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20만 원 한도를 초과하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사용 지역 제한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상 이는 서울시 기후동행카드6만2천 원 무제한의 복사판이나 다름없다. 정작 기후동행카드보다 혜택은 뒤처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서울시 기후동행카드는 동일한 가격으로 이용 한도 없이 무제한 탈 수 있는데 정부 K-패스는 혜택 한도가 월 20만 원으로 걸려 있기 때문이다. 가격만 같을 뿐 “짝퉁 정기권”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지역별 소비 격차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요금 설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균 교통비 지출 차이는 매우 크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등에 따르면 수도권 가구의 월평균 대중교통비 지출은 10만 원 안팎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반면 지방 중소도시 등 비수도권 지역은 월 6만 원 수준에 그친다. 결국 수도권 이용자는 매달 쓰던 교통비약 10만 원의 절반 가격으로 정기권을 구입하는 셈이라 이득이지만 지역 이용자는 원래 교통비 지출 수준6만 원 내외과 비슷한 금액을 내야 한다. 지방 주민 상당수는 한 달에 교통비 20만 원어치를 쓸 만큼 대중교통 인프라가 촘촘하지도 이용 횟수가 많지도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6만2천 원 정액권을 강요하는 건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전문가들은 현재 K-패스 구조가 “수도권 중심”으로 짜여 있어 지방 이용자가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전국 교통망의 지역별 여건 차이를 감안해 권역별로 요금을 차등화하는 방안이 필요했지만 정부안에는 이런 고려가 빠져 있다. 공공교통 정책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는 애초 수도권 5만 원 비수도권 3만 원 등 지역별 차등 요금제를 제안했었다. 수도권 평균 대중교통비약 10만 원의 50% 수준인 5만 원 지방 평균약 6만 원의 50%인 3만 원으로 낮춰줘야 초기 이용자 유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취지였다. 실제 독일의 사례를 보면 낮은 요금의 정기권이 대중교통 수요를 크게 늘린 바 있다. 독일은 코로나19 이후 9유로 티켓한 달 약 1만3천 원에 이어 49유로 티켓한 달 약 7만1천 원을 도입해 대중교통 수요 확대와 온실가스 감축 등의 성과를 거뒀다. 특히 독일 전국티켓 가격49유로는 평균 소득 대비 매우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돼 수도권지방 할 것 없이 이용자가 몰렸다. 반면 한국 정부의 K-패스 6만 원대 정기권은 자칫 수도권 외 지역 주민들에겐 “그 돈 주고 굳이 살 필요 없는 카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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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 예산 부담 전가 전국 혜택 맞나 K-패스 정책을 둘러싼 재정 부담 문제도 논란이다. 이번 정부안은 중앙정부 예산 약 516억 원을 투입해 K-패스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방자치단체가 매칭 부담해야 하는 구조다. 이미 지난해 도입된 K-패스환급형 알뜰교통카드 사업에서도 국비와 함께 지방비 부담이 요구되었다. 예컨대 부산시는 2023년 K-패스 예산 85억 원 중 절반 가까이를 시 예산으로 부담했고 대구 등 다른 지자체들도 재정 부담을 떠안았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이러한 매칭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사업에 불참하거나 시행을 늦춘 곳도 많았다. “혜택은커녕 참여도 못 하는 지역이 수십 곳”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돈이 없는 지자체의 주민일수록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과연 이를 두고 전국 단위 교통복지 정책이라 부를 수 있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애초 전국 통합 정기권은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시행해야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안은 예산 지원의 무게추를 지방에 넘겨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교통정책 관련 연구에서도 현행 K-패스의 한계로 “지방 재정부담 전가”를 꼽으며 개선을 위해 중앙정부의 재정 책임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대대적인 세금 투입을 주저해 ‘반쪽짜리 지원’에 그친다면 정기권 도입의 긍정적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지역 교통망이 열악한 지자체일수록 자체 예산도 부족한 경우가 많아 정부 지원이 꼭 필요한 곳에 오히려 지원이 닿지 않는 모순이 발생한다. “중앙정부가 전액 부담해도 모자랄 판에 왜 지방에 책임을 떠넘기나”라는 비판이 현장에서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정액권 전국 시행에 따른 재정 부담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보편적인 교통 복지로 설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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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격차는 뒷전 정기권 취지 살릴 수 있나 이번 정액권 도입 방안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지역 간 공공교통 인프라 격차 해소 방안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대도시는 지하철버스 노선이 빼곡하지만 많은 지방 도시와 농어촌 지역은 대중교통 인프라가 빈약하다. 이렇듯 구조적인 인프라 차이를 그대로 둔 채 정기권만 도입하면 교통 혜택의 지역편중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액권을 사려 해도 정작 탈 버스나 지하철이 부족한 지역 주민들은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기권 도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통 정기권은 더 많은 시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교통 서비스 확대와 교통격차 완화에 있다. 따라서 정기권 시행과 더불어 지역별 대중교통 인프라 확충 계획이 병행되어야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 발표에서는 지역 교통망 강화 방안에 대한 언급을 찾기 어렵다. 예컨대 지하철이 없는 도시나 버스 노선이 드문 농촌 지역의 경우 정기권 할인보다 노선 신설증편 환승시설 개선 같은 인프라 투자가 시급하다. 독일에서도 전국 티켓을 도입할 때 정부의 재정지원과 지역 인프라 투자가 함께 이루어졌다. 독일 철도노조는 저렴한 티켓 시행을 지지하는 동시에 정부에 교통 인프라 투자 확대를 요구하며 제도의 안착을 도왔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공공교통네트워크 등 단체들도 “K-패스 도입을 인프라 투자 전략과 연계해야 한다”는 제언을 하고 있다. K-패스 이용 데이터지역별 이용률 등을 활용해 어느 지역에 대중교통 공급을 늘려야 할지 파악하고 이를 교통망 확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기권 도입이 대중교통 혁신의 마중물이 되려면 표면적인 요금 할인 이상의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계적 도입” 명분 내세워 취지 훼손 말아야 정부는 이번 정액권 방안을 두고 “일단 단계적으로 도입한 후 보완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단계적 도입이라면 계단의 최종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지금처럼 지역 간 격차를 방치한 채 수도권 수준에 맞춘 정기권만 덜컥 내놓는 것은 정책 본래의 지향점을 잃은 잘못된 단계에 불과하다. 자칫하면 K-패스 정기권은 서울 기후동행카드의 짝퉁 역할만 하다가 유의미한 수송 분담률 변화나 교통 복지 향상도 이루지 못한 채 끝날 수 있다. 정부가 교통비 부담 경감과 기후대응을 명분으로 내건 정책인 만큼 그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세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용자 눈높이에서 요금 설계의 형평성 재정지원의 형평성 인프라 개선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좋은 정책을 ‘그럴듯하게만 흉내’ 내는 관료주의적 안일함을 경계하지 않으면 정기권 도입의 긍정적 효과는 반감되고 지역 교통불평등의 골만 깊어질 것이다. 정부가 진정 대중교통의 획기적 전환을 원한다면 국민 삶의 차이를 고려한 용기 있는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 K-패스 정기권의 성공은 디테일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