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역사로 보는 세상

[8월 4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손을 잇는 기억의 정치

차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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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의 시민들이 탈린–리가–빌뉴스를 잇는 600km 넘는 거리를 사람의 체온으로 메웠다. 독·소 불가침 조약 체결 50주년에 맞춰 벌어진 ‘발트 인간띠’는 지도 위 비밀의 선을 거리 위 공개의 선으로 덮어쓰려는 장엄한 시위였다. 약 200만 명이 손을 맞잡아 만든 생생한 선은 반세기 권력의 활자를 넘어서는 기억의 형식을 제안했고, 훗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까지 등재됐다. 문서의 권위와 몸의 연대가 충돌할 때, 무엇이 역사와 주권을 재정의하는가라는 질문이 이 장면에서 시작된다.
정치란 어디까지 문서의 영역이고 어디서부터 감각의 영역인가. 1939년 8월 23일 조인된 독·소 협정의 비밀의정서는 동유럽을 구획했고, 발트 3국의 운명도 그 선 위에 올려졌다. ‘국경’이란 결국 누가, 무엇으로, 어떤 절차로 긋는가의 문제다. 발트의 시민들은 이 형식에 몸으로 답했다. 사람을 잇는 선은 법의 문장과 다르게 체온과 연민, 돌봄과 책임을 전달한다. 무력의 대치 없이도 경계를 흔드는 방식, 즉 ‘촉각의 정치’가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비밀 문서의 폭력을 소거할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이 집단 퍼포먼스는 근본적인 윤리적·철학적 질문을 제기했다.

이 주제를 은유로 비추기 위해 영화는 한 편만 고른다. 〈프라이드〉는 1984년 영국 탄광파업 당시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광부 공동체와 손을 맞잡는 과정을 그린 실화 기반의 코미디·드라마다. 서로의 싸움이 ‘같은 적’—배제와 빈곤, 혐오와 착취—에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며, 연대가 슬로건이 아니라 생활의 기술임을 증명한다. 작품 정보: 2014년, 감독 매튜 워처스, 120분, 장르 코미디·드라마. 주요 수상·이력: 칸 감독주간 ‘퀴어 팜’ 수상, BAFTA ‘영국 영화인 신인상(각본가 스티븐 베러스퍼드·제작자 데이비드 리빙스턴)’ 수상, 골든글로브·BAFTA 주요 부문 후보.

〈프라이드〉의 결정적 이미지는 낯선 타자와 손을 맞잡는 장면들이다. 정체성의 경계가 보수적 지역 공동체와 퀴어 활동가들 사이에서 적대로 굳어졌을 때, 영화는 ‘함께 걷기’와 ‘팔짱 끼기’라는 매우 낮은 기술을 꺼내 사회적 상호작용의 윤리를 새로 쓴다. 이때 손은 선언문을 대체하는 최소 단위의 조약이 된다. 발트의 인간띠가 지도 위 선을 체온으로 덮었듯, 〈프라이드〉의 인물들은 혐오의 낙인을 마을 축제의 춤과 식탁으로 지워낸다. 권력의 언어가 아닌 공동의 리듬, 즉 손에 손을 얹는 박자 속에서 정체성의 비대칭은 상호 의존으로 전환된다. 발트의 ‘거리 위 선’과 영화의 ‘관계의 선’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은 오늘의 장면에도 비친다. 2019년 8월 23일, 홍콩 시민들은 50~60km 인간띠 ‘홍콩 웨이’로 발트의 기억을 소환했다. 스마트폰 불빛과 산등성이의 라인이 만들어낸 야간의 체인 퍼포먼스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촉각적 연대가 결합할 때 집합행동의 언어가 얼마나 빠르게 번역되는지 보여줬다. 그러나 디지털의 ‘연결’이 곧 연대는 아니다. 〈프라이드〉가 강조하듯, 연대는 비용과 위험을 나누는 구체적 약속에서 출발한다. 발트의 시민들이 도로를 점유하고, 광부와 활동가들이 서로의 저녁 식탁을 열어젖혔던 그 선택이 오늘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해시태그의 손쉬운 결사보다 손을 내미는 불편의 감수다.

결국 관건은 ‘누구의 선’에 설 것인가다. 비밀의정서의 선은 타인의 삶을 대리계약으로 구획했고, 인간띠의 선은 그 구획을 감각의 공동체로 되돌렸다. 〈프라이드〉는 이 차이를 개인의 성장담이 아니라 공동체의 변환드라마로 그린다. 연대는 타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내 삶의 안전과 존엄을 타인의 존엄과 묶는 상호계약이다. 발트의 거리, 웨일스의 마을회관, 런던의 퍼레이드가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번 지도의 선이 꿈틀거릴 때, 당신은 어떤 손을 잡을 것인가. 그리고 그 손을 잡는 대가—시간·돈·평판—를 나눌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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