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만 지키면 그만인가 – 한강버스 감사가 드러낸 행정절차주의의 함정
“위법 없다”는 감사 결과, 면죄부인가
서울시가 추진한 수상 대중교통 ‘한강버스’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는 의외였다. 국회 요청으로 실시된 이번 감사에서 감사원은 서울시의 한강버스 사업 추진 과정에 “법적·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한강버스 선박 건조업체 선정과 민간사업자와의 계약 체결 등 주요 절차에 위법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감사 결과에 환호했다. 모든 항목에서 문제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며, 감사 대응으로 행정력과 세금이 낭비된 점을 오히려 지적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시민 최우선 행정을 이어가겠다”는 입장까지 덧붙였다. 마치 절차적 정당성이 곧 행정의 면죄부인 양 해석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들이 속속 제기된다. 감사원이 “위법 없다”고 판단한 그 사업이 과연 내용적으로도 타당했느냐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감사원조차 인정했듯, 한강버스 사업의 민간 사업자 선정 과정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A업체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완전자본잠식 상태, 즉 재무구조가 사실상 부실한 회사였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현재 재무상태 대신 “향후 총사업비 대비 자기자본 투입 비율” 등 미래 계획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이 업체를 높은 점수로 평가했고, 감사원은 “자체 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평가했다”고 서울시 손을 들어주었다. 결과적으로 “절차상 문제가 없으면 내용적 부실도 문제 삼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준 셈이다.
SH·민간 합작의 이면: 특혜 논란과 보조금 탈루
감사 결과를 둘러싸고 가장 큰 논란은 민간사업자 선정 과정의 특혜 의혹이다. 한강버스 사업은 애초에 민관합작 형태로 추진되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민간 선사인 이크루즈(E-Cruise)가 각각 51:49의 지분을 출자해 ㈜한강버스라는 합작법인을 설립, 운영을 맡는 구조였다. 명목상으로는 민간투자사업이었지만, 들여다보면 민간의 역할과 부담은 최소인 반면 이익과 혜택은 민간이 공유하는 구조였다. 한 토론회에서 나라살림연구소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 등이 선착장 조성부터 선박 건조 비용까지 투입한 반면, 민간사업자는 지분 출자금 49억 원 외에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이랜드그룹 계열 이크루즈는 추가 투자 여력이 없다며 현물 투입으로 대체하겠다는 공문을 SH공사에 보내왔다. 이는 2023년 7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 이랜드 측이 150억 원 투자 확약서를 제출했던 약속을 정면으로 뒤집는 처사였다. 합작법인 ㈜한강버스가 이러한 추가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자, SH공사는 결국 예비비까지 끌어와 390억여 원을 한강버스에 대여하는 실질적 지원을 했다. 선박 건조 계약상 발주자는 이크루즈였지만, 정작 건조 대금 지급 의무는 SH가 떠안는 특약까지 맺어져 있어, 선박 건조 비용도 SH가 사실상 모두 부담했다. 한강버스 운행을 위한 7개의 선착장 역시 서울시 예산으로 신설되었고, 민간사업자에게는 “내부 시설만 갖추는 조건으로 20년간 무상 사용 권한”이 주어졌다.
이러한 구조는 “민간사업이라면서 대부분의 재정적 책임은 서울시와 산하 SH가 부담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운영이 본격 시작되면 상황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한강버스의 운임 수익만으로는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우나, 대신 선착장 편의시설 임대료·판매 및 선상 카페, 광고 수입 등 부대사업 수입이 전체의 63%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지난해 한강공원 이용객이 6,900만 명에 달하지만 공식 매점은 26곳에 불과한 터라, 새로 생긴 선착장 카페·편의점 등이 막대한 매출을 올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스타벅스, 시나본 등 유명 브랜드들이 선착장 상업시설 입점을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결국 서울시와 SH가 인프라 구축과 손실 부담을 떠안고, 민간사업자는 리스크 없이 안정적 수익을 공유하는 모양새다. 오죽하면 “그레이트 한강은 그레이트 낭비”라는 비판까지 나왔을까.
부실 기업이 어떻게 선정됐나
그렇다면 애초에 왜 이런 재무구조가 부실한 업체가 한강버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었을까? 서울시는 2023년 7월 사업자 공모를 통해 이크루즈를 우선협상대상자로 뽑았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이크루즈는 2020~2022년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대규모 공공사업을 맡기기에 부적합한 재정건전성이다. 국회에서는 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애당초 자본잠식 업체를 밀어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서울시가 “현재 재무상태가 아니라 향후 자기자본 투입 계획”을 평가기준으로 삼았고 공모 기준 자체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이크루즈가 이랜드 본사의 지원 등으로 추후 충분한 투자를 할 것이라는 계획서를 제출했고, 평가위원회도 그 장밋빛 계획을 바탕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업자 선정 이후 이랜드 측은 약속된 현금 투자를 미루고 대체 방안을 찾겠다고 했고, 그 사이 사업 추진은 지연과 차질을 빚었다. 급기야 서울시는 민간 지분율 조정을 시사했다. “민간이 투자한 만큼만 권한을 행사하도록 지분 비율을 7대3 정도로 바꿨다”는 오세훈 시장의 발언이 2025년 8월 나왔다. 당초 51%였던 SH 지분을 70%까지 높여 민간의 영향력을 줄였다는 취지다. 사실상 사업 구조의 모순을 뒤늦게 인정한 셈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행정 절차의 형식만 갖추면 어떤 무리수도 용인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본잠식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절차대로 평가했으니 문제없다”는 감사원의 논리는 행정 내부 논리로는 통할지 모르나, 시민들 눈에는 무책임한 면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애당초 이 사업은 2017년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B/C 값 0.4로 경제성이 낮다고 판정받았던 사업이다. 그러나 2024년 타당성 재조사 때는 배 구매비를 계산에서 빼버리는 방식으로 B/C를 1.56으로 끌어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핵심 비용을 삭제해 억지로 경제성을 높게 보이게 한 것이다. 이렇게 내용을 조작하다시피 해서라도 절차적 통과만 시키면 된다는 식의 접근이 과연 누구를 위한 행정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행정절차법과 ‘절차주의’의 명암
행정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사업을 밀어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투명하게 결정하도록 한 행정절차법의 취지는 민주화 시대 행정의 큰 진전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행정이 공익의 실질적 실현보다 절차적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이는 “절차만 지키면 행정 내용은 문제가 없다”는 관행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행정절차법 아래에서 공청회 한 번 열고, 관계기관 협의 몇 건 거치면 일단 형식적 요건은 충족된다. 이후 해당 사업이 공공성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검토가 부실해져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절차만능주의 행정은 편리하다. 형식 요건만 갖추면 관료나 정치인의 책임을 묻기 어렵고, 이해관계가 얽힌 난제도 “법적 절차 따랐다”는 변명 뒤에 숨기 쉽다. 하지만 이는 행정에 대한 시민 신뢰를 갉아먹는 요인이 되어왔다. 내용과 상관없이 절차만 챙기는 행정은 실패한 정책이 발생해도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고, 오히려 공익과 실질적 정의 실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관료제 권력이 절차적 합법성만으로 정당화될 때, 민주적 통제는 약화되고 사회적 약자의 이익은 보호받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결국 절차적 정당성과 실체적 정당성의 균형을 되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새만금 신공항 판결, 내용으로 승부하다
최근 새만금 신공항 건설사업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판결은 행정절차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사례로 주목된다.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새만금 국제공항을 추진해왔으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해왔다. 2019년 이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마저 면제받았고, 2022년 기본계획 고시까지 강행되었다. 절차상으로는 국가계획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듯 보였다. 그러나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2025년 9월, 법원은 기본계획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환경 파괴와 안전성에 대한 검토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정부가 제출한 각종 절차 자료를 면밀히 들여다봤다. 그 결과, 국토교통부가 철새 충돌 위험 등에 대해 “의도적으로 위험도를 축소” 평가했음을 지적했다. 중요 철새도래지인 수라갯벌 생태계 파괴 영향도 “실제보다 훨씬 축소되었다”고 판단했다. 요컨대, 형식적인 절차는 거쳤을지 몰라도 내용이 부실했다는 점을 법원이 정확히 짚은 것이다. 법원은 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강행할 만큼의 “압도적인 공익”도 입증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결국 새만금 신공항은 절차상의 흠결이 아닌 내용상의 중대함으로 인해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 판결은 행정심사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킬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법원이 행정의 실질적 책임을 물은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행정이 제출한 절차적 서류를 맹신하지 않고, 그 내부의 진실성 여부를 따져봤다. 그리고 거기서 허술함과 왜곡을 발견하자 과감히 공익보다 우선시해야 할 가치, 즉 환경과 안전을 인정했다. 행정절차의 형식적 완결성보다 실체적 합리성과 국민 권익을 중시한 판단이었다. 이는 행정이 “절차를 밟았으니 문제없다”며 면피하려는 관행에 경종을 울린다.
공공성 회복을 위한 책임 행정으로
한강버스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와 새만금 공항 판결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나는 절차적 합법성을 방패로 삼았고, 다른 하나는 내용적 정당성을 칼날로 세웠다. 어느 쪽이 진정 공공성을 실현하는 길인지는 자명해 보인다. 한강버스 사업은 절차적 요건을 갖춰 추진됐지만, 그 과정에서 시민의 세금과 공익이 충분히 고려되었는지 의문을 남겼다. 반면 새만금 공항 사례에서는 절차를 통과한 계획일지라도 공익에 어긋나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이 확인됐다.
오세훈 시장은 한강버스 감사 결과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른 시민 최우선 행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진정한 시민 최우선 행정은 절차적 흠결 유무를 넘어, 그 행정행위가 시민 삶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까지 책임지는 자세일 것이다. 형식상의 법적 문제만 없으면 모든 것이 용인되는 분위기에서는 제2, 제3의 한강버스가 나오기 마련이다. 행정절차주의가 실질적 행정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이제는 행정도 스스로 내용을 들여다보고 책임지는 문화를 회복해야 한다. 절차와 실체는 행정의 두 축이다.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갈 때 비로소 공공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한강버스와 새만금 공항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