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횡단선 예타 탈락, '경제성'과 '교통복지'의 딜레마
지역 격차를 부르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학교나 상권, 녹지 환경도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삶의 질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교통이다. 도시에 사는 이상 이동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부동산 시장에서도 '교통'이 주거지 가치를 좌우한다. 아파트 분양 홍보물에는 단지가 지하철역까지 도보 10분 이내인 '역세권'인지 여부가 빠짐없이 강조된다. 심지어 모델하우스 벽면에는 단지에서 여의도·강남 등 주요 도심까지 걸리는 시간을 커다랗게 표기해 두곤 한다. 실제로 지하철 노선 신설이 예정됐다는 소식만으로도 주변 집값이 평균 3~8% 뛰고, 개통 후에는 추가로 10~15% 상승하는 등 '교통 호재'의 프리미엄이 뚜렷하다는 분석도 있다. 교통이 그만큼 우리 일상과 밀접하고 주거 만족도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서울이라면 어디서나 지하철을 쉽게 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강 이북의 강북권 지역은 이남의 강남권에 비해 지하철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숫자상 서울시 전역의 지하철역 개수는 강북권 154개, 강남권 154개로 동일해 보이지만, 이를 자치구별로 나눠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강북권은 14개 구에 평균 역 수가 11개인 반면, 강남권은 11개 구에 평균 14개 역을 가진다.
더 세밀히 들여다보면 차이는 더 명확하다. 강북권 14개 자치구 중 6개 구에서는 전체 행정동의 40~80%가 지하철역 '역세권'(통상 도보 10분 거리) 밖에 놓여 있다. 반면 강남권 11개 구 중 5개 구는 행정동 하나에 지하철역이 3개 이상 있는 동이 평균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 행정동들 중 한 동에 역이 3개 이상 들어선 곳은 103개에 달하는데, 이 중 34개 동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 몰려 있었다. 이 통계만 봐도 서울 내부의 교통 인프라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교통망 확충이 시급한 곳은 분명 강북이다.
이러한 서울 내부의 동서 교통 격차를 메우기 위해 구상된 노선이 바로 강북횡단선이다. 이른바 '강북판 9호선'으로도 불리는 이 경전철 사업은 한강 이북 지역에는 동서를 연결하는 지하철이 사실상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북쪽에 거대한 북한산이 가로막혀 지하철 노선들이 대부분 남북 방향으로만 뻗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청량리에서 서대문구 상명대학교로 이동하려면 지하철로는 곧장 갈 수 없어, 한참 돌아 시청역까지 내려왔다가 버스로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자동차로 30분이면 충분한 거리가 대중교통을 타면 1시간 이상 걸리는 게 현실이다.
서울 강북횡단선 노선 개념도. 동대문구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홍릉·월곡·길음·국민대입구·평창동·상명대·홍제·서대문구청·가재울뉴타운·디지털미디어시티(DMC)를 거쳐 양천구 목동역까지 25.7㎞를 잇는 경전철 계획안이다. 완공되면 서울에서 처음으로 한강 이북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전철 노선이 될 전망이다. 개통 시 정릉-청량리 이동시간은 35분에서 9분으로, 정릉-목동은 60분에서 20분으로, 청량리-목동은 90분에서 30분으로 단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북횡단선 사업은 2019년 서울시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되며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서울시는 강북횡단선을 민자 유치 없이 전적으로 공공재원으로 건설·운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예상 사업비만 2조 원대에 달하는 만큼 서울시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반드시 필요했다. 순수한 '교통복지' 차원의 인프라 확충으로 강북 지역의 교통 불편과 지역 발전 저해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실의 문턱은 높았다. 2023년 서울시는 강북횡단선에 대해 기획재정부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신청하며, B/C(비용편익비) 점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정거장 규모를 축소하는 등의 계획 조정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2024년 6월 나온 예타 결과에서 강북횡단선은 B/C 0.57, 종합평가(AHP) 0.364라는 저조한 점수를 받으며 고배를 마셨다. 산악 지형을 통과하느라 공사비 부담이 큰 데다, 평창동·정릉 등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을 지나 수요가 적을 것이란 점이 경제성에 약점으로 지적됐다.
이처럼 경제성 논리에 밀려 첫 관문에서 좌절하자, 강북횡단선 사업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졌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예타를 통과하기 어렵고, 경제성을 높이려 노선을 변경하면 당초 '교통 격차 완화'라는 사업 취지가 퇴색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업성을 높이려다 보면 정작 철도가 절실한 지역을 또다시 배제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예타 탈락 직후 “강북횡단선의 대안 노선을 조속히 마련해 일부 구간만이라도 사업성을 높여 재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노선을 보완해 재추진하더라도 예타 재신청까지는 여러 절차를 새로 거쳐야 한다. 서울시 도시철도망 계획을 변경하고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다, 자체적으로 사전타당성조사를 다시 실시한 후에야 비로소 예타 재심사에 도전할 수 있다. 이렇게 다시 문을 두드리는 데에만 2년 넘는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됐다.
강북 지역 주민들의 열망은 그만큼 간절하다. 기획재정부 예타 탈락 소식이 알려지자, 성북구를 중심으로 '강북횡단선 재추진' 시민 서명운동이 벌어져 26만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교통 불편 속에 수십 년째 소외된 주민들은 하루빨리 지하철을 달리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현실은 당장 녹록지 않다. 지역사회에서는 강북횡단선 사업이 이대로 '희망고문'으로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 사업이 무산된 이면에는 현행 예타 제도의 한계가 깔려 있다.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 평가는 무엇보다 경제성 지표에 좌우되는데, 강북횡단선처럼 수도권 내부 사업의 경우 지역균형발전 효과는 아예 점수로 인정되지 않는다. 기재부는 2019년 예타 지침을 개정하면서 수도권 사업 평가에서 '지역균형발전 지표'를 제외해 버렸다. 서울 안에서도 교통 인프라 소외 지역을 돕겠다는 강북횡단선의 당위성이 애당초 평가 기준에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강북횡단선 사업을 다시 궤도에 올릴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하나다. 예타 평가항목에 '지역균형발전' 지표를 다시 넣는 것이다. 마침 기재부도 2024년 7월 예타 운용 지침을 일부 손질해, 수도권 사업의 경제성 반영 비중을 10%포인트 낮추고 정책성 비중을 10%포인트 높이는 개편안을 내놨다. 평가 항목에 '수도권 내 기초지자체 간 균형발전 제고 효과 반영'이라는 문구도 추가됐다. 그러나 비수도권 사업에 적용되는 '지역균형발전' 가점 자체는 끝내 빠져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단국대학교 장재민 교수는 "2025년 초 서울시가 기재부에 건의한 내용에 '지역 균형 관련 기준'이 없었다"며 서울시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했다. 서울시는 "예타 지침 개편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진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면서 "서울시 정책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이 KDI와 지표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 해도 시간이 문제다. 설령 예타 기준 손질로 '강북횡단선 살리기'에 성공한다 해도, 그때까지 사업 지연은 피할 수 없다. 서울의 만성 교통 불균형을 해소할 강북횡단선, 과연 언제쯤이면 시민 곁에 다가올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