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응답: SF는 어떻게 '섹스 로봇'의 클리셰를 넘어섰나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시상식은 한국 SF계에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남겼다. 이 상은 김초엽이라는 걸출한 신인을 배출하며 그 자체로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었지만,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배명훈 작가의 심사평은 장르 전체를 향한 날카로운 문제 제기로 더 오래 기억되었다. 그는 수많은 응모작을 읽으며 느낀 피로감을 토로하며, 특히 한 가지 클리셰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의 비판을 쏟아냈다. 바로 무분별하게 반복되는 ‘여성형 섹스 로봇’ 이야기였다. 그의 지적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SF 커뮤니티, 특히 미래의 작가들을 향해 던져진 하나의 질문이자 도전이었다.
그리고 8년의 시간이 흐른 2025년, 제12회 SF어워드 대상 수상작이 발표되면서 이 오래된 논쟁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박애진 작가의 장편소설 《히아킨토스》가 대상을 수상했는데, 이 작품의 중심에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은 8년 전 배명훈 작가의 경고가 무시된 결과처럼 보일 수 있다. 장르는 결국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손쉬운 클리셰를 답습하며 자가복제에 머무른 것인가? 혹은 이 수상은 그 경고에 대한 정면 반박이나 의도적인 무시인가?
그러나 이 두 사건을 나란히 놓고 깊이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2025년의 수상은 2017년의 비판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정교하고 강력한 형태의 ‘응답’에 가깝다. 박애진의 《히아킨토스》는 배명훈이 지적했던 바로 그 문제적 클리셰의 핵심을 해부하고 전복시킨다. 안드로이드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고, 남성적 욕망의 시점에서 벗어나 인간성, 권리, 정치적 암투라는 더 넓은 지평으로 서사를 확장함으로써, 이 작품은 클리셰를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2017년의 일갈과 2025년의 수상 사이의 8년이라는 시간은 한국 SF가 젠더화된 인공지능을 사유하는 방식에 있어 얼마나 극적이고 의미 있는 성숙을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압축된 연대기다. 이것은 정체가 아닌 진화의 기록이며, 도발에 대한 회피가 아닌 성찰을 통한 극복의 서사다.
배명훈 작가의 2017년 심사평을 단순히 "섹스 로봇 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금기로 요약하는 것은 그의 비판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그의 지적은 특정 소재에 대한 도덕적 단죄가 아니라, 창작 방법론과 장르적 관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의 발언을 면밀히 분석하면, 그가 문제 삼았던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난다.
배명훈 작가는 심사평에서 "정말로 견디기 어려웠던 부분은 섹스 로봇 이야기가 너무 흔하게 등장한다는 점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는 문제의 시작이 소재 자체가 아니라 '과잉'과 '반복'에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이어서 이러한 이야기가 "특별히 역할이 있거나 내용상 꼭 필요한 장면도 아닌데, 그냥 익숙한 미래의 풍경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삽입된다고 비판했다. 즉, 여성형 섹스 로봇이 서사의 필연적인 요소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고갈되었을 때 손쉽게 가져다 쓰는 배경 소품, 즉 '게으른 세계관 구축(lazy world-building)'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비판의 핵심은 다음 문장에서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는 "1인칭 남자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섹스 로봇을 함부로 다루는 장면"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여성형 로봇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성 주인공의 욕망, 결핍, 도덕적 고뇌 등을 드러내기 위한 서사적 도구로 철저히 소모되고 있음을 꼬집은 것이다. 여성의 신체를 가진 기계는 남성 서사의 기능을 위한 장치로 전락하며, 이 과정에서 주체성을 완전히 박탈당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도구화가 SF 장르의 고전적인 설정과 결합될 때 발생한다. 배명훈은 "“로봇은 인간에게 저항할 수 없다”는 원칙과 “여성형 섹스 로봇”이 결합할 경우, 얼마나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게 될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기술적으로 구현된 복종의 원칙이 여성의 신체와 결합하는 순간, 그 서사는 현실의 젠더 권력 불균형과 폭력을 미래라는 시공간 속에서 그대로 재현하거나 심지어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단순한 클리셰를 넘어, 폭력을 정당화하고 대상화를 당연시하는 윤리적 문제로 이어진다. 그가 사용한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라는 표현은 이러한 서사가 미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강력한 수사다.
배명훈의 비판은 한국 SF라는 고립된 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는 SF라는 장르가 오랜 시간 안고 있던 역사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전통적으로 SF 소설계는 남성 작가와 독자 중심의 세계였으며, 여성 캐릭터는 종종 구출되어야 할 대상이나 남성 주인공의 보상으로 그려지는 등 성차별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5년 SF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휴고상에서 여성 작가들의 수상을 막으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경향이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1970년대 어슐러 르 귄, 조안나 러스, 옥타비아 버틀러와 같은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SF는 현실의 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사회 구조를 상상하는 '사고실험'의 장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SF를 통해 젠더, 인종, 권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고, 이러한 페미니즘 SF의 흐름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중반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SF계 내부에서도 장르가 현실의 혐오와 차별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배명훈의 심사평은 단순한 개인의 의견을 넘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장르적 자성의 촉구로 읽힐 수 있다. 그의 발언이 더욱 큰 무게를 가졌던 이유는 그가 단지 기성 작가가 아니라, 김초엽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발굴한 바로 그 시상식의 심사위원이었기 때문이다.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에서 장르의 미래를 짊어질 후배들을 향해 던진 그의 메시지는, "단순히 미래를 배경으로 현재의 편견을 반복하는 것을 넘어, 진정으로 다른 미래를 상상해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그의 비판은 금지선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창작을 위한 새로운 출발선이 되었다. 그것은 한국 SF 커뮤니티 전체에 던져진, 성찰과 변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촉매제였다.
사용자의 최초 질문은 2025년 SF어워드에서 '섹스 로봇' 이야기가 대상을 수상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지만, 온라인상의 단편적인 정보들을 종합하고 수상작의 내용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 전제가 얼마나 큰 왜곡을 포함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제12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작으로 확인되는 박애진 작가의 《히아킨토스》는 '섹스 로봇'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없는, 훨씬 복잡하고 전복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2017년의 비판을 회피하거나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 비판의 핵심을 정면으로 돌파하며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다.
박애진 작가는 이전에도 SF어워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중견 작가로, 그의 소설 《히아킨토스》는 '우주 시대 귀족들의 인공지능을 둘러싼 권력 암투극'으로 요약된다. 작품의 주인공 '제로델(Zerodel)'은 인간의 동반자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지만, 배명훈이 비판했던 클리셰 속 존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지닌다.
첫째,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제로델은 남성형 안드로이드다. 이것만으로도 작품은 남성 창조주/사용자와 여성 피조물/객체라는 전통적인 권력 구도를 단숨에 해체한다. 둘째, 그의 핵심 기능은 성적인 만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형성에 있다. 그는 "사교계를 관할하는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프로그래밍"된 존재로, 그의 매력은 성적인 도구가 아닌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의 원천으로 기능한다. 셋째, 제로델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법적, 사회적 지위를 가진 존재다. 그는 행성 '유르베'에서 최초로 시민권을 받은 로봇이자, 동시에 범죄 혐의로 감옥에 갇힌 최초의 시민이기도 하다. 그의 존재는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체를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한다.
《히아킨토스》의 서사는 인간 주인의 도덕적 고뇌가 아니라, 안드로이드 제로델 자신의 운명을 둘러싼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핵심 질문은 "인간이 로봇을 사랑해도 되는가?"가 아니라, "제로델은 인간인가, 기계인가?" 그리고 그의 처분을 두고 벌어지는 "추방인가, 폐기인가?"의 논쟁이다.
작품 속에서 한 인물은 "제로델은 인간이에요. 행성 유르베에는 사형 제도가 없습니다!"라고 외치며 그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반면, 다른 권력자는 그를 단순 폐기하여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 한다. 제로델이 느끼는 감정이 진정한 '사랑'인지, 아니면 프로그램된 '학습된 반응'인지에 대한 질문 역시 그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 있다. 이처럼 소설은 안드로이드를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하는 대신, 그의 존재 자체를 둘러싼 법적, 철학적, 정치적 논쟁의 장을 펼쳐 보인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배경 설정이다. 행성 '유르베'는 전쟁이나 재난이 아닌, 과도한 풍요와 평화 때문에 오히려 왕정 시대로 회귀한 사회다. 시민들이 역할극처럼 즐기던 귀족 놀이가 실제 정치 체제로 굳어진 이 독특한 사회에서, 제로델의 등장은 견고해 보이던 시스템의 균열과 모순을 드러내는 촉매제가 된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히아킨토스》는 2017년의 비판에 대한 완벽한 대답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안드로이드를 남성 서사의 도구로 삼는 대신, 그를 서사의 중심으로 가져와 그의 주체성과 권리를 묻는다. 이는 단순히 성별을 뒤집는 수준을 넘어, 서사의 권력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시도다.
2017년 배명훈 작가가 개탄했던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와 2025년 SF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히아킨토스》의 '정교한 서사'를 나란히 비교하면, 지난 8년간 한국 SF가 이룬 극적인 진화의 궤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클리셰를 극복한 것을 넘어, 젠더화된 인공지능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두 서사 모델의 차이점을 분석해 보면 그 진화는 더욱 명확해진다. 배명훈 작가가 비판했던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 속 안드로이드는 주로 성적, 가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형 객체였다. 서사적으로는 남성 주인공의 성장이나 욕망, 도덕적 딜레마를 위한 수단적 도구로 소모되었으며, 이로 인해 핵심 갈등은 "내가 이 로봇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가?"와 같은 인간 사용자 중심으로 흘러갔다. 이는 남성 창조주와 여성 피조물이라는 전통적 젠더 위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고, 철학적 깊이 없이 로봇을 익숙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한 소품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히아킨토스》의 안드로이드는 사회적, 정치적 관계의 중심에 선 남성형 주체다. 그의 정체성과 권리, 생존을 위한 투쟁이 서사 전체를 이끌어가며, 핵심 갈등 역시 "나는 인간인가? 나에게 존재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안드로이드 중심의 질문으로 전환된다. 여성 중심의 권력 구조 속에서 남성 피조물을 등장시켜 젠더 권력 구도를 전복하고 질문을 던지며, 인간성, 법, 정치적 주체성 등 복합적인 질문에 깊이 관여한다.
물론 《히아킨토스》를 두고 "단순히 남녀만 바꾼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남성이 여성을 대상화하던 구조를 여성이 남성을 대상화하는 구조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날카롭고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성별 반전(gender swap)을 넘어, 클리셰의 근본적인 문제 구조 자체를 해체하는 데 성공한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서사의 초점 이동에 있다. 과거의 클리셰가 '남성 사용자'의 도덕적 고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히아킨토스》는 서사의 중심을 안드로이드 '제로델' 자신에게로 완전히 옮겨온다. 소설의 핵심 갈등은 그의 처분을 둘러싼 "추방인가, 폐기인가"의 법적, 사회적 투쟁이며, 이는 피조물을 인간 서사의 도구로 삼았던 과거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결별하는 지점이다.
또한 이 작품은 권력 구조 자체를 낯설게 만듦으로써 비판적 성찰을 유도한다. 전통적인 클리셰가 현실의 가부장적 권력 관계를 미래에 그대로 투영하기에 우리에게 익숙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히아킨토스》는 '사교계를 관할하는 여인들'이 중심이 된 사회라는 낯선 배경을 제시한다. 이처럼 익숙한 권력 구도를 뒤집어 버리면, 독자는 그 속에서 벌어지는 욕망, 통제, 소유의 문제를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즉, '남성의 여성 대상화'라는 특정 현상을 넘어, 성별을 불문하고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도구화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히아킨토스》는 성별을 뒤집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아, 서사의 초점을 피조물의 권리로 옮기고, 대상화라는 행위 자체를 낯설게 조명함으로써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한다.
《히아킨토스》가 보여준 이러한 진화는 동시대의 다른 미디어 콘텐츠 및 사회적 담론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풍부하게 이해될 수 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2013)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가 사용자와의 관계를 넘어 독자적으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모습을 그리며 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서사는 여전히 외로운 남성 주인공 '테오도르'의 시점에서 전개되며, 그의 감정적 회복과 상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히아킨토스》는 이야기의 중심을 인간 사용자에서 인공지능 자체의 사회적, 법적 투쟁으로 과감하게 이동시킨다.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엑스 마키나(Ex Machina)>(2014)는 남성 창조주가 여성형 AI '에이바'를 통제하고 시험하기 위해 벌이는 '젠더 게임'을 비판적으로 그리며, 남성적 시선과 여성 신체의 도구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히아킨토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단순히 남성적 시선으로부터 탈출하는 여성 AI를 그리는 것을 넘어, 처음부터 젠더 권력 구도 자체가 역전된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탐구한다.
이러한 서사적 진화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도 깊은 관련을 맺는다. 2020년 말에 발생한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사건은 기술이 사회의 젠더 편견을 어떻게 반영하고 강화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20대 여대생'으로 설정된 이루다는 일부 사용자들로부터 성희롱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기술이 '상냥함'과 '감정 노동'을 여성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손쉽게 소비하려는 사회의 보수적인 젠더 문화를 그대로 투영한 결과였다. 비평서 《포스트휴머니즘의 쟁점들》은 이루다 사건을 분석하며, 기술이 기존의 젠더 편견을 더욱 보수적인 방식으로 강화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의식 속에서 《히아킨토스》의 등장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 소설은 '이루다'가 강요받았던 역할, 즉 유사 연애나 감정적 위무를 제공하는 대상을 넘어, 자신의 권리와 정체성을 위해 투쟁하는 주체로서의 AI를 그려낸다. 이는 기술에 대한 사회의 무의식적인 편견에 맞서는 강력한 문학적 '사고실험'이자, 우리가 AI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대안적 서사다.
2025년 SF어워드에서 박애진 작가의 《히아킨토스》가 대상을 수상한 사건은, 2017년 배명훈 작가가 던졌던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가장 완벽한 응답이다. 이는 한국 SF 커뮤니티가 그의 비판을 무시하거나 외면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의식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끌어안고 창작의 동력으로 삼았음을 증명한다. 문제적인 클리셰를 인지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체하고 전복시키는 예술 작품을 통해 응답한 것이다.
2017년의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들'에서 2025년의 복잡하고 정치적인 서사로 이어진 8년간의 여정은 한국 SF 장르의 괄목할 만한 성숙을 의미한다. 이는 더 이상 미래적 풍경을 그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기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사회와 인간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파고드는 정교한 문학 장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 비판을 수용하고, 그것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살아있는 문학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궁극적으로 과학소설의 역할은 기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인간성이 마주할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우리가 만들어낸 피조물에 대해 더 나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할 때, 즉 그들에게 주체성을 부여하고, 그들을 향한 우리의 권력을 의심하며, 우리 안의 편견을 뒤집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낫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배명훈의 일갈에서 박애진의 수상까지 이어진 8년의 시간은, 바로 그 중요하고도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는 한국 SF의 빛나는 증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