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세상
세계와 스크린 사이
10월 3째주 · 2025
[10월 3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석유무기와 취약한 문명
영화로 세상을 보다

[10월 3째 주 역사로 보는 세상] 석유무기와 취약한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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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셋째 주, 중동전쟁의 포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 경제의 심장부에서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났다. 10월 16일 산유국들은 원유 공시가를 전격 인상했고, 17일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네덜란드 등 서방을 상대로 원유 금수 조치를 발표했다. 이른바 ‘1차 오일 쇼크’의 개막이었다. 몇 달 사이 국제 유가는 네 배 가까이 치솟았고, 휘발유 품귀와 난방 대란, 공장 가동 중단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자동차 없는 일요일, 심야 TV 방송 중단 같은 장면들은 “석유가 멈추면 문명도 멈춘다”는 사실을 일상 속 풍경으로 새겨 넣었다. 10월 셋째 주의 이 사건은 단순한 가격 인상이 아니라, 자원이 처음으로 대놓고 ‘무기’가 된 순간이자,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번영을 쌓아 올렸는지를 폭로한 경고장이었다.

오일 쇼크가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무엇 위에 서 있는가.” 현대 산업 문명은 값싼 석유를 전제로 한 거대한 기계였고, 그 기계 위에서 성장 신화, 복지국가, 복합 문화 소비까지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산유국들이 밸브를 조금만 조여도 도시의 불빛이 희미해지는 경험은,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정치·외교의 자율성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게다가 1970년대의 충격은 오늘날 기후위기와 겹쳐 읽을 때 더욱 기묘한 역설을 만든다. 당시 각국은 석유 수급 다변화와 원자력 확대, 해저 유전 개발 등 “더 많은 에너지 확보”에 주력했고, 그 선택들은 다시 탄소 배출을 폭증시키며 지구의 한계를 앞당겼다. 자원을 무기로 쥔 손과 그 무기에 인질로 잡힌 소비 사회의 관계는, 결국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라는 오래된 정치철학의 문제를 연료와 대기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을 뿐이다.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 2015)는 이 질문에 대한, 혹은 그 질문을 제대로 묻지 못했을 때 찾아올 미래에 대한 극단적 우화다. 러닝타임 120분, 액션·SF 장르의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미술·의상·분장 등 6개 부문을 수상하며 비평·대중 모두에게 인정받았다. 이야기는 문명이 붕괴한 먼 미래, 황폐한 사막을 배경으로 한다. 물과 기름을 독점한 독재자 임모탄 조는 요새 ‘시타델’를 중심으로 자원과 인체를 통제하며 부족 사회를 지배한다. 제목의 주인공 맥스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유랑자에 가깝고, 실질적인 서사의 중심은 조의 여인들을 데리고 탈주하는 사령관 퓨리오사다. 끝없는 추격전과 폭발, 모래폭풍 속에서 관객은 “누가 연료를 소유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위해 연료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레 밀려나게 된다. 이 영화의 도로 위에서 기름과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신체와 기억, 존엄과 공동체를 둘러싼 권력의 언어로 변환된다.

1973년 오일 쇼크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가 만나는 지점은 ‘석유’라는 소재를 넘어서 있다. 오일 쇼크 당시 산유국의 금수 조치는 명백히 정치적 행위였지만, 그 행위를 성립하게 만든 전제는 “석유가 끊기면 상대 문명 전체가 흔들린다”는 구조적 사실이었다. 〈매드 맥스〉의 사막 세계는 바로 그 구조가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를 한 화면에 응축한다. 시타델의 저장 탱크와 파이프라인, 물 낙하 장면은 20세기 석유 인프라의 괴물 같은 그림자를 연상시키고, 자원을 통제하는 임모탄 조는 석유 메이저와 군부, 종교 권력이 한 몸이 된 신정·군사 복합체의 캐리커처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에너지 위기를 “부족한 무엇을 더 캐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자원의 분배를 결정하고 그 결정에서 누가 배제되는가”라는 정치적, 윤리적 문제로 그려낸 방식이다. 1973년 10월의 금수 조치가 보여준 것도 사실은 비슷했다. 밸브를 쥔 손과 탱크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 말이다.

오늘날 세계는 더 이상 1970년대의 두 차례 오일 쇼크 시절로 되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에너지와 안보, 기후를 둘러싼 위기들은 더 복잡한 형태로 겹쳐지고 있다. 세계 에너지 수요는 여전히 절대량 기준으로 증가 추세이고, 석유·가스 의존도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격차를 드러내는 지표로 기능한다(IEA, 202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가스 가격 급등과 정전 위기, 중동 정세 불안 때마다 반복되는 유가 급등 가능성 논의는, 1973년의 밸브 역할을 지금은 어느 국가·기업이 쥐고 있는지, 또 신재생에너지와 희귀광물, 데이터 인프라가 새로운 ‘오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묻도록 만든다. 〈매드 맥스〉식 사막과 전투 트럭은 과장된 미래처럼 보이지만, 도시의 열섬 현상과 산불, 폭염, 정전 사태를 겪는 우리의 여름 풍경은 이미 그 디스토피아의 일부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석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연료에 목을 매단 채 비슷한 길을 달리는 중인지 모른다.

결국 10월 셋째 주에 시작된 오일 쇼크의 파장은 “더 싼 기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아니라, “에너지와 생존을 어떤 관계로 재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마지막 장면에서 퓨리오사와 동료들은 임모탄 조를 무너뜨린 뒤 시타델의 물을 아래로 개방한다. 이 한 컷은 자원이 다시 공공의 것으로, 생존의 기본권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상징한다. 현실의 우리는 여전히 에너지 정책을 성장률과 수익성, 지지율의 문제로 다루기 쉽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전쟁, 공급망 충격이 뒤얽힌 시대에는 “어디까지를 이윤으로 두고, 어디부터를 공동체의 안전망으로 삼을 것인가”라는 윤리적 결정을 피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오늘의 시타델 꼭대기, 혹은 주유소 대기 줄 맨 끝에 서 있다면, 이 질문 앞에서 어떤 선택을 지지하겠는가. 우리의 문명이 달리는 ‘도로’는 정말 다른 방향으로 꺾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