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3일(현지시간), 실시간 전략게임 ‘레드얼럿2’의 악역 유리로 한국 게이머들에게 각인된 독일 배우 우도 키어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의 병원에서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파트너인 예술가 델버트 맥브라이드와 지인들이 사망 사실을 전했고, 6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200편이 넘는 영화와 수많은 게임·뮤직비디오를 오간 한 배우의 긴 여정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
한국 세대에게 우도 키어라는 이름을 처음 각인한 장면은 영화관이 아니라 PC방이었다. 2000년 출시된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2’에서 그는 소련의 초능력 장교이자 세계 지배를 꿈꾸는 ‘유리’를 연기했다. 게임 속 실사 영상에서 그는 옅은 미소와 낮게 깔린 목소리, 과장된 러시아식 억양으로 플레이어를 압박했고, 확장팩 ‘유리의 복수’까지 포함해 수많은 게이머의 기억에 남는 악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그는 ‘콜 오브 듀티: WWII’, ‘마사 이즈 데드’ 같은 게임에서 성우로 참여했고, 히데오 코지마의 신작 공포 게임 ‘OD’에도 출연할 예정이어서, 그의 죽음은 영화 팬뿐 아니라 게임 커뮤니티에도 큰 상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히데오 코지마는 자신의 SNS에 “말문이 막혔다”고 적으며, 촬영을 이어 가기로 했던 배우를 잃은 상실감을 전했다. 전 세계 영화 매체와 게임 매체들은 잇따라 그의 죽음을 속보로 전하며 “2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전설적인 조연이자 괴상하고 비뚤어진 인물들을 연기하는 데 탁월했던 배우”라고 평가했다.
우도 키어의 삶은 출생부터 비극과 맞닿아 있었다. 1944년 10월 14일,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그는 공습과 가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태어난 병원은 출생 직후 폭격을 맞았고, 간호사가 아기를 조금 더 안고 있게 해달라는 그의 어머니 요청 덕분에, 신생아들이 모여 있던 병실 붕괴를 가까스로 피했다는 일화는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소개됐다. 성장기 내내 그는 돈이 없어 고등교육을 포기해야 했고, 공장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10대 후반에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배우의 길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에 가까웠다.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프랑스 남부에서 촬영하는 영화에 출연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그 작품이 1966년 단편 영화 ‘로드 투 생트로페즈’였고,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크게 잡힌 그의 얼굴은 곧바로 잡지에서 “새로운 영화의 얼굴”로 소개됐다. 연기 학교를 다닌 적도, 정식 훈련을 받은 적도 없었던 그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면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인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고 회고했다.
1970년대 초 그는 공포 영화 ‘마크 오브 더 데빌’, 앤디 워홀 제작의 문제작 ‘플레시 포 프랑켄슈타인’과 ‘블러드 포 드라큘라’에서 잇따라 주연을 맡으며 유럽 cult 영화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라이나어 베르너 파스빈더, 다리오 아르젠토, 구스 반 산트, 라스 폰 트리에 등 유럽과 미국을 넘나드는 감독들이 그를 기용했다. 감독들은 그에게 악마, 광인, 흡혈귀, 나르시시스트 같은 극단적인 인물을 맡겼고, 그는 초록빛 눈과 비현실적인 존재감으로 그런 캐릭터를 현실과 악몽의 경계 어딘가에 세워 놓았다.
1990년대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헐리우드 상업 영화와 독립 영화 사이를 가볍게 오갔다. 구스 반 산트의 ‘마이 오운 프라이빗 아이더호’, 짐 캐리가 나오는 코미디 ‘에이스 벤츄라’, 뱀파이어 액션 영화 ‘블레이드’, 재난 블록버스터 ‘아마겟돈’ 등에서 그는 대부분 짧은 분량의 조연을 맡았지만, 관객은 그의 이름을 잘 몰라도 얼굴만큼은 기억하게 됐다. 칸 영화제에서 가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작은 역할을 맡아도 아무도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그런 태도를 증명하듯 장르와 예산, 국가를 넘나드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라스 폰 트리에와의 협업은 그의 중후반 경력을 다시 정의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도그빌’, ‘멜랑콜리아’ 등에서 그는 광신도, 권력자, 무력한 관객 같은 역할을 맡으면서도 항상 영화의 특정 장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동시에 그는 토드 스티븐스의 ‘스완 송’처럼 노년의 퀴어 미용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독립 영화에서 늦은 전성기를 맞았고, 브라질 영화 ‘바쿠라우’에서는 용병을 연기하며 70대에도 여전히 화면을 장악하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게임과의 인연은 비교적 늦게 시작됐지만, 그 강도는 영화 못지않았다. ‘레드얼럿 2’의 유리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냉전과 전체주의의 공포를 한 몸에 압축한 캐릭터였다. 키어는 과장된 억양과 섬세한 표정 연기로 인물을 과장과 진지함 사이 어디쯤에 세워 두었고, 이 모호함이 오히려 게임의 정치적 풍자와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콜 오브 듀티: WWII’에서 나치 실험을 이끄는 과학자, ‘마사 이즈 데드’에서 섬뜩한 부친을 연기했고, 히데오 코지마와 조던 필이 함께 만들던 공포 게임 ‘OD’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크린과 콘솔을 오가는 이 이동성은, 자신을 특정 장르나 매체로 묶지 않으려 했던 그의 태도를 잘 보여 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배우는 아이와 같다. 놀고 싶어 하는 존재다. 나는 그저 계속 놀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그의 커리어를 요약하는 문장에 가깝다. 그는 연극학교 출신의 정공법 배우가 아니었고, 특정 국가의 auteur 시스템 안에서만 움직이는 배우도 아니었다. 대신 그는 주어진 역할이 크든 작든, 진지하든 camp하든, 그 안에서 놀 수 있는 공간을 찾아냈고, 그 놀이는 종종 악당의 미소나 미친 과학자의 눈빛처럼 관객의 기억 속에 남았다.
우도 키어는 “시간이야말로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유일한 악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쟁의 잔해 속에서 태어난 아이는, 세계 영화와 게임 속에서 가장 생생한 악인과 이방인을 연기하는 배우가 됐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늘려 갈 수 없지만, PC방 모니터 속 유리의 눈빛과 수많은 영화의 짧은 등장신은 남아 계속 재생될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남긴 장면들을 다시 재생하며, 한 세대의 상상력을 흔들어 놓았던 독특한 배우를 기억하는 일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