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 무 많이’의 시대를 열다… ‘양념치킨의 아버지’가 남긴 붉은 유산
윤종계라는 이름 세 글자는 낯설지 몰라도, 그가 만든 붉은 소스의 맛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바삭한 튀김옷 위에 꾸덕꾸덕하게 입혀진 매콤 달콤한 양념, 그리고 그 위에 무심하게 뿌려진 땅콩 가루. 한국인의 ‘소울 푸드’이자 전 세계가 열광하는 ‘K-치킨’의 원류, 양념치킨을 창시한 윤종계 맥시칸치킨 창업주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그는 떠났지만, 그가 대한민국 식탁에 남긴 유산은 여전히 뜨겁고 강렬하다.
고인의 발명은 거창한 연구실이 아닌, 1980년대 대구의 작은 닭집에서 시작됐다. 당시 치킨 시장은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이 막 상륙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식으면 딱딱해지고 퍽퍽해져서 버려지는 닭들이 그의 고민이었다. “식어도 맛있는 치킨은 없을까?” 이 단순하고도 집요한 질문이 그를 움직였다. 김치 양념에 버무려 보기도 하고, 물엿과 고추장을 섞으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그는 한국인의 입맛을 저격하는 ‘양념치킨’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메뉴 하나를 개발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대한민국 외식 문화에 ‘반반(半半)’이라는 혁명적인 선택지를 제시했다. 프라이드의 고소함과 양념의 달콤함 사이에서 고민하던 대중에게 “둘 다 먹으면 된다”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짬뽕과 짜장면을 고민하는 ‘짬짜면’보다 훨씬 앞선, 한국형 큐레이션의 시초였다. 오늘날 치킨 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1인당 닭 소비량을 폭발적으로 늘린 기폭제가 바로 이 ‘반반 치킨’이었다.
무엇보다 윤종계라는 인물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의 ‘나눔 철학’에 있다. 그는 양념치킨 소스를 개발하고도 특허를 내지 않았다. 당시 특허청 직원이 “이건 대박이다. 방어해야 한다”며 특허 출원을 권유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만든 게 아니다. 동료 치킨집 사장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는 오히려 지인과 동종 업계 사람들에게 레시피를 무료로 공유했다.
만약 그가 소스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했다면, 오늘날 수만 개에 달하는 치킨 프랜차이즈와 골목 상권의 생태계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통 큰 양보 덕분에 간장, 마늘, 치즈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졌고, 한국 치킨은 전 세계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글로벌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노년에는 치킨집 운영에서 손을 떼고도 불우이웃을 돕는 봉사 활동에 매진하며 ‘양념’처럼 따뜻한 삶을 살았다.
이제 그는 영면에 들었지만, 매일 저녁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오토바이 배달통에 실린 치킨 냄새가 골목을 채운다. “사장님, 양념 반 프라이드 반이요.”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이 주문 한마디가, 평생을 바쳐 닭 튀기는 사람들의 상생을 고민했던 고인에게 바치는 가장 확실한 추모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