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사’에서 ‘미국 죄수’로… 마두로가 떠난 자리, 베네수엘라는 어디로 가는가
지난 1월 3일 새벽,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는 짙은 어둠에 잠겼다. 예고 없는 정전과 함께 들이닥친 것은 미국의 기습적인 군사 작전이었다. 작전은 신속했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그날 아침 베네수엘라 대통령궁이 아닌 미국행 수송기에 결박된 채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전 직후 “미국이 당분간 베네수엘라를 관리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내놨다. 배우자까지 구금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13년간 남미의 거인 베네수엘라를 통치했던 권력자는 하루아침에 피고인석에 앉게 됐다.
마두로의 삶은 혁명 서사보다 생존 투쟁에 가까웠다. 1962년 카라카스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평범한 버스 운전사였다. 운전대를 놓은 손으로 운수노조 깃발을 들었고, 1992년 쿠데타 실패로 수감된 우고 차베스를 위해 석방 운동을 주도하며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차베스의 신임을 얻어 외교장관과 부통령을 거치며 ‘차베스의 입’이자 ‘후계자’로 입지를 굳혔다. 2013년 차베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눈물을 닦기도 전에 권좌를 물려받았다.
문제는 그가 물려받은 것이 권력뿐만 아니라 ‘시한폭탄’이었다는 점이다. 마두로가 통치한 베네수엘라는 브레이크 고장 난 버스처럼 질주했다. 국제 유가 하락과 방만한 재정 운영이 겹치며 경제는 붕괴했다.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으로 지폐는 휴지 조각이 됐고, 국민은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정권은 폭력에 의존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와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보안군의 과잉 진압, 고문, 강제 실종 등 인권 유린 실태를 끊임없이 고발해 왔다. 2018년과 2024년 대선은 부정 선거 논란으로 얼룩졌고, 그때마다 마두로는 “제국주의의 음해”라며 귀를 닫았다.
이번 축출은 미국의 ‘사법 논리’와 ‘군사 행동’이 결합한 결과다. 미국 법무부는 오래전부터 마두로를 마약 테러(Narco-terrorism) 혐의로 기소해 둔 상태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기소장을 명분 삼아 주권 국가의 현직 수반을 체포하는 초유의 강수를 뒀다. “부패한 마약 범죄 집단으로부터 국가를 해방한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다.
하지만 운전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버스가 곧바로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공백은 또 다른 혼란을 예고한다. 로이터 등 외신은 헌정 질서에 따라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권한 대행을 맡았고, 친마두로 성향의 대법원이 이를 승인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로드리게스와 통화했다고 밝혔다. 이는 마두로 개인은 제거됐지만, 행정부와 사법부, 군부를 장악한 ‘차베스주의(Chavismo)’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베네수엘라가 마주할 시나리오는 세 갈래 길로 나뉜다. 첫째는 미국 주도의 과도 정부를 거쳐 재선거를 치르는 ‘강제된 민주화’다. 하지만 외세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주권 침해 논란을 부르고, 반미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 둘째는 잔존 세력의 결집과 저항이다. 마두로 충성파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무장 투쟁에 나설 경우, 베네수엘라는 내전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 셋째는 국가 기능의 완전한 마비다. 리더십 부재와 경제 제재, 치안 붕괴가 맞물리면 또다시 대규모 난민 사태가 발생해 주변국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의사가 존중되는 민주주의 회복”을 강조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원론적인 논평보다 훨씬 복잡하다. ‘독재 타도’라는 목표와 ‘무력 개입’이라는 수단이 충돌할 때, 정의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마두로의 퇴장은 끝이 아니라, 베네수엘라라는 국가를 바닥부터 다시 설계해야 하는 거대한 실험의 시작이다. 그 실험이 재건으로 이어질지, 더 깊은 혼돈으로 추락할지는 이제 남겨진 베네수엘라 국민들과 국제사회의 위태로운 줄타기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