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 580미터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리틀 보이'라 불린 이 폭탄은 3초 만에 도시 중심부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폭발 당시 약 8만 명이 즉사했다. 생존자들은 '히바쿠샤(被爆者)'라 불리며 평생 방사능 피폭의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다나카 시게코는 폭심지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피폭됐다. 당시 13살이던 그녀는 얼굴과 팔에 심한 화상을 입었고, 켈로이드 흉터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됐다.
히로시마 '검은 비',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투하 후 방사성 물질이 섞인 검은 비가 히로시마 시내에 내려 2차 피폭 피해를 야기했다. ⓒ Hiroshima Peace Memorial Museum
원폭 투하는 전쟁 종결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미국의 입장과 달리, 일본인들에게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피폭자들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도 감내해야 했다. 결혼과 취업에서 배제됐고, 자녀들까지 2세 피폭자라는 굴레를 짊어졌다. 일본 정부는 1957년 원폭의료법을 제정했지만, 피폭자 인정 기준이 까다로워 많은 이들이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냉전 체제 하에서 원폭 피해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했고, 미국은 핵무기의 위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Black Rain은 원폭 투하 20년 후 히로시마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야스코는 원폭 투하 당시 방사능 비를 맞았다. 외견상 건강해 보이지만 '검은 비를 맞은 여자'라는 소문 때문에 혼담이 번번이 무산된다. 삼촌 시게마츠는 조카의 결백을 증명하려 피폭 당시의 일기를 꺼내 보인다. 다나카 요시코가 연기한 야스코는 절제된 표정으로 내면 불안을 드러낸다. 갑작스러운 탈모와 잇몸 출혈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갈구하는 그녀의 모습은 관객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2월 1째주 영화로 보는 세상] 검은 비는 방사능 낙진이자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은유다](/api/image?url=https%3A%2F%2Fcdn.asia24.co.kr%2Fimages%2Ftmdb%2F1fc85559db1957659ccd5e4ca1d4d75b.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