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5월,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415킬로미터의 철도 건설이 시작됐다. 일본군은 연합군 포로 6만 명과 아시아인 노동자 20만 명을 동원해 '죽음의 철도'를 건설했다. 그중에서도 태국 칸차나부리의 콰이강 다리는 가장 극적인 현장이었다. 영국군 포로들은 열대의 무더위와 질병, 기아에 시달리며 하루 16시간씩 노동했다. 필립 투지 중령을 비롯한 영국군 장교들은 포로의 명예를 지키려 애썼지만, 일본군의 가혹한 대우 앞에서 생존 자체가 투쟁이었다. 18개월의 공사 기간 동안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버마 철도(죽음의 철도) 건설, 1942–1943년. 일본군이 연합군 포로와 아시아인 노동자를 동원해 건설한 태국-버마 철도로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 ⓒ Imperial War Museum
이 철도 건설은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야욕과 전쟁의 광기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제네바 협약은 전쟁 포로에게 군사 목적의 노동을 강요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일본군은 이를 무시했다. 포로들은 최소한의 식량만 제공받았고, 의료 지원은 전무했다. 콜레라와 말라리아가 창궐했고,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성의 물음이 더욱 절실하게 제기됐다. 포로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면서도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 했고, 일부는 은밀히 사보타주를 시도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The Bridge on the River Kwai는 이 비극적 역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알렉 기네스가 연기한 니콜슨 대령은 영국군의 명예를 지키려는 원칙주의자다. 그는 일본군 사이토 대령(하야카와 세스)과 대립하면서도, 포로들의 사기를 위해 최고의 다리를 건설하기로 결심한다. 윌리엄 홀든이 맡은 미군 셰어스는 수용소를 탈출한 뒤 다리 폭파 작전에 투입된다. 영화는 전쟁의 부조리함을 냉정하게 응시한다. 니콜슨은 적을 위해 완벽한 다리를 건설하는 데 집착하고, 결국 연합군의 폭파 시도를 막으려 한다. 아이러니와 비극이 교차하는 클라이맥스에서 관객은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목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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