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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4월 5째주] 작업중지권

위험 앞에서 멈출 권리, 그 당연함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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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 · 1974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주인공이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중 고용주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자, 그녀는 즉시 해고를 통보받는다. 거부할 권리조차 없었던 그녀의 처지는 1974년 독일 사회의 단면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4월 중순 한국에서는 작업중지권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기본권이다. 급박한 위험이나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 그런데 이 당연한 권리가 왜 논란의 중심에 서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권리는 있되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조문 속 권리와 작업 현장의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골이 존재한다.

삼성물산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기업조차 작업중지권 행사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중소 사업장이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택배 기사들은 특수고용 형태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 밖에 놓인다. 위험을 감지해도 멈출 수 없는 이들에게 안전은 사치일 뿐이다.

뵐의 소설로 돌아가보자. 카타리나가 진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나. 단순히 일자리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 부당함에 저항할 권리였다. 그녀의 비극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결과였다. 오늘날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이 이후 걸어온 길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노동자의 작업거부권을 점진적으로 확대했고,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안전 체계를 갖춘 나라가 되었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법은 있되 현실은 요원하다.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가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노동자가 대다수다.

문득 의문이 든다. 우리는 왜 위험 앞에서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생산성과 효율성이 안전보다 우선시되는 문화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이런 질문들은 단순히 법제도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가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뵐은 소설에서 권력과 언론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치밀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파괴가 아니라 저항의 가능성이었다. 카타리나는 끝까지 자신의 진실을 지키려 했고, 그 과정에서 체제의 모순을 드러냈다. 작업중지권 역시 마찬가지다. 이 권리의 행사는 단순한 업무 중단이 아니라,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다.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매년 2천명을 넘나든다. 이 숫자 뒤에는 멈출 수 없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위험을 알면서도 계속 일해야 했던 사람들, 항의하면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했던 사람들. 그들에게 작업중지권은 종이 위의 문구일 뿐이었다.

50년 전 뵐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존엄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지킬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인권이란 과연 무엇인가. 작업중지권 논란은 결국 이 근본적인 물음으로 귀결된다.

카타리나의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난 것처럼,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멈추지 못해 다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소설과 달리 현실은 계속된다. 우리에게는 이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 작업중지권이 진정한 권리가 되는 그날까지, 멈출 용기를 지지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산업재해 사망자 수
출처: 고용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