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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보다 8월 2째주] 개식용 종식

사라지는 것들의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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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요약

2025년의 어느 날, 누군가는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개고기를 먹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다고.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식용종식법 시행 이후 조기폐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폐업을 선택하는 업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시대의 문화가 법의 이름으로 종료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생계였고, 누군가에게는 전통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 이제 그 모든 것이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육식의 성정치』에서 캐럴 J. 애덤스는 동물을 먹는 행위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이고, 지배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언어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고기'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다. 부재지시물이 된다.

개는 특별했다. 가축이면서 반려동물이었고, 식용이면서 친구였다. 그 경계의 모호함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서구의 시선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애덤스는 이렇게 묻는다. 왜 어떤 동물은 먹어도 되고 어떤 동물은 안 되는가. 그 구분은 누가 정하는가. 문화라고 답하기엔 너무 간단하다. 그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인가, 경제인가, 아니면 시대정신인가.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육류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2010년 38.8킬로그램에서 2023년 58.4킬로그램으로 늘었다. 하지만 개고기는 그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공식적이지 않은 것들은 숫자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600만을 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개를 먹는다는 행위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시대가 변하면 감수성도 변한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애덤스의 책은 1990년에 쓰였다. 한국에서 개식용 논쟁이 본격화되기 훨씬 전이다. 그런데도 그의 질문은 여전히 날카롭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음으로써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종식법이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개고기 식당의 폐업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종언이고, 새로운 감수성의 시작이다. 누군가는 전통의 단절이라고 아쉬워할 것이다. 누군가는 문명의 진보라고 환영할 것이다. 역사는 늘 그런 식으로 쓰여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하나둘 역사가 된다. 개식용종식법은 그 과정을 가시화했을 뿐이다. 법이 먼저일까, 의식이 먼저일까.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식용종식법 시행 이후 조기폐업 지원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산업 규제를 넘어 시대의 감수성 변화와 새로운 가치관 형성을 의미한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 증가와 육류 소비 패턴의 변화 속에서 한국 사회는 동물의 윤리적 인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2025년의 어느 날, 누군가는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개고기를 먹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다고. 농림축산식품부가 개식용종식법 시행 이후 조기폐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폐업을 선택하는 업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시대의 문화가 법의 이름으로 종료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생계였고, 누군가에게는 전통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 이제 그 모든 것이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육식의 성정치』에서 캐럴 J. 애덤스는 동물을 먹는 행위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것은 권력의 문제이고, 지배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언어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고기'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다. 부재지시물이 된다.

개는 특별했다. 가축이면서 반려동물이었고, 식용이면서 친구였다. 그 경계의 모호함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서구의 시선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애덤스는 이렇게 묻는다. 왜 어떤 동물은 먹어도 되고 어떤 동물은 안 되는가. 그 구분은 누가 정하는가. 문화라고 답하기엔 너무 간단하다. 그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인가, 경제인가, 아니면 시대정신인가.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육류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이 2010년 38.8킬로그램에서 2023년 58.4킬로그램으로 늘었다. 하지만 개고기는 그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공식적이지 않은 것들은 숫자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600만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개를 먹는다는 행위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시대가 변하면 감수성도 변한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애덤스의 책은 1990년에 쓰였다. 한국에서 개식용 논쟁이 본격화되기 훨씬 전이다. 그런데도 그의 질문은 여전히 날카롭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음으로써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종식법이 만들어낸 것은 단순히 개고기 식당의 폐업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종언이고, 새로운 감수성의 시작이다. 누군가는 전통의 단절이라고 아쉬워할 것이다. 누군가는 문명의 진보라고 환영할 것이다. 역사는 늘 그런 식으로 쓰여진다.

『육식의 성정치』이 개식용 종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면적 현상 너머의 구조를 향한다. 캐럴 J. 애덤스은 개별 사건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대신,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추적한다. 이런 관점은 반복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개식용 종식 문제의 핵심은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있다. 법과 정책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하다. 캐럴 J. 애덤스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간극이다. 설계된 세계와 살아가는 세계 사이의 거리.

한국 사회에서 개식용 종식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 구조, 인구 변화, 기술 발전, 세대 갈등 등 복합적인 요인과 얽혀 있다. 한 가지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이 정책 입안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이 하나둘 역사가 된다. 개식용종식법은 그 과정을 가시화했을 뿐이다. 법이 먼저일까, 의식이 먼저일까.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숫자로 보는 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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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 최근값
통계청·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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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23 증감
2023년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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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기준
2010년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시대의 변화

이 기사는 개식용 문화의 종식이 단순한 산업 규제를 넘어 윤리적 가치관의 전환을 의미함을 보여준다.

2
수치로 읽는 변화

기사에 제시된 육류 소비 감소 추세와 반려동물 양육 가구 증가 등의 통계 데이터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3
미래 전망

개식용 문화의 종식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는 모습을 통해 향후 이 이슈의 발전 방향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
출처: 통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