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지하철은 여전히 만원이다. 서울의 인구 밀도는 1제곱킬로미터당 1만6천 명을 넘는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 이 도시를 벗어나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텅 빈 집들, 문 닫은 가게들,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들. 한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충북 옥천군이 인구 5만 명 선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4만9천601명. 숫자가 아슬아슬하다. 의성군은 관광산업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고 한다. 제트스키 대회까지 열었다. 정부는 반값여행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비용의 70퍼센트는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 빈곤한 지역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아이러니.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이스터섬의 최후를 기록했다. 한때 번성했던 문명이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했는지 추적한다. 나무를 베어 모아이 석상을 운반했고, 결국 숲이 사라졌다. 토양이 유실됐고 식량이 부족해졌다. 인구는 급감했다. 문명은 흔적만 남겼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소멸이라니. 마치 물리적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천천히, 조용히 진행된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학교가 문을 닫고, 병원이 사라진다. 마지막엔 노인들만 남는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마을도 함께 사라진다.
다이아몬드는 묻는다. 이스터섬 사람들은 마지막 나무를 베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그들도 알았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관성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일까.
한국의 농어촌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970년대엔 전체 인구의 절반이 농어촌에 살았다. 지금은 20퍼센트도 안 된다. 도시로의 이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산업화의 필연적 결과라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한 것이고, 무엇을 포기한 것일까.
반값여행 정책을 보면서 씁쓸해진다. 관광객에겐 할인 혜택을, 지역엔 재정 부담을. 이미 가난한 곳에 더 많은 짐을 지우는 구조. 이스터섬 사람들도 그랬을까. 망해가는 와중에도 더 큰 모아이를 만들려 했을까.
도시에 사는 우리는 지방소멸을 남의 일처럼 여긴다. 하지만 한 사회의 일부가 죽어간다는 것은 전체가 병들어간다는 신호다. 다이아몬드의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붕괴는 서서히 온다, 그리고 갑자기 완성된다.
저녁 퇴근길, 다시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이 도시의 번잡함 너머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마을이 조용히 숨을 거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이스터섬의 마지막 주민들처럼, 우리도 알고 있으면서 멈추지 못하는 건 아닐까.
당신이 태어난 고향은 지금도 그대로 있을까. 어린 시절 뛰놀던 골목, 학교 가는 길에 들르던 문방구,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시장통. 그 풍경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걸 당신은 언제 알아차렸는가.
충북 옥천군이 인구 5만 명 선을 간신히 지켜내고 있다. 2025년 12월 말 4만9천601명. 아슬아슬한 숫자다. 정부는 소멸위기 지역을 살리겠다며 반값여행 정책을 내놨지만, 정작 해당 지역이 져야 할 부담은 7할에 달한다. 관광객은 반값에 여행하고, 지역은 나머지를 메운다.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
일본의 사회학자 마스다 히로야가 쓴 『지방소멸』은 충격적인 미래를 그려냈다. 2040년까지 일본의 896개 자치단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 젊은 여성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지역은 회복 불가능한 소멸 단계에 접어든다는 분석이었다. 그의 경고는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선다. 한 지역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곳에 축적된 문화와 기억, 삶의 방식 전체가 증발한다는 의미다.
마스다는 도쿄 일극집중이 지방을 죽인다고 했다.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늙어간다. 병원이 문을 닫고, 학교가 폐교되고, 버스 노선이 끊긴다. 삶을 지탱하던 기반이 하나씩 무너질 때,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악순환의 고리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2015년 89개였던 소멸위험지역이 2023년 109개로 늘었다. 전체 시군구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다. 충북만이 아니다. 전남, 경북, 강원의 군 단위 지역들이 줄줄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품고 있던 그 지역만의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정부는 관광 활성화로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의성군은 사계절 관광지로 변신을 꾀하고, 각 지자체는 축제와 이벤트로 관광객을 유치하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마스다가 지적했듯, 관광은 지역 경제의 일시적 부양책일 뿐이다. 진짜 필요한 건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이다. 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늙어가도 괜찮은 곳. 그런 터전을 만드는 일이다.
지방소멸을 막는다며 내놓은 정책들을 보면 의문이 든다. 왜 항상 외부에서 사람을 끌어오는 방법만 생각할까. 이미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자리가 없고, 문화생활을 즐길 곳이 없고, 미래를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스다는 작은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묶는 콤팩트 시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모든 지역을 다 살릴 수는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 선택과 집중. 냉정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한국도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모든 곳을 살리겠다는 환상과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한 도시가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지도에서 이름 하나가 지워지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고향이, 추억이, 삶의 터전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놓아야 할까. 이 질문 앞에서 정책 입안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답을 찾아야 한다.
당신의 고향은 10년 후에도 그 자리에 있을까. 아니, 당신은 그곳이 사라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가. 때로는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가지 않는 곳. 우리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한국의 심각한 지방소멸 현상을 다루며, 정부 정책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기사는 서울의 인구 밀집과 지역 소멸이 악순환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관광 정책이 빈곤한 지역에 더 큰 부담을 지우는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