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집중 읽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책으로 세상을 보다 2월 3째주] 부동산과 욕망

침체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투자 심리가 말하는 것

기사 듣기
기사요약
부산의 부동산 시장이 북극항로 개척 등 호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기사는 철학자 들뢰즈의 욕망론을 통해 부동산에 고착된 투자 심리를 비판한다. 침체기일수록 더 간절해지는 반전 기대가 거품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제기하며, 욕망을 새로운 창조로 돌려야 한다고 촉구한다.

부산역 광장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중년 남성이 핸드폰을 꺼내 든다. 부동산 앱을 켜고 북항 일대 매물을 확인한다. 옆에서 대화가 들린다. "북극항로 얘기 나오면서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더라." 택시 기사도 한마디 거든다. "요즘 서울에서 내려와서 땅 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요."

부산 부동산 시장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장기 침체에 빠져있던 이 도시에 북극항로 개척, 해운사 본사 이전 같은 소식들이 흘러나오면서 투자 검토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조심스럽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정책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대폭락 1929』에서 투기 거품의 형성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1920년대 미국 플로리다 부동산 투기를 다룬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이애미에서 시작된 투기 열풍은 곧 주변 도시로 번져나갔다. 사람들은 실제 가치보다 미래의 기대에 돈을 걸었다.

갤브레이스가 주목한 것은 투기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어떻게 합리적인 개인들이 집단적 광기에 빠지는가. 그는 이렇게 썼다. 투기는 항상 새로운 시대에 대한 믿음으로 포장된다. 철도가 그랬고, 인터넷이 그랬다. 북극항로는 어떨까.

한국에서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이자 노후 보장의 수단이다. 청년들은 영끌로 아파트에 올라타려 하고, 은퇴자들은 전세 보증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이 구조 속에서 부동산 가격의 등락은 곧 삶의 부침이 된다.

지난해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가계부채 중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18년 52.3%에서 2025년 58.7%까지 올랐다.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둔화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집에 돈을 묶어둔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여전히 부동산을 믿어서일까.

갤브레이스는 1929년 대공황 직전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거품인 줄 알았지만 자신만은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 믿었다. 부산의 투자자들은 다를까.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이야기가 과연 다른 결말을 쓸 수 있을까.

『차이와 반복』이 분석하는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토지와 주택이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한 구조적 모순이다. 주거의 안정보다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집이 기능하는 사회에서 주거권은 공허한 구호로 남는다.

한국의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부의 양극화는 근로소득만으로는 좁힐 수 없는 격차를 만든다. 일해서 번 돈보다 집값 상승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큰 사회에서 근로 의욕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은 정권마다 방향이 바뀌어 왔다. 규제와 완화를 오가는 정책의 시계추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그 불확실성은 다시 투기적 수요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질 들뢰즈의 관점을 빌리면, 부동산 문제는 경제 정책만으로 풀 수 없다. 토지 공개념, 보유세 강화, 공공주택 확대 등 구조적 처방이 필요하지만, 기존 자산 보유자들의 정치적 저항이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

부동산 불평등이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부모의 자산 유무가 자녀의 출발선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가치는 시험대에 오른다. 능력주의의 신화가 부동산 앞에서 무너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부산역 광장의 남성이 택시에 올라탄다. "북항 쪽으로 가주세요." 창밖으로 재개발을 기다리는 오래된 건물들이 스쳐 지나간다. 기대와 현실 사이, 그 간극을 메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늘도 이어진다.

📊 숫자로 보는 이 기사
0
주택담보대출 규모
2018년 기준, 한국은행 가계부채 통계

이런 움직임은 낯설지 않습니다. 아니, 너무나 익숙합니다. 개발 호재와 정책 발표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투자 심리의 파동. 침체기일수록 더 간절해지는 반전 기대. 그 기대가 또 다른 거품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

철학자 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욕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욕망은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힘이라고. 무언가를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어서 욕망한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투자 욕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내고 싶어서.

침체기의 투자 심리를 보면 이 욕망의 생산성이 더 선명해집니다. 없는 호재를 만들어내고, 작은 신호를 확대해석하고, 희망적 시나리오를 그려냅니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부산이 동북아 물류 허브가 될 것이라는 상상. 해운사들이 몰려오면 도시 전체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

이 기사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1
가계부채 위험신호

7년간 주택담보대출이 410조원에서 620조원으로 50% 이상 증가한 가운데, 소득이 정체되면서 가계재정의 건전성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전체 경제 위험요소다.

2
침체지역의 투자심리

부산처럼 인구감소, 산업 약화를 겪는 지역일수록 부동산 반전에 더 큰 기대를 갖게 되면서 과도한 투자와 거품 형성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3
욕망의 방향이 미래를 결정

부동산 투자 욕망에만 고착된 사회는 청년층의 주거 절망, 노년층의 노후불안, 중년층의 부채 압박을 심화시키므로, 욕망을 다른 분야의 창조와 혁신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한국 주택담보대출 잔액 추이
출처: 한국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