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이 정부 대책 부재로 반년째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는 업계 재편 논의는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정작 정부가 제시할 청사진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석유화학 업계는 2022년부터 본격화한 중국발 공급과잉과 수요 급감으로 역대급 불황을 겪고 있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2021년 8.2%에서 2023년 -2.1%로 급락했다. 특히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 생산업체들은 가동률이 70%대로 떨어지며 고정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업계 내부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간 설비 규모와 재무 상황이 크게 다르다 보니, 누가 먼저 감산하고 설비를 폐쇄할지관련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발적 구조조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중국발 공급과잉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에틸렌 생산능력을 연간 1,500만 톤 이상 늘렸다. 이는 한국 전체 에틸렌 생산능력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아시아 시장을 장악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업계가 정부에 요구하는 핵심 사항은 세 가지다. 첫째, 설비 폐쇄 시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인센티브 체계 마련이다. 둘째, 유휴 설비의 용도 전환을 위한 규제 완화다. 셋째, 고용 안전망 확충을 통한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인력 재배치 지원이다. 하지만 정부는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014년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제정해 석유화학 등 과잉 설비 산업관련 구조조정을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업 간 설비 통폐합 시 독점금지법 적용을 완화하고, 설비 폐쇄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는 제도를 운영했다. 한국도 유사한 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구조조정이 늦어질수록 기업들의 재무 부담은 가중되고, 결국 시장에서 강제 퇴출되는 기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연착륙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돌이킬 수 없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문제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기엔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수직계열화 기업과 독립기업 간 입장차가 크다. 누가 먼저 생산시설을 줄일지, 인수합병 비용은 어떻게 분담할지를 놓고 기업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세제 혜택이나 금융 지원 같은 당근을 제시해야 기업들이 움직일 텐데, 말만 하고 ���제 정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중견 화학사들은 자체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대성산업은 최근 3년간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40%에서 65%로 늘렸다. 캔버스엔은 70억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론 산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해외 사례를 보면 정부 주도의 산업 재편이 성과를 낸 경우가 많다. 일본은 2000년대 초 석유화학 업계 구조조정 때 정부가 세제 지원과 함께 기업 간 통합을 적극 중재했다. 그 결과 미쓰비시케미컬, 스미토모화학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형 화학사들이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더 늦기 전에 정부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화학연구원 관계자는 "중국의 신증설이 계속되고 있어 공급과잉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며 "정부가 산업 재편의 큰 그림을 그리고, 기업들이 따를 수 있는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국내 제조업 수출의 12%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다. 울산, 여수, 대산 등 산업단지에서 직간접 고용하는 인력만 30만명에 달한다. 구조조정이 지연될수록 지역경제와 일자리에 미치는 타격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구체적인 답안지가 나와야 할 시점이다.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이 6개월째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 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2021년 8.2%에서 2023년 -2.1%로 급락했다는 사실은 업계의 심각한 불황을 보여준다.
정부가 명확한 로드맵과 인센티브를 마련하지 않으면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에틸렌 공급과잉이 고착됐는데도 정부 구조조정 로드맵은 6개월째 비어 있다. 영업이익률이 8.2%에서 -2.1%로 급락한 업종이라 감산과 설비 폐쇄 논의가 더 늦어질 여지가 줄고 있다.
가동률 70%대로 버티는 기초유분 생산업체와 여수·울산·대산 산단 근로자, 설비 폐쇄 시 일자리와 세수 충격을 감당해야 할 지방 산업도시가 직접 영향을 받는다.
석유화학은 반도체, 자동차, 전자 등 주력 산업에 소재를 공급하는 기간산업이다. 이 분야가 무너지면 전방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약화되어 수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석유화학 산업은 직간접 고용 규모가 큰 분야로, 무계획적 구조조정은 대규모 실업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고용 안전망 없이는 지역경제 붕괴로 연결될 위험이 크다.
한국 기업들이 퇴출되면 국내 제조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제품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이는 공급망 안보 측면에서도 위험하며, 장기적으로 산업 자립도를 약화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