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시중은행들이 기업대출 확대로 실적을 만들고 있을까. 고금리에 가계대출이 막히자 기업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일까, 아니면 다른 계산이 있는 걸까.
4대 시중은행이 올 상반기 기업대출을 늘려 실적을 끌어올렸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찾은 돌파구다. 금리가 높은 시기에 기업들이 대출을 늘린다는 건, 그만큼 자금이 급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4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확대 배경에는 가계대출 규제 강화가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면서 가계대출 성장이 사실상 막혔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대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규제가 의도치 않은 풍선효과를 만들어낸 전형적 사례다.
문제는 기업대출의 질이다. 은행들이 단기 실적을 위해 심사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담보 여력이 부족한 기업에게까지 신용대출이 확대되면서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고금리 환경에서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면 연체율 상승은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위험가중자산(RWA) 증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위험가중치가 높아 같은 금액을 대출해도 은행이 쌓아야 할 자본이 더 많다. 기업대출 확대로 자본적정성 비율이 하락하면 배당 여력 축소나 추가 자본 확충 필요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기 이익이 장기 부담으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하반기 경기 둔화 전망도 은행들의 기업대출 전략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고, 수출 둔화와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실적이 나빠진 기업들이 대출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급등할 수 있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위험을 인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들의 기업대출 심사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대출과 고위험 업종 대출관련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은행들이 상반기에 올린 실적이 하반기 부실로 되돌아올지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문제는 이런 대출 증가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을 늘린다는 점이다. RWA는 은행이 떠안은 리스크를 숫자로 표현한 것인데, 이게 늘어나면 자본을 더 쌓아야 한다. 쉽게 말해 대출을 늘려 당장 이익은 챙겼지만, 나중에 더 많은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일이 2010년대 초반에도 있었다. 당시에도 은행들이 기업대출 경쟁에 나서면서 부실채권이 늘었고, 결국 구조조정 펀드를 만들어야 했다. 대우조선해양 같은 대기업 부실이 터지면서 은행들이 수조 원의 손실을 봤다.
기업대출이 늘어난 만큼 고용이나 투자가 늘었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조업 가동률은 여전히 70%대에 머물고, 신규 채용도 줄고 있다. 기업들이 빌린 돈으로 운영자금을 메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반기가 더 걱정이다. 미국 연준이 금리 인하를 미루고 있어 국내 금리도 쉽게 내리기 어렵다. 높은 금리가 지속되면 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결국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은 매출 대비 이자비용 비율이 대기업의 3배에 달한다.
은행 입장에서도 딜레마다. 대출을 줄이면 당장 실적이 나빠지고, 늘리면 미래의 건전성을 걱정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주문하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없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니 기업들은 빚으로 버티고, 은행들은 그런 기업에 돈을 빌려주며 실적을 만든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단순히 금리를 내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기업대출 확대는 높은 금리와 가계대출 규제에 따른 은행의 전략적 선택을 보여준다.
고금리 지속이 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하반기 부실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가계대출 규제로 인해 기업대출 확대로 실적을 끌어올리려는 은행의 행태를 보여준다.
가계대출 규제에 막힌 은행들이 기업대출로 상반기 실적을 메웠지만 고금리 장기화 속에 그 대가가 하반기 부실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경기 둔화와 PF 리스크가 겹쳐 풍선효과의 후폭풍이 예고된다.
운영자금 대출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과 위험가중자산 증가를 떠안은 4대 시중은행, 기업대출 건전성 점검에 들어간 금융감독원이 직접 영향을 받는다.
기업대출 부실이 현실화되면 은행들의 자본적정성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대출 위축과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2010년대 초반 대기업 부실 사태처럼 수조 원 규모 손실이 재현될 위험이 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중소기업들의 연쇄 부도가 예상된다. 제조업 가동률 70% 수준과 신규 채용 감소는 이미 실물경제가 위축 국면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가계대출 규제가 의도치 않게 기업대출 리스크 확대로 이어진 만큼, 부문별 분절적 규제가 아닌 금융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건전성 정책 재설계가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