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상장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작성에서 형식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52개사가 핵심 항목에서 미흡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CEO 승계 계획과 이사회 독립성 확보 항목에서 낮은 점수가 집중됐다. 핸즈코퍼레이션처럼 아예 0점을 받은 기업도 나왔다. 반면 아이에스동서 같은 중견기업이 CEO 승계정책을 새로 도입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한국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에 소극적인 배경엔 오너 경영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OECD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독립적 사외이사 비율이 35%로 미국(85%), 영국(7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형식적 공시를 넘어 실질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평가에서 눈에 띄는 건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들의 행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현금 5조원을 쌓아두고도 주주환원 정책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 기업들이 다수 포함됐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가 의무화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시키는 데 그치고 있다.
금융 부문에서는 저축은행들이 오히려 앞서가는 모습이다. 애큐온저축은행은 3년 연속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며 중소 금융기관으로는 드물게 ESG 경영을 체계화했다. 대형 금융지주와 달리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이 먼저 움직인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단순히 규제 준수 차원을 넘어 기업 가치와 직결된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의 주가 수익률이 평균 15% 높게 나타났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이 지배구조 평가를 투자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의 변화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결국 숫자가 말해준다. 100대 기업 중 52개가 낙제점이라는 현실은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