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5년 9월부터 '한국형 에코디자인' 제도 도입에 나선다. 제품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과 탄소 배출을 고려하도록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EU가 2005년부터 시행 중인 에코디자인 지침을 한국 상황에 맞게 조정한 것으로, 전자제품과 자동차 부품 업계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제도는 단순히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EU가 2023년부터 탄소국경세를 시범 도입하고, 미국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친환경 제품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출 자체가 막히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 수출의 35%가 EU와 미국향인 점을 고려하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한국은 이미 자원재활용법, 전기전자제품법 등으로 폐기물 처리 단계를 규제해왔다. 하지만 제품을 만들 때부터 분해와 재활용을 쉽게 설계하도록 강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은 에코디자인 적용 후 가전제품 재활용률이 45%에서 82%로 올랐고, 일본도 2022년부터 유사한 '서큘러 이코노미' 정책을 시행 중이다.
기업들은 설계 변경과 생산 공정 개편에 드는 초기 비용을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추산으로는 대기업 평균 200억원, 중소기업도 30억원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3년 내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고, 오히려 원자재 절감으로 장기적 이익이 크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2년부터 자체적으로 에코디자인을 적용한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유럽 시장 점유율을 3.2%p 높였다. LG에너지솔루션도 배터리 재활용 설계로 미국 IRA 보조금 대상에 포함됐다. 선제적으로 움직인 기업들이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다만 중소 부품업체들의 기술력과 자금 문제는 여전히 숙제다. 정부는 기술 개발 지원금 3000억원과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약속했지만, 업계에선 "대기업 위주 지원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2차, 3차 협력업체까지 에코디자인을 적용하려면 최소 5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형 에코디자인이 수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또 다른 규제 부담이 될지는 정부의 지원 방식과 기업의 대응 속도에 달렸다. 분명한 건, 글로벌 시장에서 '친환경'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