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부터 시작된 일이다. 전국 각지의 전공의들이 서울에 모여 첫 정기 대의원대회를 열었다. 전공의노동조합이 공식 출범한 지 8개월 만이다.
전공의노조는 이날 대회에서 부당한 현실에 침묵하지 않고 적극적인 교섭으로 전공의 인권을 지켜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의사 집단이 '인권'과 '노동권'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이례적이다.
올해 2월 의대 증원 반대로 시작된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는 10개월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행정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지만, 병원으로 돌아온 전공의는 10%에 불과하다. 전체 전공의 1만 3천여 명 중 1만 1천여 명이 여전히 수련병원을 떠나 있는 상황이다.
전공의들이 노조를 만든 배경에는 주 8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근무시간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처우가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88시간에 달한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1만 원 수준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전공의노조 출범을 두고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전공의들의 단체행동권 보장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병원협회 측은 의료 공백을 우려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비슷한 시기 간호사들도 노동조합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이 파업을 벌인 데 이어, 올해는 전국 각지에서 간호사 노조가 결성되고 있다. 의료 현장의 노동권 요구가 직종을 넘어 확산되는 모습이다.
전공의노조는 향후 보건복지부와의 교섭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과 처우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당직 수당 현실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다만 의료법상 의사의 파업권은 제한적이다. 응급환자 진료 거부 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집단 휴진도 불법으로 간주된다. 전공의노조가 실질적인 교섭력을 갖추려면 이런 법적 제약을 어떻게 돌파할지가 관건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노조를 만든 것은 더 이상 개인적 희생에만 기댈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라며 "의료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료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노조 출범은 한국 의료 시스템이 맞닥뜨린 위기의 단면이다. 의사들조차 노동권을 외치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