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스스로 작성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발간 예정인 2025년 ESG 보고서에 외부 검증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보고서 품질을 개선하겠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글로벌 투자자와 규제 당국이 기업의 ESG 데이터 정확성을 엄격하게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2024년부터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을 통해 ESG 정보의 제3자 검증을 의무화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기후 관련 공시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의 ESG 보고서 검증률은 아직 30%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23년 한국거래소 조사에 따르면 코스피 200대 기업 중 ESG 보고서에 외부 검증을 받은 곳은 62개사(31%)에 불과했다. 검증을 받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 같은 일부 데이터만 확인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항공의 이번 조치는 항공업계 특유의 압박도 작용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고, 주요 항공사들은 지속가능항공유(SAF) 사용 실적부터 폐기물 재활용률까지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실제로 유럽 대형 항공사들은 이미 ESG 보고서 전체 내용의 70% 이상을 외부 검증받고 있다.
문제는 검증 비용과 시간이다. 종합적인 ESG 보고서 검증에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비용이 들고, 3~6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부담스러워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ESG 데이터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과장할 경우 받게 될 제재와 평판 리스크를 고려하면, 검증 투자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시민사회는 기업들의 자발적 검증 확대를 환영하면서도, 정부 차원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에는 ESG 보고서 작성과 검증에 관한 통일된 기준이 없어, 기업마다 유리한 방식으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결국 ESG 보고서의 신뢰성은 기업의 자금 조달과 직결된다. 글로벌 연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ESG 투자 규모를 늘리면서, 검증받지 않은 ESG 데이터는 투자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추세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ESG 투자 자산은 40조 달러를 넘어섰다.
앞으로 ESG 보고서는 재무제표처럼 반드시 외부 감사를 받아야 하는 공식 문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이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몇 년 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