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버 수요 급증으로 메모리 반도체가 품귀현상을 보이는데, 정작 국내 전체 산업생산은 작년 12월 기준 둔화세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제조업 생산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반도체 호황과 전체 산업 부진이라는 엇갈린 신호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다.
이런 괴리 현상은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당시와 비슷한 패턴이다. 당시에도 반도체와 통신장비는 호황이었지만 전통 제조업은 구조조정 압박을 받았다. 다만 지금은 AI라는 새로운 동력이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에 올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서버용 메모리는 이미 2025년 하반기 물량까지 선주문이 끝났다.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늘리면서 메모리 확보 경쟁에 나선 결과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반 DRAM 가격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며 "공급망 전체가 AI용 고부가 제품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반도체 특수가 다른 산업으로 파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여전히 글로벌 수요 부진과 중국발 저가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중소 부품업체들은 대기업의 해외 생산 확대로 일감이 줄어드는 이중고를 겪는다.
정부는 무공해 건설기계 전환 같은 산업 다변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당장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2026년 시행 예정인 지원책들도 현재의 산업 공동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기 변동성도 커진다"며 "제조업 기반 다각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한국 경제는 반도체라는 한 다리로 버티는 형국이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당분간 메모리 수요는 탄탄하겠지만, 나머지 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릴지가 숙제로 남았다. 1990년대 일본이 반도체에서 밀려나며 장기 침체에 빠진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