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뮈니케ESG·지속가능경영

EU는 중소기업 ESG 부담 덜어주는데, 한국은 여전히 대기업 기준 그대로

맥락EU가 중소기업용 간소화된 지속가능성 보고 기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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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은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 부담을 줄인 새 기준을 내놨는데, 한국은 여전히 대기업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EU가 이달 발표한 지속가능성 보고 기준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핵심 지표만 간소하게 보고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작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ESG 공시를 의무화했지만, 중소기업을 위한 별도 기준은 마련하지 않았다.

EU의 새 기준은 250명 미만 중소기업에게 40개 핵심 지표만 요구한다. 대기업이 제출해야 하는 1,000개 넘는 데이터 포인트와 비교하면 25분의 1 수준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남녀 임금 격차 같은 필수 항목만 남기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겼다. 보고 주기도 대기업은 매년이지만 중소기업은 3년마다 한 번으로 완화했다.

이런 차별화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유럽 중소기업 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ESG 보고서 작성에 평균 150만 원의 비용과 전담 인력 2명이 필요하다. 매출 10억 원 미만 기업에게는 순이익의 15%에 달하는 부담이다. 독일에서는 ESG 컨설팅 비용이 지난해 대비 40% 올랐고, 프랑스에서는 중소기업 10곳 중 3곳이 '보고서 작성을 포기하고 벌금을 내겠다'고 답했다.

한국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72%가 'ESG 대응 인력이 없다'고 답했다. 대기업 납품업체들은 원청사로부터 ESG 실적 제출을 요구받지만,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삼성전자 협력사 A사 대표는 "온실가스 배출량 계산법도 모르는데 무조건 내년까지 탄소중립 계획을 내라고 한다"며 하소연했다.

EU가 중소기업 특례를 만든 배경에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하면서 유럽 기업들이 아시아 의존도를 줄이고 역내 조달을 늘리고 있다. 그런데 까다로운 ESG 기준 때문에 유럽 중소기업들이 납품 기회를 놓친다면, 결국 중국 기업들만 이득을 본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국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안에 중소기업용 간소화된 ESG 공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기준을 너무 낮추면 '그린워싱' 논란이 일고, 너무 높이면 중소기업이 따라올 수 없는 딜레마다. 전문가들은 "EU처럼 핵심 지표만 남기되,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한국형 기준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결국 ESG도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을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획일적인 잣대는 오히려 양극화만 키운다. 중소기업이 ESG 경영에 동참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기준과 지원책이 시급하다.

이 기사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맥락과 통계를 추가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