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연구동 10층. 이곳에서 LG화학 생명과학부문 연구원들이 신약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회사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와중에도 바이오 연구개발(R&D) 투자액은 오히려 늘었다. 2025년 생명과학부문 R&D 투자 규모는 3700억 원으로, LG화학 전체 R&D 투자의 35%를 차지한다.
화학 업계가 불황에 시달리며 비용 절감에 나서는 상황에서 LG화학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석유화학과 배터리 부문이 인력 감축과 사업 재편을 진행하는 동안, 바이오 부문만큼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미래 먹거리로 의약품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시장은 성장세가 뚜렷하다. 2024년 기준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1조 5000억 달러(약 2100조 원)에 달하며, 매년 5%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비중이 전체의 35%를 넘어섰다. 반면 전통적인 화학 산업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원자재 가격 변동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LG화학이 바이오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이다. 현재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석유화학과 배터리 소재 부문의 의존도를 낮추고, 고부가가치 사업인 신약 개발로 수익 구조를 개선하려는 의도다. 업계에서는 2030년까지 생명과학부문 매출 비중을 20%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신약 개발은 긴 호흡이 필요한 사업이다. 임상시험부터 승인까지 평균 10년 이상 걸리고, 성공 확률도 10% 미만이다. LG화학이 보유한 신약 파이프라인 중 임상 3상 단계에 진입한 물질은 2개에 불과하다. 당장의 수익 창출보다는 장기 투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사들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로 2024년 매출 5000억 원을 돌파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위탁생산(CMO) 사업으로 연매출 3조 원을 넘겼다. 한미약품과 대웅제약도 신약 기술 수출로 수조 원대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화학 기업들이 바이오 진출을 서두르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며 "다만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화학 소재 기술을 활용한 약물전달시스템(DDS) 개발에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조조정과 미래 투자를 동시에 진행하는 LG화학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당장은 비용 부담이 크지만, 5년 후 신약 출시에 성공한다면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화학 기업에서 종합 헬스케어 기업으로의 변신, 그 첫걸음이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