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회의실. 교보15호스팩 관계자들이 합병 일정표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4개월 늦은 9월 11일로 합병계약일이 확정됐다.
교보15호스팩이 비상장 바이오기업 씨엠디엘과의 합병 일정을 대폭 조정했다.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이 합병 일정을 미루는 건 흔한 일이지만, 이번엔 배경이 복잡하다. 바이오 업계 투자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밸류에이션 조정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씨엠디엘은 세포치료제와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회사다. 2019년 설립 후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했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스팩 합병으로 방향을 틀었다. 교보15호스팩은 2023년 12월 상장한 뒤 합병 대상을 물색해왔다.
같은 시기 다른 스팩들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NH16호스팩은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해 청산 위기에 몰렸고, 미래에셋17호스팩은 합병 승인을 받고도 주가가 액면가 아래로 떨어졌다. 2024년 이후 스팩 10곳 중 7곳이 합병에 실패했다.
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MA를 줄이면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출구 전략이 막혔다"고 설명했다. 나스닥 바이오텍 지수는 1년 전보다 15% 하락했고, 국내 코스닥 제약 지수도 20% 넘게 떨어졌다.
교보스팩과 씨엠디엘의 합병비율 재협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스팩 규정상 합병 기업 지분의 80%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데, 씨엠디엘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 양측은 6월까지 세부 조건을 확정할 계획이다.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건 합병 후 주가다. 최근 3년간 스팩 합병을 마친 기업 20곳 중 16곳의 주가가 합병 전보다 하락했다. 특히 바이오 기업과 합병한 스팩은 평균 60% 이상 주가가 떨어졌다.
한국거래소는 스팩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합병 기한을 3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합병 비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바이오 산업 자체의 침체다.
교보스팩의 선택은 다른 스팩들에게도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2025년 말까지 15개 스팩이 합병 기한을 맞는다. 이들 대부분이 바이오나 2차전지 기업을 합병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어, 교보스팩의 성패가 향후 스팩 시장의 방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