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시작된 일이다. 신세계건설이 첫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2025년 ESG 내재화를 선언했다. 인권경영과 가족친화적 근로환경을 강조하며 다양성 제고를 약속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도 양성평등 리더십을 내세웠다.
하지만 노동계 반응은 싸늘하다. 민주노총은 "실질적 변화 없는 보여주기식 ESG"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도 "근로자 대표가 배제된 일방적 선언"이라며 거리를 뒀다. 기업들이 앞다퉈 ESG 경영을 외치는데 정작 노동조합은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쟁점은 '참여 없는 결정'이다. ESG 위원회에 노동자 대표는 없다. 경영진이 만든 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뿐이다. 신세계건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권경영을 표방하지만 노동조합과 사전 협의는 없었다.
경총은 "ESG는 경영 전략의 일환"이라며 "이사회와 경영진이 주도하는 게 맞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은 이미 노동자 대표 참여를 의무화했다. 독일은 감독이사회의 절반을 노동자 대표로 채운다. 한국 기업의 ESG가 글로벌 기준에 못 미치는 이유다.
2021년 SK하이닉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ESG 경영을 선언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됐다. 당시 금속노조는 "원청의 ESG는 하청 노동자에게 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ESG 점수를 높이는 동안 하청업체 노동환경은 오히려 악화됐다.
법무법인 지평 민창욱 변호사는 "ESG 평가에서 노사관계는 핵심 지표"라며 "형식적 선언만으로는 투자자도 설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ESG 평가 시 노동조합 활동 보장 여부를 중요하게 본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격차가 뚜렷하다. 프랑스 다논은 2020년 노동자 대표를 ESG 위원회에 포함시켰다. 스웨덴 H&M은 글로벌 노조와 협약을 맺고 공급망 전체 노동권을 보장한다. 반면 한국 대기업은 여전히 노동을 ESG의 '대상'으로만 본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K-ESG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노동자 참여 조항은 빠졌다. 결국 기업과 정부 모두 노동을 ESG의 파트너가 아닌 관리 대상으로 보는 셈이다.
다음 달 신세계건설 노사 협상이 예정돼 있다. 노조는 ESG 위원회 참여를 공식 요구할 계획이다. 기업이 진정한 ESG 경영을 원한다면 노동자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