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뮈니케산업정책

석유화학 구조조정 첫발, 노란봉투법이 가로막나

맥락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조정 계획 발표 직후 국회가 노란봉투법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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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산업통상자원부 브리핑룸. 지난주 정부 관계자들이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던 자리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3년째 적자에 시달리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를 살리기 위한 첫 삽을 뜨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부 발표가 나간 직후 국회에서는 노란봉투법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됐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정부가 그린 석유화학 구조조정 청사진은 처음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석유화학 산업은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에틸렌 기준 글로벌 가동률이 70%대로 떨어졌다. 정상 가동률 85~90%에 한참 못 미친다. 국내 대표 석유화학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2022년 7.3%에서 지난해 -2.1%로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구조조정 방식이다. 정부는 민간 주도로 자율적인 설비 감축을 유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강제 폐쇄가 아닌 기업 간 협의를 통한 생산량 조절이 핵심이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노사 갈등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2000년대 초 철강 산업 구조조정 당시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설비 폐쇄를 주도했다. 당시 포항제철과 동국제강 등이 고로 2기를 폐쇄하면서 생산 능력을 20% 줄였다. 10년 뒤 철강 산업은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이번엔 다르다. 정부는 금융 지원만 하고 뒤로 빠졌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최대 10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되, 구조조정 방식은 기업이 알아서 정하라는 것이다. 노란봉투법까지 더해지면 기업들은 꼼짝없이 손발이 묶인다.

일본은 2010년대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미쓰비시화학과 아사히카세이 등이 자발적으로 설비를 40% 감축했다. 정부 개입 없이도 업계 협의체가 주도해서 성공했다. 한국도 같은 길을 가려 했지만, 노사 환경이 판이하게 다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데,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그린 2027년까지 설비 30% 감축 목표는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단순히 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 전자, 건설 등 전방산업에 원료를 공급하는 기간산업이 무너지면 제조업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 정부와 국회, 기업과 노동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이 기사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맥락과 통계를 추가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