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뮈니케금융·투자

기업 ESG 경영 압박 거세지는데… 작은 운용사들은 '책임투자 보고서' 써낼 여력도 없다

맥락MBK 홈플러스 사태 이후 연기금들이 중소형 운용사에도 책임투자 보고서 요구 강화
기사 듣기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일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요 연기금들이 위탁운용사들에게 책임투자 실적을 증명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먹튀 논란이 계기가 됐다. 문제는 이런 요구가 대형 운용사뿐 아니라 직원 10명 안팎의 소형 운용사에게도 똑같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자산운용사 150여 개 중 절반이 운용자산 1조 원 미만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ESG 전담 인력은커녕 리서치 인력도 2~3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연기금들은 분기마다 수십 페이지 분량의 책임투자 이행 보고서를 요구한다. 투자한 기업들의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내역부터 ESG 개선 활동까지 세세히 적어내야 한다.

실제로 운용자산 5천억 원 규모의 한 중소형 운용사 대표는 "직원이 15명인데 ESG 보고서 작성에만 2명이 매달려 있다"고 토로했다. 인건비로 따지면 연간 2억 원이 ESG 서류 작업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 돈이면 애널리스트 한 명을 더 뽑아 수익률을 높이는 데 쓸 수 있었다.

금융위원회가 2016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뒤 가입 기관은 200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제대로 된 책임투자를 하는 곳은 손에 꼽힌다. 2024년 기준으로 책임투자 전담 조직을 갖춘 운용사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기존 직원이 다른 업무와 병행하며 형식적으로 보고서만 작성한다.

대형 운용사들은 이미 ESG팀을 꾸리고 연간 수십억 원을 투자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ESG 리서치센터를 만들어 20명이 넘는 인력을 배치했다. 반면 중소형사들은 외부 ESG 평가기관 데이터를 구매할 여력도 없다. MSCI나 서스틴베스트 같은 평가기관의 연간 이용료는 최소 5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형식적 요구가 실제 책임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조사한 바로는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운용사 중 실제로 주주제안을 한 곳은 5% 미만이다. 대부분 경영진 안건에 찬성표만 던질 뿐이다.

일본은 다르게 접근했다. 소형 운용사에게는 간소화된 보고 양식을 허용하고, 여러 운용사가 공동으로 ESG 리서치를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정부가 지원했다. 덕분에 일본 중소형 운용사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율은 한국보다 30%포인트 높다.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 평가에서 ESG 비중을 높이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2026년부터는 책임투자 실적이 부진한 운용사는 위탁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 운용자산 1조 원 미만 운용사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진짜 책임투자를 원한다면 중소형 운용사도 참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맥락과 통계를 추가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