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산운용사 가운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곳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평균인 3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사태 이후 투자자들이 소형 운용사에도 책임투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 이행률은 여전히 저조한 수준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9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한 기관투자자는 총 198개다. 이 가운데 자산운용사는 87개로 전체 운용사의 15%를 차지한다. 반면 영국은 운용사의 68%, 일본은 42%, 호주는 35%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투자 대상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중장기 가치를 높이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원칙이다.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부터 경영진과의 대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리스크 점검까지 포함한다. 국내에서는 2016년 도입됐지만, 9년이 지난 지금도 확산이 더디다.
대형 운용사들은 그나마 움직임을 보인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 등은 연간 책임투자보고서를 발간하고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개한다. 하지만 운용자산 1조 원 미만 중소형사들은 대부분 관망하고 있다. 인력과 시스템 구축에 드는 비용 때문이다.
정작 투자자들의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 선정 때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 여부를 평가 항목에 넣었다. 주요 연기금과 보험사들도 운용사에 책임투자 계획서 제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과도한 배당과 자산 매각으로 논란을 빚자, 사모펀드 투자자들도 ESG 실사를 강화하는 추세다.
문제는 형식적 도입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했다고 발표한 87개 운용사 중 실제로 주주활동을 한 곳은 30%가 안 된다.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만 만들어놓고 반대표를 행사한 비율은 3% 미만이다. OECD 평균인 12%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금융당국도 제도 개선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4월 '기관투자자 수탁자 책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운용사가 투자 기업과 대화한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고, 주주활동 성과를 계량화해서 보고하도록 했다. 다만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라 실효성은 미지수다.
해외에서는 이미 책임투자가 운용사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블랙록은 2023년 주주총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한 기업 191곳의 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던졌다. 일본 최대 연기금 GPIF는 위탁운용사 평가의 30%를 ESG 통합 운용 역량으로 본다.
국내 운용업계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2025년부터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 선정 시 스튜어드십 활동 배점을 현행 5점에서 10점으로 늘린다. 주요 공적연금도 비슷한 기준을 도입할 예정이다. 책임투자를 외면한 운용사는 대규모 위탁운용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숫자가 말해준다. 국내 상장기업의 배당성향은 23.5%로 OECD 평균 35.2%보다 낮다. 사외이사 비율은 37%로 미국(85%), 영국(73%)의 절반 수준이다. 기관투자자가 제 역할을 못 한 결과다.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률 15%라는 숫자는 한국 자본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