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뮈니케보건의료

한약 조제시설은 평가받는데, 양약 조제소는 사각지대

맥락보건복지부가 한방 공동이용탕전실 평가인증제도 개선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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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을 끓이는 탕전실은 이제 국가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일반 약국의 조제실은 여전히 명확한 평가 기준이 없다. 보건복지부가 27일 발표한 공동이용탕전실 평가인증제도 개선안은 한약 조제의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정작 더 많은 국민이 이용하는 양약 조제 환경은 여전히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가 한방 약침과 탕약 조제 시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한 배경엔 최근 늘어난 의료사고가 있다. 지난해 한약 조제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 사고가 3건, 약침 시술 후 감염 사례가 5건 보고됐다. 특히 여러 한의원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탕전실의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새 제도는 공동이용탕전실이 시설·설비·인력·품질관리 4개 영역에서 총 85개 항목을 평가받도록 했다. 조제 공간의 청결도부터 약재 보관 온도, 작업자 위생 교육 이수 여부까지 세세하게 점검한다. 인증을 받은 시설은 3년간 유효한 인증마크를 부착할 수 있고, 건강보험 수가에서도 가산점을 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도입된 의료기기 소독업체 인증제(2021년), 의료폐기물 처리업체 평가제(2023년)와 비교하면 이번 제도의 특징이 드러난다. 앞선 두 제도는 의무 인증이었지만, 탕전실 인증은 자율 참여다. 전국 탕전실 450여 곳 가운데 현재까지 인증을 신청한 곳은 82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370여 곳은 여전히 관리 사각지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국민이 혜택을 볼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약 처방을 받은 환자는 약 320만 명이다. 이 가운데 공동이용탕전실을 이용한 환자는 48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인증제가 100% 정착돼도 전체 한약 이용자의 15%만 보호받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양약 조제 환경이다. 지난해 약국에서 조제약을 받은 국민은 4,80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약국 조제실에 대한 평가 기준은 1994년 만들어진 '약국 시설 기준'이 전부다. 조제대 면적 6.6㎡ 이상, 환기시설 설치 정도만 규정할 뿐 위생 관리나 품질 검증 체계는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약사 개인의 전문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1인 약국이 전체의 89%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자율 관리엔 한계가 있다.

한약과 양약의 조제 환경 격차를 좁히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약국 조제실에도 최소한의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조제 공간 분리, 약품 보관 온도 관리, 조제 도구 소독 주기 같은 기본 사항부터 시작할 수 있다. 약사회는 인력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지만, 국민 안전을 위한 최소 기준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정부가 한약 안전성 강화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양약 조제 환경을 방치한다면 반쪽짜리 대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왜 한약엔 85개 평가 항목을 만들면서, 양약엔 30년 전 기준을 그대로 쓰는가.

이 기사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맥락과 통계를 추가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