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20일, '사용자 범위'가 다시 그리는 한국 노동시장의 지도
2026년 3월 10일,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발효됐다. 법 조항만 보면 짧다. 2조(정의)에서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하고, 3조(손해배상 제한)에서 합법 쟁의에 대한 원청의 과잉 배상 청구를 제한한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 짧은 개정이 한국 산업구조 전반에 끼칠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한국 제조업·서비스업 상당수는 1990년대 IMF 이후 30년에 걸쳐 구축해 온 원·하청 분리 구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개정법의 가장 도발적인 대목은 '사용자'의 정의다. 기존 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자"를 사용자로 봤다. 원청은 하청 노동자와 계약이 없으므로, 교섭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개정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자"까지 사용자로 본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 공장에서 원청 지시대로 일한다면, 원청이 사용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 해석은 1962년 근로기준법이 "직접 사용자" 원칙을 채택한 이래 64년 만에 흔들리는 뼈대다.
파급은 가장 먼저 철강에서 나타났다. 대법원 1부는 4월 16일 포스코 협력사 소속 노동자 223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215명 승소 취지의 원심을 확정했다. 그 전에도 포스코는 4월 7일, 협력사 현장직 약 7,000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선제 발표했다. 포스코 철강 부문 전체 직원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사례는 이미 있었으나, 노란봉투법 시행 직후 대기업이 대규모로 나선 것은 포스코가 처음이다.
반면 다른 방향의 움직임도 포착된다. 베타뉴스 4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첫 한 달간 제조·건설·서비스 대기업의 외주 발주 건수가 평균 14.7% 감소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와 교섭 의무를 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애초에 외주를 줄이고 직접 고용이나 자동화로 돌리는 선택이 확산되는 것이다. 삼성물산·GS건설·한화 등은 '사용자성 판단 기준'에 대한 내부 가이드라인 작성에 나섰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중소 협력업체 사이에서는 역설적 위기감이 번진다. 원청이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면 협력업체의 주요 매출원이 사라진다. 원청이 외주 자체를 줄여도 일감이 사라지긴 마찬가지다. 한국중소기업연구원 4월 중순 진단에 따르면, 제조업 하청 1차 협력사 중 약 22%가 '향후 1년간 매출 감소'를 우려한다고 응답했다. 노란봉투법이 겨냥한 보호 대상인 하청 노동자와, 그 노동자를 고용해 온 중소 협력사가 동시에 흔들리는 구조다.
법리적 논쟁도 거세다. 경영계는 "사용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면 원청은 관리 책임만 지고 통제 권한은 행사할 수 없는 비대칭이 고착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는 문구의 해석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출퇴근 시간, 휴게 시간, 업무 지시까지 결정했다면 사용자일 텐데, 그 중 일부만 결정한 경우는 어디까지 포함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몇 년간 법원 판례로 채워질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사용자 범위 확대는 그간 왜곡됐던 노동 현실을 법적으로 인정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모두 "현장에서 원청이 실질 사용자처럼 행동해 온 관행이 바뀐 게 아니라, 법이 그 관행을 뒤늦게 따라잡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쟁의행위 손배 청구 제한(3조 개정)도 "노조 활동을 위협적 손해배상으로 무력화해 온 관행에 대한 교정"이라고 본다.
국제 비교도 시사적이다. 독일은 원·하청 구조에 대해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원청의 사회적 책임을 규정해 왔다. 프랑스는 '연대 조항(Clause de solidarité)'을 통해 하청의 임금 체불 시 원청이 연대 책임을 진다. 반면 미국·일본은 원청의 하청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성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한다. 한국의 노란봉투법은 그 자체로 새로운 제도는 아니지만, 한국 산업구조에 적용됐을 때 파급은 독일·프랑스보다 더 크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사이의 임금 격차가 OECD 최상위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고용노동부는 4월 중 '사용자성 판단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법원 판례가 축적되기 전에 실무 기준을 제시해 혼란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행정 가이드라인이 법원의 최종 해석을 대체할 수는 없다. 결국 시행 첫 해인 2026년은 '판례 축적기'가 될 것이며, 이 기간 기업들은 보수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고용의 미래다. 포스코처럼 대규모 직고용을 선택할 수 있는 기업은 제한적이다.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노란봉투법의 귀결은 '대기업의 직고용 vs 중소기업의 외주 축소'라는 이분화로 굳어질 수 있다. 전자는 노동자 보호가 강화되지만, 후자는 오히려 비정규 일자리 자체를 줄이는 효과를 낳는다. 법이 겨냥한 보호 대상이 법의 그늘 밖으로 밀려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원래 2015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돈을 담아 보낸 사회 운동에서 시작됐다. 10년이 지나 법률로 완성됐지만, 법률의 완성이 곧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시행 20일은 너무 짧아 평가를 내리기 어렵지만, 너무 길어 무시하기도 어렵다. 분명한 것은 2026년 한국 노동시장의 지도가 3월 10일 이전과는 다른 선들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2년 근로기준법이 채택한 '직접 사용자' 원칙이 '실질적 사용자' 개념으로 이동하면서, 한국 노동법의 기초 뼈대가 바뀐다.
대기업은 직고용으로, 중견·중소는 외주 축소로 대응하면서, 법의 보호 대상이 오히려 일자리 자체를 잃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사용자성'의 실무 기준이 법원 판례로 축적되는 2026~2027년은 기업의 보수적 의사결정이 지배하는 구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