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EF 4년의 성적표, '동맹이지만 FTA는 아닌' 규제 동맹의 한계와 한국의 위치
2022년 5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 도쿄에서 출범을 선언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는 14개국이 참여하는 신형 경제 협력체다. 미국·일본·한국·호주·뉴질랜드·인도·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베트남·브루나이·피지. 아시아 태평양 GDP의 약 40%를 차지한다. 2026년 4월 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각료회의는 출범 4주년을 맞는 IPEF의 '성적표'를 점검하는 자리다.
IPEF는 전통적 자유무역협정(FTA)과 구조가 다르다. 관세 철폐·시장 개방이 핵심인 FTA와 달리, IPEF는 공급망(Pillar II), 청정경제(Pillar III), 공정경제(Pillar IV)의 규제·협력 프레임워크에 집중한다. Pillar I(무역)은 인도의 반대와 의회 비준 문제로 사실상 동결 상태다. 이 구조 때문에 IPEF는 "동맹이지만 FTA는 아닌"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됐다. 참여국들은 규제 의무를 지지만 관세 혜택은 받지 않는 비대칭 구조다.
지난 4년의 구체적 성과는 영역별로 엇갈린다. 공급망 필러는 2023년 11월 본 협정 체결로 가장 빠르게 구체화됐고, 2024년 2월 발효됐다. 참여국 간 공급망 위기 시 조기경보·공동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반도체 부품, 의료용품, 배터리 원자재가 우선 대상이다. 청정경제 필러는 2024년 6월 협정 체결 후 2025년부터 세부 이행이 시작됐다. 그린수소·재생에너지·배출권 거래 등 14개 세부 분야의 협력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공정경제 필러는 부패 방지·조세 협력에 초점을 맞추며, 가장 느리게 진전된다.
그러나 2025년 1월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IPEF의 운명은 크게 흔들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초기 IPEF를 '오바마·바이든의 유산'으로 규정하며 전면 재검토를 예고했다. 이후 완전 폐기는 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IPEF 이행 예산과 고위급 관심은 급감했다. 각 필러 협의의 의장국은 미국 상무부에서 공동 참여국 순환으로 이동했고, 2026년 4월 각료회의의 주최국도 미국이 아닌 싱가포르다.
참여국들의 계산도 미묘해지고 있다. 한국·일본·호주 등 미국 동맹국은 IPEF를 유지하며 미국의 장기 복귀를 기다리는 전략이다. 반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 등 아세안 참여국은 IPEF 의무와 중국의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혜택 사이에서 '두 우산 쓰기' 전략을 강화한다. 인도는 Pillar I(무역)에 처음부터 불참했고, 나머지 필러에서도 '조건부 참여' 입장을 유지한다.
한국의 위치는 이 구도에서 가장 복잡하다. 한국은 IPEF 3개 필러 모두에 참여하며 공급망·청정경제 분야에서 핵심 이행 국가로 평가된다.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 한국 주력 산업이 IPEF 공급망 협력 대상과 정확히 겹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4월 초 자료에 따르면 IPEF 발효 이후 한국의 반도체 소재·부품 공급망 다변화율이 2023년 18%에서 2025년 29%로 확대됐다. 중국 의존도가 낮아지고 미·일·인도·베트남·호주로의 분산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수혜에는 비용이 따른다. 첫째, 관세 혜택은 없다. 한국이 IPEF 공급망 협력에 참여함으로써 추가로 얻는 시장 접근은 제한적이다. 둘째,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IPEF 공급망 협력은 사실상 '중국을 제외한 공급망 재편'을 의미하고, 중국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간헐적으로 시사한다. 셋째, 규제 의무의 비대칭. 한국은 청정경제 필러에서 탄소 감축·배출권 공동 기준 등 의무를 지지만, 인도·인도네시아 등 일부 참여국은 유사 의무를 유보한다.
싱가포르 각료회의에서 주목할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 미국의 이행 예산 확약 여부. 당초 약속된 2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기술 지원 예산 중 집행된 비중은 35%에 머문다. 둘째, Pillar IV(공정경제)의 실질 진전. 부패 방지·조세 협력은 법적 구속력이 약해, '선언만 있고 이행은 없는' 필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셋째, 회원국 확대 가능성. 대만·캐나다·영국이 참여 의사를 표명했지만, 중국 자극 우려와 합의 난이도 문제로 논의가 더딘 상태다.
IPEF의 구조적 한계는 '역사적 타협물'이라는 점에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 이후 아시아 경제 질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급히 만든 틀이다. 법적 구속력은 약하고, 관세 혜택은 없으며, 의회 비준 없이 행정협정으로 운영된다. 이 태생적 약점 때문에 차기 정부의 정치적 변화에 쉽게 흔들린다. 트럼프 행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그 약점의 실체적 증거다.
한국 외교·통상 전략의 과제는 '다층 우산' 확보다. IPEF(미국 주도), RCEP(중국 포함), CPTPP(일본 주도), 한-EU FTA, 한-영 FTA, 한-중미 FTA 등 여러 협력체를 동시에 활용하며, 특정 틀의 쇠퇴가 전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분산시키는 구조다. IPEF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은 CPTPP 가입 논의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2026년 하반기 한국의 CPTPP 가입 공식 신청이 전망된다.
싱가포르 각료회의가 끝난 후 IPEF가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IPEF가 만들어낸 공급망 다변화의 관성은 당분간 유지된다는 점이다. 기업은 한 번 재편한 공급망을 쉽게 되돌리지 않는다. 한국이 이 관성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IPEF 이후의 전략 지평을 결정한다.
IPEF 참여국은 규제 의무를 지지만 관세 혜택은 없다. 한국은 가장 큰 수혜·피해국이며, 이 비대칭이 차기 통상 전략의 핵심 쟁점이다.
미국의 예산 확약 지연과 고위급 관심 축소가 IPEF의 장기 지속성에 대한 구조적 의문을 낳고 있다.
IPEF의 불확실성이 한국의 CPTPP 가입 신청을 앞당기는 촉매가 될 수 있으며, 2026년 하반기 공식 결정이 전망된다.
